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산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루 Nov 06. 2022

경주 산책

붉고 노란 가을 앞에 서서

돌림병처럼 번져가는 붉고 노란 나무들 사이를 걷고 싶었다. 잎이 죄다 떨어지면 어떡하나 가난한 화가 지망생 존시처럼 마음이 다급해졌다. 어디로 갈까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불국사로 가자고 마음이 시킨다. 고즈넉한 산사를 보고 싶기도 하고 단풍처럼 앉아 내 앞에 펼쳐질 가을을 내다보고 싶기도 했다. 이런 생각을 나만 한 것이 아니었는지 불국사는 평일임에도 고즈넉함은커녕 왁자지껄 사람 구경을 먼저 한다. 하지만 이것도 이것대로 좋다.


한 시간 정도면 경내를 돌아볼 수 있지만 나는 두어 시간 동안 천천히 쉬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걸었다. 그리고 불국사 다원의 시그니처인 -예전 같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들큰한 대추차도 마셨다. 내 생애 처음 마시는 대추차는 아메리카노가  간절히 생각나는 맛이었다.


예닐곱 명쯤 되는 가족인지 친구들인지 모를 중년의 아줌마 아저씨들이 다보탑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핸드폰 카메라로 그들을 잡고 있던 아저씨가 지나가는 나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한다. 내가 사진을 잘 찍게 생겼는지, 착하게 생겨서 그런지 알 길은 없으나 이런 일이 매잦아 자연스럽게 핸드폰을 받아 들었다. 친구들인지 친지들인지 모를 사람들을 바라본다. 하나, 둘, 셋을 외친 후 셔터를 눌러줬다. 모두들 즐거운 얼굴이다. 그들이 떠난 괜히 머쓱해 나도 다보탑에 핸드폰을 갖다 댔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마지막인 생을 불태우고 있는 단풍나무들, 적당한 햇살과 바람, 내가 보고 싶던 그림이다. 원인모를 우울도 낙엽처럼 여기다 떨구고 가야겠다 다짐한다.


불국사 경내의 단풍들은 단아한 멋이 있다


경주는 내가 좋아하는 여행지 중의 하나다. 경주에 오면 자연스럽게 生과 死 그리고 時間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사자와 생자가 공존하는 그곳에서는 죽음이 삶의 일부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고 사자들의 사이를 걷노라면 이렇게 누워도 좋을 듯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어렸을 때는 '시간이 갈수록 빨리 지나간다'는 어른들의 말이 선뜻 이해 되질 않았다. 그때는 시간이 그리 소중하게도 빠르게도 느껴지지 않아 시간아 가라 가라 그랬다. 그런데 요즘 들어 시간은 쏘아 놓은 화살 같다거나, 흐르는 물과 같다거나 하는 관용 표현의 위력을 절감하고 있다. 갈수록 가속이 붙는 시간을 그럴듯하게 풀이한 사람들의 표현을 빌리면 열 살짜리가 느끼는 1년은 그 인생의 십 분의 일에 해당하는 느낌이고, 서른 살 먹은 사람은 그 인생의 삼십 분의 일이 1년,  육십 살 먹은 사람은 육십 분의 일이 1년으로, 체감하는 1년 자체가 짧아진다는 것이다.


분을 쌓으면 한 시간, 한 시간이 쌓이면 하루, 하루가 지나가면 일 년이다. 떠들썩하게 맞이했던 올해도 두 어달 남짓 남았는데 해놓은 일을 돌아보면 남은 일수가 터무니없이 짧게만 느껴진다. 어어어 하는 사이 금가루처럼 잘게 나의 시간들은 부서져 내리는데, 노란 은행나무들 사이에 앉아 있을 때만큼은 시간이 잠깐 멈춘 것도 같다.


호텔 발코니에서 내려다 본 보문호와 아침 산책길


대단한 걸 바라지도 않았고,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폼나게 살고 싶다고 외친 적도 없다. 이런 자기 암시 때문인지 평범함에서 오는 서러움이 생채기에 소금물을 부은 듯 마음을 따끔거리게 할 때가 있다. 멋지고 근사한 반전을 기대하다 낙심한 사람 마냥 풀이 죽어 있는 내가 싫어서 떠났는데 도리어 자기 연민만 가득 짊어진 채 경주를 걸었다.



여행이란 몸을 움직여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이지만 실은 삶 자체가 여정이다. 기실 떠날 필요가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인생은 그 자리에서 견뎌야 한다는 것을 떠난 후에 알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