결혼 생활 내내 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나에겐 나눌 이도 해소할 공간도 없었다. 내가 원하는 답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답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다른 모든 것이 무너져도 내 자존감만큼은 스스로 지키겠다 다짐했었다. 그러면서 시간이 지나가겠지, 결국은 돌고 돌아 안정이 찾아오겠지 스스로를 위로하는 나날이 계속됐다.
그때는 몰랐다. 내 옆에는 항상 아무것도 모르지만 웃고 있었던 아이가 있다는 걸. 슬플 때마다 눈물이 날 때마다 난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나에겐 반어적으로 표현했던 그 감정들을 의심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준 아이.
지금은 틈만 나면 그 사랑스러운 얼굴로 사랑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럴 때마다 미안하고 고마운 여러 가지 감정들이 느껴진다.
결혼이란 나만 책임지는 것 같은 속상함이 밀려올 때가 있었고, 아이가 없었다면 어쩌면 이 결혼이 유지되었을까 의심되고 후회되는 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후회와 원망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채 온전히 속으로 삼켜냈다. 그때는 너무 힘들었고, 나만 그런가 싶고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이러다가 화병으로 큰일 나면 어쩌지라는 생각까지 들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내 아이에게는 한번 더 웃어주고, 한번 더 사랑한다고 말했다. 너는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많이 사랑하는 너무나 소중한 존재라고.
하지만 결론적으로 그때의 나를 대견하다고 칭찬해 주고 싶다. 사랑하는 아이가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법을 되려 알려주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누군가 밉고 원망스러울 때 오히려 사랑한다고 표현하고 더 많이 안아 주면서 나름 해소하는 방법을 찾았던 것 같다.
결혼이란 참으로 신기하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서 죽일 만큼 밉지만, 또 이런 사랑스러운 아이가 없었다고 생각하니 눈물부터 차오르기도 하는. 밉지만 살아내고, 살아내며 의지하고 그러다 없으면 또 너무나 슬퍼지는. 많은 감정으로 얼룩진 결혼을 한마디로 정의하는 건 쉽지 않다. 아마 그 끝이 오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그 감정들을 수집하듯 계속해서 적어보고 뒤돌아 볼 것 같다.
지나온 감정들이 언젠가는 그저 새삼스럽게 느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