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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Nov 22. 2022

질투는 나의 힘

부끄러움에 대하여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 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 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 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  詩  <질투는 나의 힘>



이 시는 시인의 지나온 삶에 대한

성찰이 동반된 기록이다.

성찰의 결과는 부끄러움인데,

이 부끄러움을 느끼는 시점은 현재가

아니미래다.


그렇다면 기록을 남기는 지금

성찰과 반성을 통해 더 나은 미래의

'나'가 될 것이라 다짐을 해야 하는데

시인은 이 글을 쓰는 지금을 또다시

부끄러워할 것이라고 언한다.

이런 두 겹의 부끄러움은 윤동주의

<참회록>에서도 찾을 수 있다.

부끄러운 지금을 기록으로 남겨 둔 것을

미래에 다시 후회하게 될 지라도

시인은 기록해야 할 천명을 이고 지고

괴로워했을 것이다.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장에 불이 붙은 것 같았다.

그때는 청춘의 한 복판에 있었기

때문이었나. 내 자화상 같았다.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에서는 조금 울었다.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라는

멸에 가까운 독백에서는 소리 내며 울었다.


아무에게도 두려움을 줄 수 없는

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질투'였다. 그러나 질투는 약하다.

(살리에리의 예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질투로는 누구도 벨 수 없다.

시인처럼 그저 '탄식' 밖에는

 있는 것이 없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나를 빠르게

스치고 지나가 버린다.


시인이 다녀갔던 그 미래에서

기형도를 만나 다시 읽는다.

미래로 왔던 시인은 젊은 너를

 사랑하라고 말하고 다. 

청춘이 지나가 버리니 이제야 보이는, 

아이러니...

제일 좋은 옷을 골라 입고

거리로 나섰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하염없이 서성이고만 있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는 것처 조금 당혹스럽다.


기형도처럼 후회가 되더라도

부끄러움을 느끼더라도

기록해야 할 것이 있다면,

내 안에 무엇을 기록해야 할 것인가.


시인은 청춘에서 미래를 보았지만

나는 그 미래가 되어 청춘을 되돌아본다.

무엇을 기다리는지 모르고, 지금까지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는 내가

참 부끄러운 날이다.


질투가 기형도를 살게 했지만

이제 무엇이 나의 힘이 되어 줄 것인가.

누군가에게 한 모금의 물,

한 그릇의 밥이 될 수 없는 내 문학 앞에서, 부끄럽다.


청춘은 한순간이고, 질투도 늙어간다.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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