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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Oct 14. 2022

쓸쓸한 날에

오늘 유난히 힘들고 바쁜 와중에 문득,

3호선 안국역에서 내려 인사동에 이르는

그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그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보통은 커피 한 잔 내려 마시기 전에

생각 비스무리한 것은 하지도 않는데

요즘은 커피 없이 생각하는 법을

익히는 중이라서 그런지 미지근한

생수 한 잔에도 문득 이것저것

생각이란 걸 하게 된다.


인사동 초입의 그 왁자지껄한

고갈비 집이며, 물론 여기서 파는 건

고등어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싼

임연수라는 생선이고, 함께 마시는

막걸리도 텁텁하고 뒤끝이 좋진 않지만,

거기 있으면 희한하게도 어떤

향수 같은 게 느껴졌다.

고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고향 같은 느낌이랄까.


돌이켜 보면 아름답기도 한 그때,

무엇 때문에 그렇게 생의 감각들을

애써 느끼며 아파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애처롭기도 하고

웃음이 나기도 한다.


오늘은 유난히 인사동

골목 어딘가에 아직도 그대로

있을 것 같은 그 찻집에서,

창 밖으로 오가는 사람들 구경하며

하루 종일 그림처럼 앉아만 있고

싶은 그런 날이다.

그 공간 어딘가에 주인 잃은 추억과

내 청춘, 내 사랑, 함께 나누던 숱한

이야기들도 둥둥 떠다니고 있을 터.


오늘처럼 가을볕이 사치스러운 날이

사람을 더 쓸쓸하게 만들 때가 있다.

그리고 기억력이 좋다는 것은, 그다지

행복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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