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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꽃 추억

가장 오래된 기억

by 마루

커다란 기계가 돌아가는 방앗간은 그야말로 처음 보는 기이한 광경이었다. 여기저기서 안개 같은 김이 피어오르고 어른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하얀 구름처럼 생긴 떡이 단내와 하얀 김을 피어내고 있었다.


지금은 고급아파트가 즐비한 부산 용호동의 언덕 너머에는 문둥이 마을이 있었다. 센병 환자를 어른들은 그렇게 불렀다. 찾아보니 2000년대 초까지도 있었다 한다. 내 인생에서 첫 번째로 기억하는 엄마의 주의사항은 '낯선 사람을 따라가면 안 돼!'였다. 문둥이는 아이들 간을 빼먹는 단다. 한센병 환자들이 들으면 기가 막힐 그런 모함들을 어른들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사실인 듯 해댔다.


늘 예쁘다고 쓰다듬어 주던 옆집 아주머니 손을 잡고, 방앗간에 가고 오던 길이 내 생애 최초의 기억이다. 물론 그 이전의 기억들이 영상으로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것은 서사가 아니라 이미지라서 그다지 신빙성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작은 집들의 앞이나 뒤에는 조그만 텃밭들이 있었고, 그 정도의 자투리 땅도 없는 집들은 길가에 화분들이 오종종 있었다. 지금의 그곳을 생각하면 격세지감, 상전벽해라는 말이 떠 오른다. 동네를 조금 벗어나니 황금물결이 너울 거리는 보리밭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제법 그럴싸한 논도 있었을 게다. 아줌마와 나는 밭둑에 앉아 계란을 닮은 개망초꽃을 한 아름 뜯어 꽃다발과 목걸이를 만들었다. 방앗간에서 나온 뜨끈한 백설기를 먹으며 흘러가는 구름을 본 기억도 선명하다. 아이의 시간으로는 꽤나 오래된 것 같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서너 시간 정도의 여행이었다.


아줌마의 손을 잡고 집 근처에 다다랐을 때 웬일인지 우리 집 근처에 동네 사람들이 몰려 있었고, 어디선가 낯익은 목소리가 들였다. 그 소리의 주인공은 엄마였고, 울부짖고 있었다. 나를 발견한 동네 사람들이 홍해처럼 갈라져 길을 터 주었을 때 엄마는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나와 아줌마를 발견한 엄마는 맹수처럼 일어나 달려왔고, 아줌마의 뺨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아줌마는 하얀 구름떡과 함께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엄마가 내 팔을 잡아 끄는 바람에 내가 한아름 들고 있던, 엄마에게 주려고 꺾었던 계란꽃도 바닥에 팽개쳐졌다.


그날 저녁 나는 아팠다. 생에 처음 겪는 거대한 통증에 정신을 잃었다. 그다음 기억은 병원 침대에 누워있었던 것으로 이어진다. 인과는 없지만 다섯 살의 나는 그날 맹장수술을 했다고 한다. 눈을 뜨니 수술이 끝나있었고,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아픔은 심연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지루한 며칠을 보내는 와중에 꿈을 꾸었나 보다. 옆집 아주머니가 병실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망설이다가 문을 살짝 열고 들어 왔다. 손에는 계란을 닮은 개망초꽃 한 아름과, 내가 좋아하는 바나나가 들려있었다. 반가웠지만 반가워해야 하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잠에서 깼다. 내 침대 옆엔 진짜 바나나와 계란꽃이 병에 꽂혀있었다.


산책 중에 이 개망초꽃을 만나면 자동으로 내 머리는 이 아련하지만 선명한 최초의 기억이 떠 오른다. 그 이후 그 옆집 아줌마에 대한 기억이 없는 것을 보면 그 동네에 오래 살진 않은 것 같다. 아이가 없었던 옆집 아주머니는 나를 유난히 귀여워했고 나도 잘 따랐었나 보다. 내가 유괴를 당했다고 생각했던 엄마의 심정보다 엄마의 분노를 오롯이 견뎠던 옆집 아줌마가 더 가엾다는 아이의 생각에, 나는 한동안 엄마를 미워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


6월만 되면 도시의 자투리 땅이든 시골의 논둑이든 저절로 피어나는 들꽃, 남에겐 그저 솟아나는 잡초지만 내겐 가장 오래된 기억 속에 있는 꽃이다. 내 인생 최초의 기억은 그렇게 노란 계란꽃, 개망초와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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