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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May 07. 2023

절집에서


나는 세상을 냉소적으로 보는 사람이라 종교는 없지만, 그래도 절에 가면 심신이 편해진다. 관광지에 있는 유명 절들도 좋지만, 동네 근처에 있는 조그만 절집에 가면 더욱 화엄세계에 든 중생처럼 미쁜 마음이 들곤 한. 정말 부처가 있다면 크고 소란스러운 도량보다는 이런 조그만 절집에 계시지 않을까 싶어 주위를 한 번 스윽 돌아보게 된다.


조팝꽃과 부처님 머리를 닮은 불두화가 피어있다


요즘은 모르겠지만 옛날에는 무슨 질문지 같은 것엔 항상 종교를 묻곤 했다. 나는 종교를 믿지 않으니 늘 '무교'라고 쓸 수밖에 없었고, 지금도 종교에 대해선 완전 중립을 지키고 있다. 물론 요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이상한 종교들을 제외하고 많은 이들이 이른바 '상식'선에서 생각하는 그런 종교에 대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종교에 대해 궁금하면 그 기원이나 역사에 관심이 있지 내가 그분(?)의 품으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일절 없다.


오래전, 엄마의 장례식에서 종교보다도 종교를 믿는 이들파토스가 느껴다. 내가 알고 있는 한 엄마도 '무교'였다. 그럼 그냥 고인의 뜻이 없는 것으로 알고 전통장례로 치르면 될 것이었다. 그런데 젊은 며느리가 세상을 떠나자 누구보다 비통한 표정을 지은 이는 바로 친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교회에 뒤늦게 입문(?)하셔서 열렬한 신자 비스무리 했고, 서울에 있던 나 대신에 동생을 맡아 줄 고모도 기독교인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장례를 주도한 큰이모는 보살급 불교신자였다.


아침저녁으로 기독교와 불교의 의식이 그들에 의해 진행되었다. 할아버지와 고모의 교회분들의 기도가 끝나면 큰이모네 팀들이 와서 관세음보살을 찾고 또 찾았다. 위태롭지만 모두 나름의 질서를 지켰고, 서로의 종교의식에 대해서는 일절 폄하하거나 딴지를 걸진 않았다. 종교의 대통합이 내 엄마의 장례식에서 이루어지나 싶기도 하고, 이게 무슨 시트콤 같은 상황인가 싶기도 했지만, 그들의 힘이라도 빌려서 아팠던 엄마를 위로할 수 있었으면 했다. 


엄마의 비석에 십자가를 넣느냐 불교의 만(卍) 자를 새기느냐로 또 한바탕 예송논쟁에 버금가는 일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오로지 관찰자 시점을 견지하던 나 모르게 제비 뽑기라도 한 것인지 아니면 열띤 토론배틀의 결과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부처님의 승리였던 모양이다. 엄마 산소의 비석엔 지금도 卍자가 새겨져 있다.


산책에서 만난 조그만 절집에 앉아있으니 시공간이 감각되질 않는다. 이것이 절이 주는 공덕인가 싶다. 그러나 불상이 모셔진 곳엔 들어가지 않았다. 절집의 마당을 미음완보하며, 삶의 가녘을 따라 배회하는 나를 들여다보다가 돌아온다. 그리고 엄마가 부처님의 품에 들어가 계시는지 알 길은 없지만 이 절집에서 엄마의 안녕을 부처님께 살짝 떠넘겨 본다. 무신론자의 합장 한 번으로 될까만은...


산책길에 잠시 쉬었던 벤치 위  등나무 꽃


어릴 때는 봄이 가면 여름이 와서 좋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는 것이 설레었는데, 점점 나이를 먹어갈수록 오는 계절의 반가움보다 가는 계절이 아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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