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이 있던 날 밤
새벽달이 조용해 보여 사진을 찍었다. 핸드폰 카메라의 셔터 누르는 소리가 너무 커서 이 고즈넉한 밤풍경에 폭력을 가한 것 같아 미안해진다. 늘 반달을 보면 차오르는 달인 지, 이지러지는 달인 지 잘 구별이 안된다. 그냥 반달이라 부른다.
작년 12월 3일 밤이 내게 가한 폭력이 잊히지 않는다. 수업이 있는 날은 10시가 넘어서 귀가하는데 그날도 열 시 반쯤 귀가했다. 무심히 TV를 틀었다가 상황을 인지하는데 조금 오래 걸렸다. 그 후 나는 손이 차가워지면서 극심한 추위가 몰려왔고 눈으로 보기에도 심하게 손이 떨렸다. TV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과 그에 맞서는 우리들 사이에서 끝없는 떨림과 공포와 분노가 검은 밤 달처럼 차 올랐다.
갑자기 냉장고 속에 있는, 아침에 끓여놓았던 뭇국이 떠올랐다. 양지고기를 듬뿍 넣고 연한 무를 나박나박 썰어 넣고, 싱싱한 대파를 큼직하게 넣어 끓였던 그 뭇국이. 인덕션에 뭇국을 올려놓고, 햇반을 전자레인지에 데웠다. 국은 금세 끓어올랐고 그릇에 담아 방금 데운 밥을 말았다. 반찬도 필요 없었다. 아일랜드 식탁에 서서 한 그릇을 후후 불어가며 다 먹었다. 그리고 신기하게 그 떨림이 멈췄다.
겁이 많은 사람이다. 그렇기에 내가 겁을 먹을 상황을 잘 만들지 않는다. 낯선 사람들을 사귀지 않고, 오해를 살만한 일도 하지 않는다. 누군가와 싸우지도 않고, 집에서 잘 나가지도 않는다. 그래서 나의 겁을 확인할 일이 거의 없고, 겁을 먹은 나를 목격하기가 싫다. 하지만 그날의 그 폭력적 상황은 내 집에서, 어느 누구도 들어오지 못할 안전한 내 집에서 그 폭력을 목격했다. 다시는 그런 폭력을 당하고 싶지 않아서, 집회에도 나갔고, 대통령 후보 유세현장에도 나가 연대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오늘 새 대통령을 보면서 나 하나가 가지고 있는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다. 선견지명을 가진 선구자들만이 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란 것도 증명했다. 너와 내가 한 송이씩 꽃피어 풀밭을 꽃밭으로 바꾸었다. 그 하나 중에 내가 있어 기쁜 날이다. 이 꽃밭에 철마다 다른 풀꽃이 피고 질 수 있도록 가꿔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된다. 그 꽃밭의 주인은 우리 '그 하나'이므로.
붉은 반달이 뜬 날, 뜬금없이 내게 가해진 지난겨울 그 폭력을 떠올렸다. 날짜를 세어보니 오늘 반달은 차오르는 중인 상현달이다. 우리도 곧, 저 달처럼 차올라 둥글어졌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