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 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 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 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 詩 <질투는 나의 힘>
이 시는 시인의 지나온 삶에 대한
성찰이 동반된 기록이다.
성찰의 결과는 부끄러움인데,
이 부끄러움을 느끼는 시점은 현재가
아니라 미래다.
그렇다면 기록을 남기는 지금
성찰과 반성을 통해 더 나은 미래의
'나'가 될 것이라 다짐을 해야 하는데
시인은 이 글을 쓰는 지금을 또다시
부끄러워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런 두 겹의 부끄러움은 윤동주의
<참회록>에서도 찾을 수 있다.
부끄러운 지금을 기록으로 남겨 둔 것을
미래에 다시 후회하게 될 지라도
시인은 기록해야 할 천명을 이고 지고
괴로워했을 것이다.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심장에 불이 붙은 것 같았다.
그때는 청춘의 한 복판에 있었기
때문이었나. 내 자화상 같았다.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에서는 조금 울었다.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라는
모멸에 가까운 독백에서는 소리 내며 울었다.
아무에게도 두려움을 줄 수 없는
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질투'였다. 그러나 질투는 약하다.
(살리에리의 예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질투로는 누구도 벨 수 없다.
시인처럼 그저 '탄식'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나를 빠르게
스치고 지나가 버린다.
시인이 다녀갔던 그 미래에서
기형도를 만나 다시 읽는다.
미래로 왔던 시인은 젊은 너를
더 사랑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청춘이 지나가 버리니 이제야 보이는,
이 아이러니...
제일 좋은 옷을 골라 입고
거리로 나섰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하염없이 서성이고만 있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는 것처럼 조금 당혹스럽다.
기형도처럼 후회가 되더라도
부끄러움을 느끼더라도
기록해야 할 것이 있다면,
내 안에 무엇을 기록해야 할 것인가.
시인은 청춘에서 미래를 보았지만
나는 그 미래가 되어 청춘을 되돌아본다.
무엇을 기다리는지 모르고, 지금까지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는 내가
참 부끄러운 날이다.
질투가 기형도를 살게 했지만
이제 무엇이 나의 힘이 되어 줄 것인가.
누군가에게 한 모금의 물,
한 그릇의 밥이 될 수 없는 내 문학 앞에서, 부끄럽다.
청춘은 한순간이고, 질투도 늙어간다.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