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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Jan 10. 2023

걸어온 길이 잘못되었다 깨닫는 순간 되돌아가는 용기

파이란

개차반 같은 삼류건달 강재. 주변사람 누구에게도 환대받지 못하고 무시와 환멸 속에서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것 같은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그도 알고 보면 나름의 희망을 간직하고 삶을 꾸려가려고 하는 한 '인간'일 뿐이다.


남루한 인생의 어느 날, 일 년 전 스치듯 지나쳤던 한 여인이 자신을 향한 외로운 사랑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순간, 강재는 쓸쓸한 주검 앞에서 절규하며 통곡한다. 강재의 눈물 속에는 자신이 팽개친 삶에 대한 회한이 담겨 흐르고, 이제 강재는 새로운 삶을 결심하지만 이미 그의 삶은 지칠 대로 지쳐 버린 후다.


"... 그래 나는 옛날에도 호구고 지금도 호구고 국가대표 호구다. 근데 이 여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친절하단다. 씨X... 뒤늦게 송장으로 나타나서 날더러 어떡하라구!"


삼류건달 이강재가 운다. 눈물의 짠맛이야 급수가 없겠지만 그가 흘리는 눈물은 특별하다. 새까만 후배들한테 "강재씬 세상 참 재밌게 살아." 비아냥을 들었을 때도 이렇게 비참하지 않았다. 난생처음 맛보는 슬픔, 강재는 그제야 자신의 우중충한 인생을 게워낸다.


자신이 돈을 위해 위장결혼을 해 주었던 중국인 아내 파이란의 주검을 수습하러 가는 여정은 우리가 찾아 나서야 할 희망의 길이며 어긋난 이전 삶을 다시금 수정해 나가는 과정의 길이다.


"... 너무나 잠깐이었지만 강재 씨의 친절, 고맙습니다. 강재 씨에 관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나이라든가 성격이라든가 습관이라든가 좋아하는 음식이라든가... 소개소에서 적어준 거 모두 기억합니다. 잊어버리지 않도록 보고 있는 사이에 당신을 좋아하게 됐습니다. 좋아하게 되자, 힘들게 됐습니다... 당신의 아내로 죽는다는 것 괜찮습니까?"


이국땅에서 죽음을 맞은 파이란의 유해를 안고 흐느끼는 강재의 모습을 보는 우리들도 자신의 삶을 회고하기에 충분하다. 강재의 삶은 처참하고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현재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고, 지구상에 살고 있는 종족 중 유일하게 인간만이 지나간 일 되돌릴 수 없는 일에 눈물 흘리고 자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첫걸음이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되돌아가는 사람과, 잘못된 길인 줄 알면서도 계속 가는 사람 두 종류로 나뉜다. 자신이 잘못된 방향으로 걸었다는 것을 깨닫고 되돌아가기로 결심한 순간 죽음을 맞은 강재에게 누가 감히 삼류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비디오 속의 파이란과 눈을 맞추며 미소하는 강재는 잘못 맺어진 관계들에 의해 죽음을 맞게 되지만 되돌아가려는 용기, 즉 인간의 실존을 증명한 채 떠났다.


두 사람은 영화에서 살짝 스쳐 지나갔을 뿐, 만난 적이 없다. 이 포스터들은 두 사람이 저 세상에서 이렇듯 다정하게 살아갈 것이라는 가정을 보여 주는게 아닐까.


세탁소에서 열심히 일하던 파이란을 주인 할머니는 인간 세탁기로 부른다. 우연한 설정은 아니었으리라. 파이란은 강재를 세탁하고 떠났으니까.


인간은 앞을 바라보면서 살아야 하지만,
자신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뒤를 돌아봐야 한다.
- 쇠렌 키르케고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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