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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Nov 25. 2022

등 뒤를 조심해

눈을 떠야 하는데 오히려 공포에 질려 눈을 더욱 꼭 감는다. 부드럽지만 차갑고 축축한 악마의 손길이 온몸을 휘감아 온다. 언어가 되지 못한 알 수 없는 공기의 울림이 나의 입에서 튀어나온다. 벗어나기 위해 버둥거릴수록 점점 더 아래로 끌려내려 간다. 아, 나는 이 악마의 입속에서 빠져나갈 용기가 없다.


매번 시도는 해 보지만 늘 같은 결과에 있는 데로 주눅이 들면서 모지리 같은 나의 모습에 짜증이 몰려왔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스스로 위안이 될 변명거리를 찾아본다. '배영을 못해도 자유형만 할 줄 알면 물에 빠져 죽진 않을 거야.' 수영 코치도 포기하고 나도 포기한 물을 등지자마자 몰려오는 극한의 이 공포감은 대체 무엇 때문일까.


두어 시간 걸은 후에 늘 강변에 있는 카페에 들러 차를 마시고 산책을 끝낸다. 많아야 일주일에 한두 번 걷는 것이 이제 루틴이 되어 가는지 처음보다 걷는 게 한결 수월해졌다. 카페에 들어서자 늘 앉던 구석 자리로 가서 앉는다. 카페뿐만 아니라 밥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가도, 은행에 가도, 병원에 가도 나는 항상 벽을 등진 구석자리에 앉는다. 사방이 터진 곳에 앉아 있으면 두려움까진 아니더라도 집중하기가 어렵다. 늘 항상 두 면이 벽이거나 적어도 등 뒤에 벽이 하나는 있어야 안심이 된다.


영국의 지리 학자인 제이 애플턴은 '조망과 피신'이론에서 인간은 타인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탁 트인 조망을 확보한 자리를 선택하도록 적응되었다고 말한다. 구석진 자리가 타인의 공격이나 시선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이로써 내가 볼 수 없는 등 뒤를 무서워한다는 것이 설명되진 않겠지만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초등학교 한 2학년 때쯤이었나. 엄마와 아빠가 대형 부부싸움을 한 적이 있다. 휴지통이 날아다니고, 책이 날아다니고(비싼 건 날아다니지 않았다), 베개가 날아다녔다. 나는 이 싸움을 말릴 수가 없었고, 도움을 청할 곳을 찾았다. 우리 집에서 아이 걸음으로 십분, 십오 분 정도 걸어가면 큰 이모 댁이 었다. 이모와 이모부께 도움을 청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땐 부부싸움이 칼로 물 베기란 것을 모를 때였다.(물론 지금도 모른다.) 조용히 내 방을 나와 안방을 지나 대문으로 나갔다.(전화는 왜 안방에 있고 지랄이었을까?)


이모 집에 가려면 조그만 공원을 지나가야 했다. 늘 학교 갈 때 지나가는 익숙한 공원이었다. 시계를 보지 않아 시간을 알 수 없었지만, 아마 자정이 다 된 시간이었으리라.(이모집에 도착하니 이모는 자고 있었으므로) 지금 생각하면 꼬마가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다. 그 공원에는 아름드리 소나무를 비롯한 나무들이 꽤 많았는데, 모두 귀신으로 보였다. 그곳을 지나가는 오 분여의 시간이 다섯 시간쯤, 아니 오십 시간쯤의 무게로 느껴졌다. 몇 개의 가로등이 있었지만 인적 하나 없었고(지금은 사람이 더 무섭지만), 뒤에서 귀신이 나올 것 같아 이가 부딪히도록 오들 오들 떨면서 내가 좋아하는, 용기를 줄 것 같은 만화 영화 주제곡을 부르면서 걸었다.('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짜짜짜짜 짜앙가 엄청난 기운이'는 개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지금 이렇게 회상하지만 그땐 정말 심각했고, 그 기억은 단 한 장면도 잊히지 않고 내 기억 속에 박혀있다.


그때의 그 등 뒤의 공포,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고 걷자. 만약 뒤돌아 보면 무서운 일이 생길 것이라는 금기를 스스로 만들었다.(민담에선 보통 지나가던 스님이 알려주지만) 이모 집에 도착하자마자 울며 불며, 그 뒤는 생략이다. 한편, 집에서는 내가 없어진 것을 알고는 또 한 바탕의 난리가 났던 모양이었다.(너무 고소했다. 앞으로 이 부부가 또 싸움을 하면 나는 집을 나가리라 생각했다.) 오래전, 복도식 아파트에 살 때는 밤에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를 걸어갈 때마다 그 공포가 되살아 났다.(이쯤 되면 상담을 받아봐야 될까?) 그래서 나는 일찍 일찍 집에 들어와선 잘 나가지 않는 집순이가 되었다는 이야기다.(해피 엔딩인 건가?)


여전히 등 뒤가 궁금한 동시에 두렵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 때문인지, 진짜로 어렸을 때의 그 트라우마 때문인지 아무튼 그렇게 됐다. 지금도 든든한 벽에 등을 바짝 붙이고 앉아 이 글을 쓴다. 내가 쓴 수필 <버드나무 여자>의 첫 문단을 자기 표절해 본다.



보이지 않는 것은 무섭다.
빛 한 줌 없는 어둠이 그렇고,
열 길 물속 같은 사람의 마음이 그렇고,
앞으로 살아 내어야 할 미래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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