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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소감을 쓰다가

by 마루


"가장 어두운 밤에는 우리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묻는 언어가 있다. 우리를 서로 연결하는 언어를 다루는 문학은 필연적으로 일종의 체온을 유지한다."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 중에서-




작년에 발표한 내 수필 몇 편 중에서 한 편이 '올해의 작품상'을 받았다고 문예지 발행인께서 연락을 주셨다. 여전히 우리들만의 리그에서는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우리들이다. 그래도 일 년 동안 한 문예지에서 발표되는 수필이 400여 편이니 그중 작품상 10편에 들어간다는 것은 자부심을 가져도 될 일이라고, 발행인과 편집장은 말씀하신다.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쓰는 능력에 비해 국문학 전공자이기에 읽는 문학에는 눈높이가 높은 편이고, 내게도 엄격해서 한 번도 글을 괜찮게 쓴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는 풀어야 할 아픔이 있었기에 이십여 년 글을 써 왔고, 그 덕분에 지금은 나름대로 가슴의 응어리가 많이 느슨해진 상태이다. 이후는 글쟁이로 살든 그렇지 않든 별 상관이 없고, 문학으로 밥벌이를 하지 않아도 될 삶을 살고 있다. 성공에 대한 욕망도 없고, 게으르기까지 하기 때문에 남이 읽어주지 않는 글이라도 그저 내가 쓰고 싶을 때 쓰는 행위에만 집중한다.


수상 소감을 보내라고 해서 쓰다가, 작년 한강 작가의 노벨시상식 수상소감을 다시 떠 올렸다. 문학에는 인간의 체온이 있다. 그래서 쓰는 삶에 비해 읽는 삶이 더 만족스러운 건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다시 많이 읽고 있다.


리그가 다를 뿐 나도 수상소감이 활자화되고 처지가 비슷한 이들의 글과 묶여 책이 나올 테고, 이번 달 말에 있을 시상식에서 짧은 소감을 스피치해야 한다. 그것뿐이다.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것이 나를 안도하게 한다. 불안과 불편함을 병적으로 싫어하기에 안온한 내 생활이 깨지지 않는 한도 내에서의 인정과 변화를 원한다. 그래서 2군에서 뛰고 있는 지금이 나는 꽤 만족스럽다.


내가 존경하고 나를 응원해 주시는 분께서 자꾸 책을 내라고 하시니, 한 권의 에세이집은 낼 생각이고 그동안 썼던 글과 앞으로 쓸 글들을 모아서 머지않은 시간에 책을 만들 생각이긴 하다. 그래야 쓰는 내 삶이 정리가 될 것 같다. 동생이 삽화를 그릴 줄 알기에 그림도 몇 편 넣어서 에세이집을 꾸려 보려는데, 물론 몇 달이 걸릴지 아니면 수년이 걸리지 장담할 수는 없다.


그 이후는 모르겠다. 쓰지 않아도 되면 쓰지 않아도 되겠지. 서운하면 지금처럼 이곳에 주절거려도 되겠지. 모두 다 치열할 필요는 없겠지. 능력 없음을 욕망 없음으로 치환해도 되겠지. 이렇게 쓰며 살아가는 삶도 행복할 수 있겠지. 수상소감을 쓰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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