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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Jul 19. 2023

오란비

오래 내리는 비


카메라를 줌으로 당긴 것처럼 강이 넓어졌다. 아파트 발코니에서 멀리 보이는 강폭이 집중 호우 때문에 어났나 보다. 뿌연 황사 같은 물이 무섭게 일렁이더니 오늘 반짝 보이는 해에 강물은 본래의 물색으로 돌아오고 있다. 지난 몇 주 내내 덜 마른 옷을 입고 있는 듯했다. 찬기운이 싫어 한여름에도 자주 켜지 않는 에어컨과 난방을 함께 틀었다. 눅눅했던 습기들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장마는 한자가 없는 순우리말이다. 한자 '길 장(長)'에서 유래된 오해하기 쉽지만, 길다의 한자음 '장'이 우리식 발음으로 굳어진 표현에다 '마'는 물의 옛말이다. 선조들은 장마를 '오래 내리는 비'라는 의미에서 '오란비'로 불렀다. 오란비에서 의미를 추출해 '장마'라는 새로운 말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나가는 우리 동네 하천 산책로가 폭우에 잠겼다. 나는 그곳을 그냥 냇가라고 부른다. 양촌리처럼 아낙들이 빨래하고 아이들이 멱을 감는 그런 냇가가 떠올라 그리 부르는 것이다. 그 하천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팔뚝만 한 잉어들이 산다. 피라미도 붕어도 간혹 장어도 보인단다. 그리고 그들을 노리는 왜가리와 백로도 나타난다. 비록 변두리지만 도시의 삶에서 그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해 한 번 나가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야간에 출몰하는 녀석들이라 내 눈으로 본 적은 없지만 안내판에 의하면 수달이 산다고 한다.



며칠 전 차에서 내리는데 조그맣고 기다란 녀석 하나가 아파트 주차장에서 꼬물거리고 있다. 뭐지? 쥐? 아니다 그보다 허리가 길다. 그럼 청설모? 아니다 꼬리가 다른데? 조심조심 다가가 보니 수달을 닮았다. 급이 핸드폰을 꺼내 검색해 보니 수달새끼였다. 은 비 때문에 대피했다 어미를 잃은 모양이다.


아파트에서 하천까지는 직선으로 잡아도 삼사 백 미터는 족히 되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헤매는 녀석을 보며 어떡하지 고심하는 사이 하수관과 연결된 입구틈으로 들어가 버린다. 대책 없는 측은지심이 발동한다. 백석의 시 <수라>의 화자처럼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하고 나도 간절히 소원했다.


이번 집중호우 때문에 일주일 넘게 산책을 나가지 못했다. 오늘 나가볼까 하다 그만둔다. 지난주에 그 하천 물에 휩쓸려 한 분이 실종되었다. 평소에는 어른 종아리 정도밖에 안 되던 수심이 2미터 이상 불어나서 산책하던 분이 휩쓸렸다 한다. 어쩌면 산책 중에 몇 번, 아니 한 번은 마주쳤을지도 모르는 분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다. 그분의 몸과 영혼이 어서 빨리 평안해지길 간절하게 바라 본다.


구름이 산을 치지 않듯, 물우리에게 너그러웠으면 좋겠다 싶지만 이것마저도 인간의 이기심일 테지. 


유독 길고 긴, 오란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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