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루 Oct 11. 2022

시와 국밥 한 그릇의 등가교환

긍정적인 밥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듯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함민복 詩 <긍정적인 밥>





시를 쓴 대가가  

쌀 두말, 국밥 한 그릇, 소금 한 됫박이다.

정신노동의 대가가 박하지만

시인은 마음 상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정신적 노동의 가치와

물질의 등가교환을 흡족해한다.

진정일 리가 없다.

아마도 시를 읽지 않는 세상에 대한

체념이자 자조일 것이다.


착한 시인은 한 술 더 떠서

자신의 시가 국밥 한 그릇의 따뜻함에

치지 못하는 것 같아서

더 노력해야겠단다.

여기서 못된 심사를 가진 내 마음이 상한다.

글이 알사탕 하나와도 바꿀 수

없어서도, 든 공에 비해 헐한 정신노동의

값어치 같은 거대담론 때문도 아니다.


쌀을 트럭으로 실어다 준다 해도

바꿀 수 없을, 글을 쓰는 이라면 누구나

서러워할, 이 따뜻하고 애틋한 시가

국밥 한 그릇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하는

이 시인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시가 아무리 삶의 사족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시인이 이렇게 말하면

나는 어떡하라고.

나 같은 쭉정이 글쟁이를 위해서라도

시인은 앞서 당당해줘야 할 것 아닌가.

살짝 삐치려는 마음이 든다.


...


그런데,

쌀 두말을 수확하기 위해 들인 농부의

노동과, 소금 한 됫박을 얻기 위한

그들의 땀을 떠올려 본다.

햇볕과 바람, 눈과 폭풍우 속에서

온몸으로 일궈낸 노동의 대가가

시인의 노동보다 헐하다고,

헐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반편이 같은 내 머리와 가슴을 친다.


시인의 말이 옳다.

겸손하고, 삶을 긍정하는 시인의 마음이

내겐 한 그릇의 밥보다 더 따숩고

서러운 위안을 준다.


시는 사람이다,

시인은 삶을 향해 뛰는 가슴이다.

그래서 시인을 家라고 하지 않고

人으로 부른다.


아직 家조차도 이루지 못한 수필家는

섧다.



#긍정적인 밥  #함민복

이전 10화 보내고 그리는 情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