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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May 17. 2023

음지의 꽃

끝내 밖으나오지 못한 브런치 서랍 속 글들을 지웠다. 제목만 있는 글, 저 혼자 한 편의 이 될 수 없어 조각난 글감들, 이제 문장 다듬기만 하면 서랍 속에서 나갈 수 있겠다 꿈꾸었던 글들에 쓰레기통 아이콘사정없이 눌렀다.


결혼한 적도 아이도 없는 내가 유산의 아픔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세상에 나왔으면 남들을 깜짝 놀라게 할 글감이 아니었을까? 한기어린 심장들을 잠시 녹여 줄 따뜻한 글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자꾸만 그 아이들을 놓친 것이 어미의 못남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니, 어쩔 줄을 모르겠다.


음지의 꽃으로 잠시 잠깐 내게 머물다가 이제는 재가 되어버린 내 문장들에게 삼가 안녕을 고한다.


오전에 이런 천인공노할 짓을 저질러 놓고 산책을 나섰다. 일주일에 두어 번은 꼭 나오는 아파트 앞 하천이다.(십여 년 전부터 고향의 강 살리기 운동이라뭐라나로 세금을 쏟아붓더니 꽤 그럴싸한 하천 산책 길이 만들어졌다. 담당 공무원들에게 시원한 아. 아 한 잔씩 쏘고 싶다) 한 시간여 걷고 나니 너무 더워  걷기를 중단하고 단골 카페에서 아. 아를 마시고 있다.


여긴 걱정 없어 보이는 중년의 아주머니들이 점령한 카페인데 오늘은 사람이 없어 브런치에 들어와 이런 쓰잘떼기 없는 글을 쓴다. 더위 먹었나 보다. 이럴 때도 있는 거라고 다독여 본다. 그나저나 매일매일의 산책 때문에 코만 탔다. 싫지만 내일부턴 모자를 써야겠다.



커피 다 마셨다. 이제 일어나야겠다. 왔던 길 다시 걸어가서 음지의 꽃들을 또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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