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루 May 12. 2023

잘 지내고 있냐구요?

다큐영화 '문재인입니다'

시골마을에 정착한 전직 대통령.


다큐영화 <문재인입니다>는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 문재인의 이야기다. 재임 당시 외국 유수의 방송사가 문재인의 다큐를 원했으나 거절하고, 퇴임 후 <노무현입니다>를 만든 감독의 제안에 '와 보시죠'라는 한 마디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모두 알다시피 전직 대통령 콤플렉스가 있는 우리들은 퇴임한 대통령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궁금하다. 물론 한 쪽눈을 감고 보면 호불호가 엇갈리고 꽤나 시끄러울 테지만, 두 눈을 뜨고 보면 대통령이 아니라 '한 사람'이 보인다.


영화는 몇 챕터로 나뉜다. 열심히 농사짓는 농부의 모습과 반려동물들과의 생활과 이별,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대문밖의 비상식적인 소음들, 재임 시절 참모들과 주변 사람들의 증언들이 '사람' 문재인에 포커스를 맞춘다. 감독은 이런 일들에 대해 문재인이 그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시선을 주로 담는다.


영화는 시위대와 묵묵히 농사일에 전념하는 문재인을 교차 편집하고 간혹 담장너머로 그들을 바라보는 그의 뒷모습을 보여 준다. 바깥에서 매일매일 들리는 패악들을 가만히 바라만 보는 그의 뒷모습엔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에서도 그 속내를 끝까지 함구한다. 그래도 관객들은 짐작할 수 있다.


다큐 영화라는 한계, 불호가 있는 인물이라는 점등이 태생적으로 흥행할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평일 한낮, 내가 본 시간대엔 관객이 50여 명 정도였는데, 비구니 스님 몇 분과 수녀님 몇 분 그리고 4~50대의 여성들이 대부분이었고 부부가 함께 온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할리우드 영화보다 배가 넘는 광고를 본 후에나 영화는 시작된다. 


나는 국회에서 몇 년 근무하면서 정치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내가 본 그들 대부분은 정치 '인'이 아니라 정치'꾼'들이었다. 회의장에서 서로를 향해 입으로 칼침을 쏟아내다가, 함께 어깨동무하고 설렁탕을 먹으러 가는 모습들을 보면서 초등학생들도 저들처럼 속이 없진 않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들은 철저히 자신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을 위하는 것이 정당을 위하는 것으로, 정당을 위하는 것이 국민을 위하는 것으로 둔갑시킨다. 그들의 둔갑술은 구미호의 후예들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내가 정치인을 혐오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꾼들 사이에서 어쩌면 나약해 보이던 문재인이란 사람은 친구 노무현의 죽음으로 현실 정치판에 소환된다. 대신 복수해 달라는 사람들이 연일 대문 앞에 진을 치고 소란스럽게 하는데도 그는 긴 침묵에 들어갔고, 이것이 '운명'이구나 생각한다. 이른바 지지자들에 의해 불려 나온 것이다. 이런 것을 위선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으나, 영화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관객들은 느낄 수 있다.


애초에 권력욕이 없었던 문재인은 대통령이 된 후에도, 대통령에게 국민들이 쥐어 준 그 권력조차도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 걸 인터뷰에 참여한 참모들은 아쉬워한다. 바보스러울 정도로 그는 절대적인 원리 원칙주의자 였고, 그것을 깨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것이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때도 그는 아쉬워할지언정 후회하진 않는 듯하다. 그러나 그 부메랑으로 다친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말을 잇지 못했다.


영화를 보면 문재인을 나약한 이미지로 생각했던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외유내강'이란 말에 딱 어울리는 사람이다. 곰이와 송강이를 보내는 그 결단의 사례에서만 봐도 그렇다. 평범한 우리들은 절대 그렇지 못할 것이고 이해하지도 못한다. 현행법에 위배된다는 이유만으로 그 아이들을 보내기로 칼처럼 결단하는 모습에서 그의 고뇌는 읽힌다. 김여사와 비서관들이 눈물을 줄줄 흘리는데도 곰이와 송강이를 보내는 모습이 참 고독해 보였다. 또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 결단을 존중하는 주변인들을 보면서 문재인이란 '사람'의 강함을 또 한 번 느낄 수 있다.


 많은 식물들의 이름을 알고 있고, 꽃이 맺힌 잡초는 뽑지도 못하는 성격, 밭을 만들자는 그와 꽃밭을 원하는 김여사와의 티키타카에서도 상대가 일부 양보할 수 있도록 자투리 땅을 비워 둔 채 끈질기게 기다리는 모습이다. 문재인이란 사람이 대통령직을 수행할 때 어땠는지 짐작할 만하다.


노무현이 스스로 빛을 내는 사람이라면 문재인은 스스로 배경이 되길 자처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영화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은 배경에 비해 조금 어둡게 연출된다. 아마도 감독의 의도였으리라. 정치적인 영화는 아니지만, 지금의 굴욕외교를 꼬집기나 하듯 미사일 사거리 제한을 풀 때 트럼프를 설득한 장면이나 반도체와 관련한 대일 외교의 일들을 일부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한 사람'을 보여주기 위한 일화로 소개될 정도라 그다지 거슬리지 않는다.


애초 완벽한 인간이 없는데 완벽한 지도자를 바랄 수 있을까. 선거란 늘상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라지 않던가. 문재인 전 대통령의 공과는 역사에서 다뤄질 것이고 공을 폄하하고 과를 부각하는 것은 어느 시대에서나 있어왔던 승리자들의 특권이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다만, 문정부와 다르게 시스템이 무너지는 것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 그냥 봐 넘기기 힘이 든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통령은 나그네일 뿐이고, 그들이 무능력하건 초짜이건 간에 국가라는 시스템은 제대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영화가 후반으 갈수록 원로가 없는 우리 사회에 문재인은 충분한 인격을 갖춘 어른으로 느껴진다. 지성인답게 객관적 시선으로 영화를 보자 했지만, 왜 마스크가 젖도록 울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문대통령의 반려견 마루의 죽음에, 마루와 같은 나이로 비슷한 시기에 내 곁을 떠난 우리 집 반려견 몽이가 떠올랐기 때문이라 생각하자.


"잘 지내고 있냐구요? 

하늘을 이불삼은 듯 허전하고 지만, 잘 지내보겠습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잘 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