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024/11/13

by 장여결

난 너무 뭔가 많은 것이나 높은 것을 내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바라는 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것이 걸리나보다, 내가 기대를 너무 크게 할까 봐. 오늘 저녁 내가 빌려간 언니 친구의 머리핀 돌려주는 문제로 언니와 문자 나누던 중 언니가 시간을 한두 시간 갖자고 해서 (그리고 내가 언니 저녁 먹었냐고 물으니까 “난 먹었는데 넌 계란이랑 진라면 끓여줄까?”라고 해서) 언니 기숙사로 향했다. 언니 기숙사는 바로 옆인데, 언니는 물을 올려놓고 소파에 누워있었다. 물이 끓자 언니가 “아 저거 해야 하는데…”라고 했고 내가 하려고 일어서니 “저 선반 열어보면 진라면 있을 거야”라고 했다. 스프, 건더기 넣고 언니에게 허락받아 (언닌 “당연히 되지!”라고 했다) 계란 두 개 넣고 라면 면을 넣고 젓가락으로 폭폭 찌르고 돌아오는데 언니가 “내가 끓여줄까?”라고 해서 “거의 다 끓였어, 끓기만 하면 돼”라고 했다.


언닌 별문제 없이 다시 폰을 했지만 나는 괜히 미안하게 느껴져 “언니가 끓인 것으로 칠게”라고 말하고 나서 그 말이 오히려 더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고마워”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언니는 미소를 머금은 채로 폰을 보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살짝 가라앉았다. 그러고 라면을 다 끓여서 “이거 어디에 놓아?”라고 여러 번 물어 겨우 “어? 아 저 하얀색”이라는 언니의 답을 들었다.


예감이 들었지만 그러고 나서 언니는 “어우, 동생아, 나 왜 우울하지? 나 너무 나태하다”라고 했다. 나는 “나태해서 자책하면 득 될 것 없으니 언니만 괜찮으면 되는 거야”라고 할까 고민하다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그 말 하는 대신에 언니가 내쪽으로 화면을 들어 보여주는 릴스를 같이 보며 같이 웃었다. 그러다가 나도 어떤 릴스를 보내주려고 폰을 꺼냈다가 어떤 다른 릴스가 눈에 들어와서 언니가 보여주는 타이밍에 언니 걸 보지 못했다. 언니는 다시 기분이 울적해졌는지 살며시 폰을 들어 올리던 손을 내려놓았다.


그러다가 드디어 우리가 보기로 한 “New Girl” 티비쇼를 틀려고 언니가 일어났다. 그걸 보면서 언니는 네일을 하고, 난 언니의 간식 서랍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언니… 나 언니 간식 먹어도 돼?” “응응! 먹어! 근데 어떤 걸?” “그냥 아직 모르겠는데.” “여기 죠리퐁도 있어.” “그럼 일단 그걸 먹기 시작할게 ㅎ.”


그 티비쇼가 말이다, 재미있고 언니랑 같이 보는 게 너무 좋은데, 사실 그 등장인물들이 너무 비정상적인 사고만 하고 어이없는 일들만 만드는 티비쇼라 정신이 혼미해지는 느낌이었다. 정작 언니는 그걸 가볍게 보면서, 네일을 하면서, 그러다 웃고 하는데 난 또 그걸 몰입하면서 보다가 자꾸 현타가 왔다. 몰입은 또 잘 됐다.


언니가 9시쯤 되니까 선약한 친구가 여기 오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말했고 난 걱정하지 말란 듯이 “응, 와도 되지, 그리고 그땐 내가 가야지”라고 했다. 그러고 그 친구가 이쪽으로 향할 때쯤 언니가 나에게 말해줬고 우린 인사를 나눴고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왔다. 인사를 나눌 때 언니를 안았다가 언니가 내 심장이 아직도 이상하게 뛰고 있다는 (부정맥) 걸 느끼고 “어이구, 아직도 이렇게 뛰고 있어?”라고 걱정스럽게 말했고 기도를 해줬다.


그래서 언니랑 시간 보낸 건 맞는데, 언니 기숙사와 내 기숙사 사이 잠깐의 공간의 밤공기로 걸어 나오며 뭔가 허전함과 슬픔을 느꼈다. 그러면서 내가 왜 이럴까요, 하며 기대가 너무 큰 것 같아요라고 생각했다. 그래, 언니에게 기대를 너무 높이 해서 그렇지 언니와 좋은 시간을 보낸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를 타며 폰을 확인해 보니 엄마한테서는 또 따뜻한 카톡이 와 있었다. 시차가 다른 엄마와 나, 그래서 엄마는 되시는 대로 몇 줄씩 되는 카톡을 보내주신다.

“딸아, 지금은 오케스트라를 마쳤겠구나^^”

ㅎㅎ 아니요 엄마, 오늘은 심장이 그래서 교수님께 이메일을 드려 양해받았어요.

“수고 많았어~~(하트)(엄지척)

엄마는 000 만나러 가는 중이야.

이러이러하셔서 이러이러하시거든. 오늘은 병원 카페에서 브런치 드시고 싶다고 만났으면 하시네 ㅎㅎ”


난 그걸 눌러 하트를 달았다. 그 밑에도 비슷한 길이의 문자 두 개가 있었고, 차례로 웃음표시와 하트를 달았다. 마지막엔 “울 딸, 넘 늦지 않게 잘 자렴~~(하트)(양손을 펼쳐 보이는 웃음표정) 피곤이 그냥 쫙~~ 풀리고 영육이 강건함을 입길~(손모음).”

엄마는 어떻게 내 상황을 알고 그리 적으신 걸까?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땐 미소 짓고 있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2024/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