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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Dec 05. 2022

보내고 그리는 情은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모로다냐.

이시라 하더면 가랴마난 제 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情은 나도 몰라 하노라.


황진이 詩調 <어져 내 일이야>




2010년 가을,

그때 나는 되게 아팠다.

그토록 헌신적으로 나를 사랑했던

남자를 기어이 등을 떠밀어 떠나보냈다.

혼자 감당 치도 못할 그 일을 해내고서

어쩌면 평생의 씻김굿으로도 벗어나지

못할 운명의 칼을 내 목에 씌운 채

아팠다.

그때는 그 이별을 해 낼 수 있다는 믿음,

그것만이 반짝이는 내 등대였다.

그 후론 그를 만나지 못했지만

그저 어느 술자리에선가 누가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허청허청

떠나가더라는 소리만 언뜻 들었다.


황진이는 자존심 때문에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다.

그가 매달리고 애원했어도 아마

마음은 바뀌지 않았을 터다.

남자는 황진이의 성격을 너무나

잘 아는 이다. 구차하게 매달려 봤자

어차피 자신의 말을 번복할 황진이가

아니라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그래서 등을 보였을 게다.


"제 구태여"를 중장과 연결시키든

종장과의 행간 걸침이든,

주체가 떠나간 남자든

어차피 황진이가 그를 떠나보냈다는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고금을 막론하고

유일하게 자신하면 안되는 것이

이별이다.


매몰차게

한 순간

칼로 내지르듯

이별을 치러냈던 나와 그녀는 어쩌면

자신을 더 사랑한 것이다.



#황진이  #어져 내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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