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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Mar 19. 2023

문을 닫기 전에..

스즈메의 문단속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문'의 모티프를 우리나라 드라마 <도깨비>를 보고 생각했다고 한다. 문을 열면 끝없이 메밀꽃들이 펼쳐지는 도깨비와는 달리 <스즈메의 문단속>에서는 재난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이라는 것은 이쪽과 저쪽을 연결시켜 주는 통로이기도 하고, 닫으면 안전하게 바깥 세계를 차단시켜 주기도 하는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 존재다. 일상에서 문을 열고 나가면 비일상을 만나기도 하고, 그 비일상에 지칠 때 문을 열고 들어오면 편안한 일상으로 돌아올 수도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일상이 되어버린 재난을 다룬 여느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들과 별반 다를 바는 없는 이야기였다. 일본 사람들의 내면은 언제나 재난을 자신들의 곁에 있는 것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이 살아왔다. 이 영화에서도 하루키의 소설 속 주인공처럼 묵묵히 자신이 맡은 고독한 싸움(누가 맡긴 것이 아니라 스스로 뛰어든,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떠맡겨진)을 당연한 듯 수행하는 것이 매번 의아하기도 하다. 아마도 우리나라였다면 연대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겠지만 일본은 커다란 재난도 언제나 개인이 감당하고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동일본 대지진이 있었던 그날 아침, 쓰나미로 모든 것이 사라질 그날 아침, 사람들은 아무것도 짐작하지 못한 채 일상적인 대화를 나눈다.


"다녀오겠습니다"

"시험 잘 봐"

"저녁에 만나요"

"생일 축하해"


그들의 일상적인 대화가 마지막일 줄은 그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스즈메와 소타가 맹목적으로 자신들의 생명과 안전을 내던질 때,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동화되기보다는 내가 앞서 나눈 일상적인 말은 무엇이었는지, 돼지우리 같은 머릿속을 헤집으며 생각하려 애를 쓴다. 재난이라는 것은 곁다리에 불과하고(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감독의 의도대로 일상과 오늘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어쩌면 일본사람들은 그 일이 있고 난 후, 재난엔 체념을 일상엔 소중함을 깨달았을지도 모르겠다.


스즈메는 문단속을 했지만, 나는 오히려 문을 닫기 전에 방금까지 내가 누렸던 일상을 한 번 더 돌아보게 됐다. 이것으로 이 애니메이션은 내게 꽤 유용한 깨달음을 준다.


#스즈메의 문단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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