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에 소풍날을 좋아했다. 똑같은 일상에서 조금 해방되던 그런 날이 좋았던 것일 게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소풍 당일보다 전날이 좋았던 것 같다. 내일을 기다리는 그 설렘, 심장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면 나는 이 설렘의 묘한 두근거림이 좋다.
지난 15년 동안 일요일이 없었다. 항상 주말에는 고등부 수업이 있어서 남들은 병을 앓는다는 월요일이 내겐 휴일이었다. 내가 이 일을 왜 이렇게 열심히 하는가에 대한 회의가 작년부터 있었고, 조금은 베짱이처럼 살아보고 싶기도 했다.
15년 전 학원을 오픈하면서의 꿈은 하루에 잠깐씩 아이들 가르치고 남는 시간엔 여유롭게 독서도 하고 글도 쓰자 했건만, 무언가 시작하면 정말 성실히 하는 스타일이라서 나도 모르게 그만 또 열심히 하고 말았다. 물론 덕분에 아파트 평수도 넓혔고, 임대해서 사용하던 상가를 아예 사버리기까지 했으니, 결과적으로 보면 지난 15년은 알차게 살았다. 그렇지만변변한 추억 없이 아까운 세월들이 날아갔고 한 번도 수업을 펑크 내지 않은 덕에 여름휴가를 빼면 길게 여행 한 번 제대로 간 적이 없었다.
운영하고 있는 학원을 아예 정리하기란 쉽지 않고(먹고살아야 하니깐) 대신 수업을 과감히 몇 타임을 정리하고, (수입이왕창 날아갔지만) 안식년처럼 좀 여유롭게 지내고 싶었다. 올해 새 학기를 맞은 신입생들을 받지 않고, 대기 리스트를 과감히 정리하고 반을 없애고 합치니 그럭저럭 정리가 되었다.
이로써 꿈에 그리는 주 4일 근무가 되었다. 화, 목, 금, 토 수업이라 일요일과 월요일은 연휴가 되는 덤까지.
지난주 일요일부터 쉬었는데 소풍가는 아이처럼 눈이 일찍 떠졌다. 일요일을 탈환한 둘째 주인 오늘도 일찍 일어났다. 덕분에 여유롭게 브런치도 먹고 커피도 한 잔 하고, 있다. 물론 그동안에도 학원이 오후 출근이니 오전이 바쁘진 않지만, 그래도 노는 날 일요일이 훨씬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남들이 쉬는 날 나도 쉬는구나.(하하)
봄이면 봄이, 가을이면 가을을좋다고 하는 변덕쟁이지만 내가 진짜 좋아하는 계절은 이 맘 때다 초봄. 2월 말에서 3월 초의 이 맵싹한 쌀쌀함과 한결 누그러진 햇볕의 대조가마치 눈 내리는 날 노천탕 속에 앉아 있는 느낌이 든다. 곧 봄이 올 거라는 두근거림이 마음을 들뜨게 하고, 말 그대로 일요일 오후가 설레게 한다.
가까워서 자주 가는 감천 문화 마을과 영도 흰여울 문화 마을
이제 매주 연휴를 누리며 해 보고 싶은 것들, 이것저것 계획을 세워본다. 우선은 내가 살고 있는 도시 부산의 오래된 골목길 탐험을 하고 싶다. 옛날부터 골목길을 걸을 때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골목 양쪽 늘어서 있는 집집의 사연들이 참 궁금했고, 나름대로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상상해 보곤 했더랬다.
이제 내가 아는 곳, 자주 가던 곳이 아닌 낯선 동네부터 운동화 끈 땡겨신고 구석구석 걸어보겠다는 소박한 계획을 세워보는, 한가롭고 평화로워 웃음이 실실 나는 기분좋게 나른한 일요일 오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