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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Aug 12. 2023

그녀들이 우는 이유

댄스가수 유랑단


신탁을 기다리듯 초조하게 막 태어난 아기의 성별을 묻는 산모 어머니의 귀에 대답이 들려온다.

“딸입니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써클>은 절망을 바통처럼 넘겨받는 테헤란 여인들의 암울하고 슬픈 계주다. 여인들의 허연 발꿈치를 좇아 뒷골목을 헤매는 영화는 우울한 단조의 테헤란 멜로디를 감정 없이 들려준다. 거리는 에너지로 약동하지만 여자들은 그곳에서 열외다.


<댄스가수 유랑단>을 몇 번 보았다. 보다가 안 보다가를 반복했지만 특정한 서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미 정상을 찍은 여가수들이라 성장 스토리도 아니어서 몇 회 안 봐도 상관없었다. 볼 때마다 이효리, 김완선, 엄정화, 보아, 화사로 구성된 다섯 여가수들이 즐거워하는 사이사이 눈물을 흘린다. 특히 엄정화와 이효리의 눈물이 잦다.


포스터를 찍으면서 옛날 모습 그대로인 보아를 보고 이효리는 운다. 김완선과 같은 나이지만 데뷔가 빨라 자신의 우상이었다고 말하면서 엄정화는 운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만 봐도 울컥하고, 누구 한 명이 울면 따라 운다. 옛날 젊고 예뻤(지금도 예쁜) 자신과 동료화면을 보면서 울고, 나이 먹어가는 것을 이야기하면서도 운다. 멋진 무대를 마치고 내려오면서 연신 눈가를 만지고, 서로 잘했다고 다독이면서 울고, 관객 앞에서 노래하는 지금 행복하다고 말하면서도 눈물을 글썽거린다.


한때(물론 지금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휘어잡았던 톱 여가수들이 무에 그리 힘든 일이 떠올라서 우는 걸까. 전 국민적 인기와 환호를 받으며 이삼십여 년을 살아온 그녀들은 왜 우는가 말이다. 나는 동시대를 함께 보냈다는 추억보다 그녀들의 눈물의 의미가 궁금해졌다. 그녀들 보다 평범하고 힘들게 살면서 나이만 주섬주섬 먹고사는 여자들은 통곡을 해야 하는 건가? 매번 의아하면서도 나는 왜 감정이입이 되어 코끝이 시큰거리는 건지, 그럴 때마다 채널돌려버렸다. 


<써클>속 여자들의 삶은 수렁 속의 질퍽임이다. 고작해야 원하는 것은 부르카를 벗고 자유롭게 들이마시는 바깥공기 한 모금과, 좋아하는 사람과의 구속 없는 사랑,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영화는 왜곡되고 보편성을 상실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그녀들의 삶은 달팽이가 기어서 세계일주를 하는 것만큼 더디게 나아간다. 분명 전체는 아닐지라도 여전한 여자들의 모습이다. 이란에선 여성이라는 것 자체가 삶의 굴레지만, 우리들 누구에게나 벗어나고 싶은 굴레가 있다. 단지 무게의 차이일 뿐.


우리 같은 일반인들은 꿈꿔보지도 못하게 화려한 삶을 살아온 <댄스가수 유랑단> 속 그녀들도 부침은 있었으리라는 것에 생각이 이른다. 당연하지 않은가 여긴 대한민국인데. 그녀들이 울보가 된 이유를 속속들이 알 수는 없으나 지상에서 멀어져 높이 올라가면 갈수록 내려오는 길이 두려웠을 것이다. 빠르게 변하는 대중들의 욕구를 쫓아가는 것 또한 버거웠을지 모르고, 젊은 후배 여가수들을 보는 그녀들의 눈빛이 말해주듯 나이 들어가는 외모도 서글펐으리라. 그리고 자신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차츰 없어지는 좌절감도 느꼈을 테다.


세상은 조금씩 앞으로 전진한다고들 말하지만 아직까지는 세 걸음에 한 번씩 여성들에게 딴지를 거는 것은 여전하고, 정치인보다 오히려 연예인에게 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세상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 땅에서 여자 가수로 몇십 년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겠다.


하지만 이번 프로그램에서 그녀들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갈 수 있음을 보여 줬다. 그것이 '추억팔이'라고 폄하되더라도 그녀들의 노력은 아직도 뜨거운 박수를 받는다. 남들이 부러워할 삶을 살면서도 눈물을 흘리는 여가수들이 보기 싫어 채널을 고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녀들의 나이 먹지 않은 생각과 인생을 대하는 긍정적인 태도 때문이었다. 또 나와 같은 시간대를 산 그녀들이(특히 엄정화,김완선) 아직 건재한 것을 보면서 자꾸 나를 들여다보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 나이에..'라고 말은 하면서도 땀 흘리며 새로운 길 만들어 는 그녀들의 이야기는 새겨봄직하다. 시간오롯이 거쳐왔다는 그 당당함과 두꺼운 무대 화장을 지운 그녀들의 맨얼굴이 아름다웠다.


영화에서 테헤란 여자들을 창살 뒤에, 문 뒤에, 남자들의 등에 가려지게 배치한 미장센은 여성의 삶에 대한 하나의 추상적 은유다. 분만실의 문에서 눈뜬 카메라가 감옥의 철창문에서 눈꺼풀을 닫음으로써 <써클>은 그 순환의 고리를 닫는다.


'써클'속 여자들에 비해 우리들은 그래도 행복한 것일까. 분명 '댄스가수 유랑단' 그녀들은 행복을 찾은 듯 보인다. 수정해야겠다. <댄스가수 유랑단>은 성장스토리였다. 회를 거듭할수록 그녀들의 눈물은 지나간 세월이 아쉬워서가 아니라 자신들에게 씌워진 굴레를 , 뒤따르는 이들도 걸을 수 있는 길을 만드 기쁨과 설렘 때문이 아니었을까?


우리 인생이 고단하다 생각될 땐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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