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강은 어른들의 동화 『눈물 상자』에서 세상 모든 일에는 나름의 사연이 존재하고 그 사연은 모두 눈물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이른바 각자의 이야기에 대한 ‘공감’일 것이고, 그 공감의 결과물이 바로 ‘눈물’이다. 세상의 모든 연한 것들에 눈물을 흘리는 ‘아이’. 사람들은 그 아이를 눈물단지라 부른다. 그 아이에게 눈물을 사 모으러 다니는 사내가 찾아온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눈물’을 찾고 있다고 말한다. 그 눈물은 바로 이 아이의 눈물인데, 눈물을 사겠다는 이야기를 듣자 이상하게도 아이는 눈물을 보여주지 못한다.
그러다 사내에게 눈물을 사겠다는 노인을 함께 찾아가고, 두 살 이후로 눈물을 흘리지 못한 백발 할아버지의 눈물을 본다. 아이는 할아버지의 사연에 깊이 공감해 눈물을 흘리고 드디어 ‘순수한 눈물’의 결정이 만들어진다.
"순수한 눈물이란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은 눈물을 말하는 게 아니야. 모든 뜨거움과 서늘함, 가장 눈부신 밝음과 가장 어두운 그늘까지 담길 때, 거기 진짜 빛이 어리는 거야. 눈물에 어린 빛깔들이 더욱 복잡해질 때, 네 눈물은 순수한 눈물이 될 거야."
연암 박지원은 그의 한문 수필에서 인간은 슬플 때만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이란 칠정의 감정이 극에 달하면 저절로 눈물이 흐른다고 말했다. 형용모순처럼 들리겠지만 우리는 눈물을 흘리면서 행복을 주고받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적 시선을 신경 써야 하는 어른이 되면서 우리의 등에는 ‘나잇값’이라는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에 아무 데서나 눈물을 흘릴 수 없게 된다. 해서 한강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 했다. 어른들도 다른 이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마음놓고 눈물을 흘리자는 권유이자 위로이다.
무릇 인생이란 길 위에서 찾는 것이라고 했지만, 아니다. 모두가 기면 발작증에 걸려 도로 위에 널브러질 필요가 뭐란 말인가. 간접경험도 충분한 경험이고 보면 마지막까지 가보지 않아도 작가들의 크고 작은 이야기를 통해서 현재를 되돌아볼 수 있다. 한강의 『눈물 상자』를 읽고 삶이란 눈물을 연료로 태우면서 가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림자 눈물샘에 고여있는 눈물을 애써 외면할 것이 아니라, 누구의 이야기에도 공감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 동화에서처럼 따뜻한 세상으로 가는 바른 항로가 될 듯하다.
“설렘이 반짝이 가루와 웃음 반짝이 가루란다. 가끔, 눈물을 많이 가졌지만 기쁨이나 웃음은 가난하게 가진 사람에게 선물로 주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