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유난히 힘들고 바쁜 와중에 문득,
3호선 안국역에서 내려 인사동에 이르는
그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그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보통은 커피 한 잔 내려 마시기 전에
생각 비스무리한 것은 하지도 않는데
요즘은 커피 없이 생각하는 법을
익히는 중이라서 그런지 미지근한
생수 한 잔에도 문득 이것저것
생각이란 걸 하게 된다.
인사동 초입의 그 왁자지껄한
고갈비 집이며, 물론 여기서 파는 건
고등어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싼
임연수라는 생선이고, 함께 마시는
막걸리도 텁텁하고 뒤끝이 좋진 않지만,
거기 있으면 희한하게도 어떤
향수 같은 게 느껴졌다.
고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고향 같은 느낌이랄까.
돌이켜 보면 아름답기도 한 그때,
무엇 때문에 그렇게 생의 감각들을
애써 느끼며 아파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애처롭기도 하고
웃음이 나기도 한다.
오늘은 유난히 인사동
골목 어딘가에 아직도 그대로
있을 것 같은 그 찻집에서,
창 밖으로 오가는 사람들 구경하며
하루 종일 그림처럼 앉아만 있고
싶은 그런 날이다.
그 공간 어딘가에 주인 잃은 추억과
내 청춘, 내 사랑, 함께 나누던 숱한
이야기들도 둥둥 떠다니고 있을 터.
오늘처럼 가을볕이 사치스러운 날이
사람을 더 쓸쓸하게 만들 때가 있다.
그리고 기억력이 좋다는 것은, 그다지
행복한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