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사람은 완벽을 추구하기 마련이야. 하지만 나이 든 사람은 누더기 조각들을 바늘로 꿰매는 법을 터득하고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아메리칸 퀼트>
블랭킷 뜨기를 다시 시작했다. 봄에 시작했지만 여유가 없단 핑계로 미뤄 놓았었는데, 날씨가 쓸쓸해지니따순 촉감이 그리워져 꺼낸 것이다. 이번엔변덕 부리지 않고 기필코 완성하리라 굳은 다짐을 한다.
수다를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수다를 떨고 싶을 때가 있다. 여자 셋쯤 앉아서 살아온 이야기 살아갈 이야기를 두서없이 피우며,각자 바느질과 뜨개질을 하고 차를 마시다 접시가 깨질 정도로 들썩이며 웃기도 하는그런 수다가 그리울 때가 있다.
갖가지 실과 색색의 천조각을 모아 자기의 개성에 맞게 꾸며가는 '아메리카 퀼트 동호회' 할머니들과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젊은 아가씨.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커리어 우먼 핀은 외할머니와 이모할머니가 사는 집을 오랜만에 찾아온다. 대학원 논문을 쓰러 온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실은 동거하는 남자와의 갈등과 미래에 대한 불안함 등, 정리해야 할 것이 많은 복잡한 심경이었다.
그런 그녀가 시골에서 처음 만난 것은 세대차이 나는 할머니들의 따분하고 지루한이야기들이었다. 그러나 곧 색색의헝겊 조각들이 아름답게 완성되어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복잡한 심경들이 '나는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온 공허함임을 깨닫는다.
영화 <아메리칸 퀼트>
가끔,성공한 인생에 대해 생각한다. 성공하기 전에 간직하고 있던 열등감의 무게는 성공한 후에 얻어지는 자부심의 무게와 같은 법이다. 하지만 성공이란 것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평범한 경찰관과 결혼해서 평범한 30평 아파트에 평범한 아들 둘을 둔 내 절친한 친구도 자기는 성공한 인생이라고 힘주어 말하니까.
유리천장을 뚫고 성공하겠다는생각 같은 것은 애당초 없었고, 모두들 알아 봐 주는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 따윈 더더군다나 없었다. 나름 성실한 덕분에 경제적으로도 크게 부족함 없고, 결혼이란 것에 얽매이고 싶지 않은 에고(Ego)적 소망을 실현하며 한갓지게 살고 있는 지금'성공한 인생이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가지 않은 길이 아름다워 보여 내가 걷는 길과 비교하며 주춤거릴 때가 있다. 가끔은 대상 없는 질투에 몸을 떨기도한다.
한 올 한 올 뜨개를 하며 생각한다 삶이란퀼트라고. 조각천처럼 조금 모자라고어설퍼보이는 것이 인생. 왠지 틀린 것 같아자꾸자꾸 뒤돌아보는 것도인생이다. 그렇지만한 땀 한 땀 조각보를 이어삶의무늬를 엮어가는이 수고롭고도 값진 과정을 거치고 나면,완벽하진 않지만 꽤 괜찮은 조각예술품으로 완성되는 것 또한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