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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Sep 20. 2023

그 가을, 한 달 동안


돋을양지의 창가에 선다. 가을 초입의 어느 오전 아홉 시, 태양은 꼭 그만큼의 볕을 들어 바닥에 내려놓는다. 주위의 나무들은 아직도 푸른데 아침저녁 찬바람머리의 햇살만은 익어가는 가을이다. 실로 풍성하게 창가를 찾아오는 이런 가을 햇발의 양감이 좋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가을은 어찌 이리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찾아오는지. 등이 아프도록 힘주어 견뎌야 했던 그 가을처럼.


그날도 바닥 창문 속에 내가 서 있다. 검은색 실루엣이니 표정은 볼 수 없는 것을 다행이라 여긴다. 선잠을 자듯 내게 주어진 여유를 쪼개어 나른한 햇살에 몸을 맡겼다. 그즈음은 하루에 두세 시간밖에 잠을 자지 못했고, 그런 와중에도 꿈을 꾸었다. 결코 떠올리기 싫은 장면들과 소리 없는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잠이 깨어서도 그 장면들은 귀밑머리처럼 매달려 있었다. 신열로 들뜬 몸은 정신마저 쉬이 무너뜨렸지만, 누구에게나 숨길 수 없는 노래 한 소절씩은 외고 사는 법이라고 자신을 토닥이는 나날이었다.


어쩐 일인지 병동 전체가 조용했다. 그러고 보니 아침 녘부터 사람들이 부산히 움직였던 것 같다. 나른한 가을 햇무리에서 빠져나와 여기저기 둘러보니 사람들로 가득하던 병상이 드문드문 비어 있었다. 지나가는 간호사를 돌려세워 병동이 이렇게 한산한 연유를 물었다. 추석이었다.


명절은 천지사방에 흩어져 있던 가족들도 모두 고향 앞으로를 외치는 날이다. 병원에서 지내는 동안 의지가지 하며 지낸 같은 층의 보호자들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암 병동은 사람들의 온기마저 떠나 더욱 휑했다.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소망을 담고 그들은 명절 외출을 했을 테다. 병동 전체엔 잠시의 외출도 할 수 없는 위중한 환자들과 가족 몇 만이 남아 있었다. 그들 중에 아버지와 내가 끼어있었다. 눈은 뜨고 계셨으나 들숨과 날숨만 가쁘게 쉴 뿐 움직이거나 말을 할 수 없는 아버지를 눕혀 둔 채 그렇게 그 해 추석을 보냈다.


사람이 태어나면 울음으로 첫 음성을 낸다. 몇 달 후부터는 옹알이를 시작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다. 첫돌 무렵부터는 간단한 단어들을 말하기 시작에 아무리 늦되는 아이라도 만 두 살이 되면 이삼백여 개의 단어로 말하는 것이 가능하다. 우리는 그렇게 말을 시작해서 생을 마칠 때까지 세상의 숫자가 모자랄 정도로 많은 음성을 나누고 산다. 태어나서 하는 첫 말들은 대부분 비슷하겠으나 죽음에 이르러서 하는 마지막 말들은 대부분 다르지 않을까 싶다.


아버지가 병원에 계시던 두어 달 동안 참으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지금의 상황을 잊은 듯이 온갖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고, 각자 추천하는 음악을 조그맣게 틀어놓고 들었다. 애써 슬픔을 누른 웃음꽃이 매일 아버지와 내가 있던 1인 병실에 피었다. 그러나 정작 위중한 지경에 이르기 한  전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하셨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한동안은 편집증적인 증상까지 보이며 기억해 내려했지만 허사였다. 아마도 일상적인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싶으니, 유언이라 이를만한 것이 없었던 탓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너무 아프다. 그리고 나의 부주의를 탓하며 자책의 나날을 꽤 오래 보냈다.


그 후부터 종종 내가 남길 유언에 대해 생각해 본다. 멋지고 근사한 말을 마지막에 남겨보고 싶어서 노트에 적어 보기도 했다. 허나 그것은 헛된 욕망일 게다. 그저 조용히 자는 듯이 무언을 유언으로 삶과 이별할 수 있다면 좋겠다 아직은  훗날에.


어쩌면, 내 생은 슬픔을 거름 삼아 꾸역꾸역 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 글처럼,  가을 한 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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