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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Jul 14. 2023

형용사와 동사

젊음과 늙음


태생부터 순간순간이 과거의 상태가 되는 것과, 매분매초 앞으로만 움직이는 것이 있다. 앞의 것은 젊음이고 뒤의 것은 늙음이다.


아이들과 문법 수업을 하다가 한 녀석이 '젊다'와 '늙다'의 품사가 다른 이유를 물어 온다. 형용사와 동사를 가장 쉽게 구분하는 방법은 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나 현재를 나타내는 종결 어미를 붙여보는 것이다. '젊다'는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이기에 '젊는다'와 같은 현재형 시제는 맞지 않는다. 동사인 '늙다'는 움직이는 것이기에 '늙는다'와 같은 현재형 시제와 어울릴 수 있다. 그 외 두 품사를 구분하는 방법을 설명해 주다가, 꽤나 철학적인 이 질문이 마음에 들었다. 물론 녀석이 의도한 질문은 아니었겠으나 잠시 생각에 잠기게 한다.


나는 얼마 전까지 자꾸 뒤를 돌아봤다. 길 위에 놓고 돌아선 인연, 갈림길에서 선택되지 못한 또 다른 길이 자꾸 눈에 밟혔다. 걸어온 거리만큼 그리운 것들은 점점 쌓이고, 조금만 스쳐도 꽃이 진 자리처럼 아쉽고 서러웠. 몸은 움직이는데 마음은 그 자리 그 상태 그대로였던 것이다. 맞다 잊고 있었다. 다는 것은 그 상태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 진행형으로 앞으로 계속 가야 하는 것이었다.


하루하루 늙음으로 움직이면서 좋은 것을 생각해 본다. 나를 짓누르던 자의식 과잉에서 조금 놓여났다. 그리고 모든 것의 경계와 선과 금이 흐릿해지는 것을 느낀다. 경계가 흐릿해지니 오히려 나 자신이 명증되고 집착하던 자기 평판마저 내려놓으니 자유로워졌다. 나를 지탱하던 못난 것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지기 시작하니까 오히려 늘 보던 것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눈이 흐려지면 심안이 열리는 것과 같은 이치인가 보다.


사람들은 늙음을 생물학적으로 접근하지만 오히려 서술이나 서사로 담아내야 한다. 인간의 한평생을 한 편의 서사시로 함축한다면 늙음은 사랑과 눈물과 환희와 좌절을 거쳐 클라이맥스로 향해 치닫는 것이다. 어찌 보면 젊다는 것은 시의 마지막 행으로 가기 위해 삶을 는 과정이다. '삶과 늙음'은 동어 반복이며 절대 분리될 수 없는 과정인 것이다. 늙어간다는 것은 머무름이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인다는 것을 오늘에야 오롯이 의식한다.


수업이 없는 날 특별한 일이 없으면 산책을 마치고 근처에 있는 카페 정원에서 차 한잔과 노을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해는 수줍게 떠오를 때와 달리 질 때는 자기의 온전한 모습을 보여 준다. 아직은 나의 전부를 드러내기엔 부끄러운 걸 보니 해가 지려면 아직 아직 멀었다. 젊어봤으니 이제는 인생의 클라이맥스를 위해 늙음을 차곡차곡 쌓아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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