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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Jul 31. 2023

텅 빈 도시에서 비치 보이스를


이맘때, 태양이 있는 대로 자신의 존재를 알릴 때, 사자성어 같은 칠말팔초 이때, 발코니에 낮은 의자를 가져다 놓고 기분 좋은 서늘함이 살짝 정도로 온도를 맞춰 에어컨을 켠다. 그리고 비치 보이스의 LP를 턴테이블에 올리고 뜨거운 커피를 마신다.


늘 음악과 함께하는 일상이지만 일 년에 보름 정도는 매일 비치 보이스를 듣는다.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결성된 그룹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여름이면 늘 비치 보이스를 들으며 자랐다. 여러 곡들이 다 좋지만 지금도 Kokomo를 들을 때면 내 삶에서 그리운 사람들을 죄다 불러내어 골고루 추억한다. 특히나 그 옛날 내게 비치 보이스를 추천한 아버지 생각을 조금 많이 한다.


거리를 내다본다. 동네가 조용하다. 아니 내가 살고 있는 도시 전체가 비어버린 것처럼 한적하다. 그럴 리가 있나 부산은 전국에서 알아주는 피서지인데. 지금 동남쪽 어느 바닷가는 떠들썩할 테지. 그렇지만 내가 있는 이곳은 비치 보이스와 나 이외는 아무도 없는 것 같다. 발코니에서 내려다 보이는 거리도 너무나 한산해서 가끔 배달 오토바이 소리만이 몇몇 사람들의 생존을 알려온다.


폭우가 가고 폭염이 아스팔트에 남은 한 방울의 수분까지 빨아들이는 한 낮, 섭씨 30도를 훨씬 넘는 거리를 창을 이에 두고 서늘하게 앉아 내려다보는 것은 이질감과 안도감 사이 그 어디쯤에 있는 것 같다.


피서지의 젊은 서퍼들이 한바탕 놀다가 떠난 뒤의 바다에 가 볼 예정이다. 옛 인기를 추억하는 비치 보이스처럼 사람들이 모두 엉덩이 탈탈 털며 떠난 철 지난 바다에 가 보고 싶어졌다. 바다는 아직도 낡지 않은 비치 보이스의 노래처럼 철이 지나 찾아온 피서객도 맞아 줄 테지.


영화 '칵테일'에서 브라이언이 만들던, 토마토 주스와 맥주를 섞은 '레드아이'를 만들어 일탈 삼아 낮술 한 잔 해도 좋을 듯하다. 텅 빈 도시에서 비치 보이스를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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