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무리의 아이들이 빠져나간 빈 강의실을 정리하다가 이제 절정을 향할 벚꽃 무리를 본다. 수업을 마치고 재잘거리며 걷는 아이들이 흩어지는 벚꽃처럼 아름답다.
어제, 곧 절정으로 치닫게 될 벚꽃길을 걸었다. 겨울이 물러난 것에 실감이 나지 않았던지, 봄이 무척 그리웠던지 오늘 또 나가고 싶다고 몸이 보챘다. 어제의 꽃잎은 바람에 흩어졌을까. 아니면 아직 가지에 남아서 기다리고 있을까. 그리움이 발끝을 밀어내어 오늘 다시 그 길을 찾았다.
벚꽃은 여전히 피어 있고 곧 절정을 향하겠지만, 나는 안다. 청춘이 그랬듯, 이 화려함도 오래 머물지 않으리란 것을. 가장 아름다울 때 이미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내가 절정일 때 그땐 몰랐다. 그것이 청춘인지, 그 시간이 얼마나 빛나는 순간이었는지. 청춘의 시간이 계속될 줄 알았고, 그래서 나는 아낌없이 흘려버렸다. 하지만 청춘은 원래 그렇게 낭비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너무 소중해서, 그 소중함을 모른 채 써버리는 시간이 청춘이다.
벚꽃은 유난히 화려하게 피어나는 꽃이다. 우리는 앞다투어 그것을 찍고, 바라보고, 간직하려 한다. 하지만 벚꽃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어쩌면 지기 직전일지 모른다. 한껏 피어났다가 어느 날 문득, 눈부시게 흩어지며 사라지는 그 순간. 청춘도 청춘일 때는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그리고 쉽게 낭비한다. 조금 더 아껴둘 걸, 조금 더 사랑할 걸, 조금 더 간직할걸.
청춘은 지나간 후에야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이라서, 그만큼 애틋하다. 지는 벚꽃이 애틋한 것처럼. 우리가 청춘을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이 얼마나 빛나던 시절이었는지 깨닫는 것처럼.
벚꽃이 오늘 내 그리움을 화려하게 한다. 그리운 청춘을 다시 불러낸다. 이젠 어찌해 볼 수 없다. 이럴 때는 그저 그리워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