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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12

오리엔테이션 셋째 날

by 장여결

오리엔테이션 일정 중 하나로 Christ Church의 Evensong에 참석했다. 참, 오늘 아침에 애들이랑 성 OO 교회에 갔는데 좋았다. Z-는 같이 안 갔는데, 나중에 대화 나눠보니 “대부분 흑인”인 다른 교회에 갔다고 했다 (설명글에 “성도 대부분이 흑인이지만 모두를 환영한다”라고 쓰여있던 교회이다). 거기 계신 분들이 정말 친절했다고 말했다.


Christ Church로 가면서 Z-는 내 옆에 걸었고, J-도 우리와 도보를 맞췄다. 우리가 거의 다 도착했을 땐 또 섞여서 Z, I, 그리고 내가 같이 걷고 있었다. 도착했을 때 분명 황홀감이 얼굴에 드러났을 거다. 안뜰로 들어가는 입구 천장을 장식하는 문장(crest)들을 올려다보았다. 안뜰은 왠지 매우 익숙하고 유명(?)해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아 있는데, Z-가 곧 꾸벅거리거나 졸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어떻게 도와줘야 하나 생각하는데 손 꼬집는 요법이 떠올랐지만 실행하지 않았다. 그녀가 꾸벅거리기 전에는 내가 음악에 온통 매료됐다. 특히 (우리가 앉았다 섰다 하는 자리에선 누군지 보이지 않았으나) 정말로 밝고 맑은 음색에, 잘 가꾸어졌지만 또 소년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자리에서 보이는 유일한 사람은 머리카락을 애쉬블론드로 탈색한 청년이었는데, 나중에 나온 솔로파트를 정말 잘 불렀다. 노래와 호흡에 집중해 온몸이 움직였다.


우리가 몇 사람을 기다리느라 다시 안뜰 입구에 멈춰 서있을 때, Z-가 내 옆에 가까이 붙었는데 난 추워서 그러나 보다 했다. 아니나 다를까 Z-가 “나 체온을 위해 이렇게 너랑 가까이 붙어있는 거야”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중에 오피스에 도착했을 때 나보고 들어가라고 기다려주길래 먼저 들어가라고 했다.


전에 나눈 대화 중 I-가 자신이 어떤 상황이 실제로 좀 그런 건지 아니면 자신이 그냥 그렇게 느끼는 건지 모를 때가 있다고 했다. 그냥 그 말이 신경 쓰인다. I-가 혹시나 내가 Z-랑만 친해지고 있다고 느끼지 않으면 좋겠다. 내가 너무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누구에게서 일부러 한 발짝 물러나는 실수는 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어 제대로 신경을 못쓰겠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지금은 모르겠다.)


돌아올 땐 모두 버스를 탔고 나는 걸었는데 다리가 쑤시는군. 아, 그리고 2만 보를 넘겼다! 그런 것이 걸음수를 측정하기 시작한 후로 처음인 것 같다. 지금은 부엌에서 만들어 온 땅콩버터 샌드위치를 먹고 있다. 그다음 부엌에서 가져온 티케이크를 먹으려고 한다. (우리가 각자 음식을 구비하기 전 먹을 수 있도록 부엌에 이런저런 음식이 마련되어 있었다).


성 OO에서 나와 몰에서 점심 먹고 있을 때 A-의 “Anne? 우리 푸드그룹 같이 할래??”라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끄덕했다. 푸드그룹에 참여 안 할 생각이었는데 … 으 그 막중한 책임 … 양도 너무 적거나 나무 많지 않게 딱 맞아야 하고. 아니, 많이 남으면 냉장고나 냉동실에 넣었다 먹으면 되겠지. 그리고 저녁 메뉴 리스트를 만들어야겠다! 그럼 내가 느끼는 부담이 많이 해결될 것 같다.


헉 … 땅콩버터 샌드위치 먹으면서도 벌써 그랬는데 티케이크를 먹고 나니 진짜 더더더욱 맵고 얼큰한 게 땡긴다. 김치랑 육개장이랑 불닭이랑 아ㅎㅎㅎㅎㅎㅎ “이제 한국 음식이 그렇게 땡기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 힘이 길러진 건가” 했건만. 항상 땡기는 건 땡기지만, 막 먹고 싶고 먹어야 할 것처럼 땡기는 건 없어졌는데 말이다. 점심 메뉴 리스트를 따로 적고 거기다가 육개장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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