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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편도행 티켓을 쥐고

by 마루

서른 살 즈음부터였나 꿈이 있었다. 아니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꿈이 있다고 해야겠다. 돌아 올 기약 없이, 아니 돌아오지 않아도 될 편도행 티켓만 끊어 어디론가 날아가는 것이다. 저 서유럽이나 동유럽의 어느 한 소도시에서 나그네처럼 여행자처럼 살아가는 것.


그러다가 말도 잘 통하지 않을 유럽은 무슨. 국내 어느 조용한 소도시로 바꿨다. 언제가 되면 떠나자 다짐하다 다시 날짜를 연기하고 연기하고 여기까지다.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흐를 것이고, 더 이상 뒤로 미룰 수 없는 날이 오겠지. 그때가 아마도 떠날 수 있는 날짜가 아닐까. 바다에서 나아가려고 할 때, 앞에서 파도가 밀려온다. 그 파도의 힘으로 내가 뒤로 밀리는 것은 당연한 반동이다. 한 걸음 나가고 그 반동으로 반 발쯤 뒤로 밀리다 보면, 결국 반발씩은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 마음을 편히 가지자 다짐한다.


'현대수필'에서 작품을 보내달라고 해서 메일을 보냈다. 원고 의뢰는 메일로 오는데 마감 날짜보다 하루 이틀 일찍 보내는 편이다. 보통 문예지의 편집장들은 '옥고'를 보내달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겸양을 부려야겠다 싶어서 '졸고'를 보내 미안하다는 짤막한 편지를 쓴다. 대부분은 그걸로 끝이다. 책이 나오면 우편으로 책이 오고, 내 글이 좋았다면 다음에 또 메일이 온다.


이번 작품은 미리 써놨던 것을 며칠 동안 퇴고만 해서 보냈는데, 처음으로 편집장이 '옥고를 보내주셔서 감사하다. 덕분에 여름호에 푸르름을 더하게 되었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원고 잘 받았다는 답장을 보낸 이 편집장이 궁금해진다. 원고를 보내놓으면 책을 만드는 사람은 어떻게 읽었을까 궁금해지는데, 일반적으로 문예지에서는 원고를 보내달라는 메일은 보내면서 잘 받았다는 메일을 보내는 사람들이 드물다. 이 분은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작품을 내놓는지 아는 분이지 싶어, 참 고맙다.


수필을 써서 유명해질 것도, 돈을 버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쓰고 있다. 쓰는 생이란 그렇다. 결과를 알고 쓰는 사람은 없다. 글뿐만 아니라 사는 게 그렇지 않나? 결과를 알고 사는 사람은 없고, 그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수 없게 인생은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요즘 화두가 '승복'이던데, 나는 내 쓰는 생에 승복할 준비가 되어있다. 인생이란 어차피 '편도행 티켓'을 끊어 날고 있는 것인데, 중간에 무를 수도 내릴 수도 없지 않나. 가는데 까지 가 보는 수밖에.


제자가 박목월 시인에게 물었다.

"작가님, 대표작은 아무래도 <나그네>지요?"

박목월 시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 나는 대표작을 오늘 저녁에 쓸 것이네."


만물이 펴나는 봄, 나도 나의 대표작을 쓰기 위해 노트북을 펼쳤는데, 뜬금없이 편도행 티켓에 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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