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루 Oct 16. 2021

길품

만나는 모든 것이 슬프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눈물이 고인 여인을 연상시킨다. 태생이 여인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산등성이에 여인네의 가슴처럼 봉긋하게 솟은 칠십여 기의 고분들 때문일까. 나무 한 그루, 돌멩이 하나에서조차 슬픔이 느껴진다. 잠자리 날갯짓 같은 바람이 볼에 닿을 때마다 천오백 년 전 이 자리에 서 있었을, 이제는 전설이 되어 버린 그들이 눈앞에 오롯이 그려진다.  

꿈을 이루지도 못하고 한 순간 소멸해 버렸다. 역사 속 미완의 나라로 남아 있는 가야는 오로지 사자死者들이 남긴 유적으로 짐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가야의 숨결이 살아있는 고령 일대를 여행할 때 꼭 준비해야 하는 것은 상상력이라 했다.  


대가야 속으로 들어가는 길은 마을 앞 당간지주를 안고 있는 고령 향교에서 시작한다. 가야 시대 왕궁 터였다고 알려져 있는데 나라의 멸망과 함께 그곳엔 절이 지어졌다가 조선시대 때 향교가 들어섰다. 마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탁 트인 시야는 풍수쟁이가 아닌 사람이 봐도 과히 명당이구나 하고 탄성이 절로 난다. 향교를 지나면 삼림욕을 즐기면서 고분으로 향하는 거님길이 뻗어있다. 오른쪽은 금낭화, 패랭이 꽃, 원추리 등이 색색의 옷을 갈아입으며 피고 지는 야생화 단지다. 반대쪽에는 푸른 대밭이 펼쳐져 있다. 대나무가 바람에 스쳐 소리를 낼 때마다 망국지음이었을지 모를 가야금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우륵은 대가야 말기 가실 왕 때 사람인데 박연, 왕산악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악성 중의 한 사람이다. 가실 왕의 명을 받아 고령읍 정정골에서 열두 달을 본떠서 십이 현의 가야금을 만들었다. 가야에서 만들었으니 ‘가야금’이란 이름이 붙여졌는데, 정작 우륵은 가야가 망국의 길로 들어서기 전 신라로 망명을 한다. 그 후 그의 재능을 귀하게 여겼던 신라의 보살핌을 받아 대악으로 인정받는다. 나라와 함께 파멸의 길로 들어가지 않은 우륵의 행보가 조국을 등진 배신이었는지, 아니면 가야의 예술 혼을 후세에 남기겠다는 우국충정이었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짐작해 보건대 그것이 그가 걸어야 할 예술가의 길이 아니었을까 싶다. 고령의 옛 정정골이 한눈에 보이는 동산 위 기념탑과 영장각만이 그의 진심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대가야 고분들은 산 위에 있다. 얼마나 지체가 높은 신분이기에 산꼭대기에 무덤을 썼을까. 아마 죽어서도 현세인의 우러름을 받겠다는 미련이거나, 죽었지만 그들을 우러러보겠다는 갸륵한 마음들이 모였을 것이다. 산책로가 조성된 8부 능선을 따라 오른 뒤, 줄지어 앉아 있는 고분들 사이를 걸어가노라면 언젠가 한 번 와본 듯한 기시감旣視感이 느껴진다. 전설 속의 그들은 누구였으며, 어떠한 사연들을 끌어안고 여기 모여 앉았을까.  


천방지축 날뛰는 상상력을 다시 추슬러 고분들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큰 44호분을 재현해 놓은 전시관으로 길을 잡는다. 이 고분은 우리나라 최초로 발견된 다곽순장묘로, 한 개의 무덤 방이 아니라 신분에 따라 여러 개의 방을 구성하여 삼십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함께 매장되어 있다. 그 규모로 보아서 대가야의 왕이나 최고 지배층의 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추측되고 있다. 죽은 뒤에도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삶이 지속된다는 계세사상이 지배하던 당시였다. 현세에서 무덤 주인의 시중을 들었던 많은 사람들이 저승에서도 주인을 섬기기 위해 함께 묻혀있다.  
산책로를 따라오느라 햇볕에 노출되어 있던 눈이 전시관 안의 어둠에 익숙해지는 몇 초의 시간이 흐른다. 그 후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자못 엄숙하다. 무덤 주인의 위엄이 고스란히 몸으로 전해진다. 전시관은 직경 27미터의 거대한 무덤 내부를 그대로 복원해두어 가야시대의 무덤 구조와 순장 자, 유물들을 내려다볼 수 있게 했다. 최소한 서른여섯 명의 순장 자가 있었다고 한다. 말로만 듣던 순장의 실체와 마주한 순간, 윤회니 환생이니 하는 것들이 존재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한쪽에서는 서둘러 생겨나고 다른 쪽에서는 바쁘게 사라지는 것이 만물의 이치다. 심지어 생겨나고 있는 것조차도 그 일부분은 이미 사멸하고 있는지 모른다. 사상도 시대에 따라 살고 죽는다. 온 나라의 산이 무덤 천지가 될 것만 같았던 매장 선호 문화가 납골당이나 수목장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에는 유골로 다이아몬드를 만들어 주는 곳이 성황이라고 한다. 고인을 땅속에 묻어두지 않고 보석으로 만들어 늘 간직하겠다는, 예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이렇게 죽음에 대한 인식도 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한 명을 위해 희생되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아마도 숙명이자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이라 담담히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쯤 그들의 넋은 가장 살고 싶었던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영원은 시간의 끊임없는 흐름이다. 영원하겠다는 것은 눈을 감았다 뜨는 순간 이미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고 없을 새를 바라보는 것과 같다. 철기시대를 주도했고, 고령토로 불리는 토기 문화의 중심지였으나 흘러가는 강물을 어찌 막을 수 있었을까. 어쩌면 영원한 미완이 대가야의 길이었을지 모른다. 국가가 가야 할 길도 개인의 길과 같다고 보면, 어차피 인생이란 미완이라지 않던가. 우륵이 남몰래 뜯었을지 모를 망국애가亡國哀歌가 다시 들리는 듯 해 오백 년 대가야의 자취는 더욱 처연하게 느껴진다.  


시간이나 공간을 거치는 과정이 길이다. 지나간 시간들은 오늘 여기까지로 오는 길이었다. 여기 내 앞에 놓여있는 이 시간 또한 십 년이나 백 년, 아니 천년 뒤 짐작도 할 수 없는 그 시간들로 가는 길이다. 꽃에게는 아름다움을 맘껏 뽐내라는 길이, 벌레에겐 조금 더 의미 있게 살아 다음을 기약하라는 길이 있다. 이들의 길에 비하면 사람이 걸어가는 길은 그 어떤 길이라 해도 미로迷路가 아니라 미로美路이지 싶다.  
어제까지 쥐고 있었던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을 대가야의 길 위에 내려놓고 돌아온다. 지금 걷는 이 길이 보잘것없다던 내 안의 소리가 잠잠하다. 이것이 오늘 길품 판 삯일 테다.
전설 속의 그들이 걸었을 시간의 길 위로 나도 걸어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헛꽃피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