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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Dec 24. 2021

원더풀 라이프

사진 한 장

                                                                                                                

여기는 림보 역이다. 이승과 저승 사이의 중간에 위치한 이곳에는 매주 월요일이면 새로 죽은 이들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들은 한 가지 동일한 질문을 받는다.
“살아생전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 언제였습니까?”

앞으로 이 역에서 일주일 동안 머물면서 자신의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수요일까지 선택해야 한다. 그러면 그 순간을 똑같이 재현해 영상에 담아준다. 마지막 토요일 각자는 선택한 순간을 영화로 보게 되고, 가장 행복했던 그 하나의 기억만을 가지고 영원의 시간 속으로 떠난다. 우리가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사후 세계를 그린 일본 영화 <원더풀 라이프>는 행복한 순간에 영원히 머무는 것, 그게 바로 천국이라고 말한다.

 
죽은 후 자신의 일생을 반추하는 영화 속 인물들을 통해 관객들도 ‘나에게 그런 기회가 온다면 어떤 것을 촬영해달라고 할까?’ 고민에 빠진다. 부스럭부스럭 자신의 행복했었던 기억들을 찾아드는 이도 있고, 그렇지 못한 이도 있다. 그러면서 저마다 ‘진정한 행복의 의미란 무엇일까’라는 문제로 어렵지 않게 나아간다.  


영화 속 할머니는 관동 대지진 때 대나무 숲에서 그네를 타며 어머니가 만들어준 주먹밥을 먹을 때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첫 비행의 순간에 빛나던 구름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귀를 파줄 때 누워서 느끼던 어머니의 무릎 감촉을 기억하는 소녀도 있다. 그러나 마지막 날까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선택하지 못하는 이도 있다. 하나만을 선택하는 건 언제나 어려운 법이다. 행복한 순간을 고르는 것 역시 그렇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골라야 할 순간이 너무 많아, 또 어떤 이들에게는 선택할 행복한 순간이 없어 고민스럽다.


아파트로 이사 오기 전 살던 곳은 일반 주택가였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가는 좁은 골목길에 색색의 대문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그런 동네였다. 언제부턴가 골목 어귀에 내어놓은 평상에 할머니 한 분이 앉아 계셨다. 항상 꿈꾸는 듯한 시선으로 지나가는 사물(그 할머니는 지나가는 사람도 하나의 사물에 불과한 듯했다)들을 말끄러미 쳐다보곤 했다. 골목 어귀에 사람이 나타나면 할머니의 눈은 그 사람을 따라 걷는다. 그리고 반대편에서 강아지라도 한 마리 나타나면 또 시선은 강아지를 따라 쫄랑쫄랑 걷는다. 얼굴엔 세월을 살아냈다는 훈장처럼 깊게 파인 주름과 검버섯이 드문드문 피어있었고, 옷차림은 볼 품 없었으나 늘 깨끗했다. 삶을 짊어지고 살았다 하기엔 너무나 조그만 등을 둥글게 말고 평상 위에 올라앉은 그 할머니가 치매노인이란 것을 알고는 의아했다. 보통 생각했던 치매노인들에 비해 너무나도 다소곳하고 조용히 앉아있었기에 그랬다. 그렇게 몇 시간을 앉아 계신지 모르지만 그나마 비가 오거나 해가 지고 나면 누가 와서 모셔 가는 듯 보이질 않았다. 괜한 측은지심에 그 할머니만 보면 눈에 티가 들어간 듯 따끔거렸다.


인간의 두뇌에서는 기억과 망각, 두 개의 길항작용이 끊임없이 이루어진다. 그것은 아름다운 추억을 상기시켜주기도 하고, 나는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가라는 정체성을 규정하기도 한다. 또 한편으로는 아픈 기억, 창피했던 순간 등이 세월이라는 묘약의 도움을 받아 조금씩 지워져가기도 한다. 기억해 두는 것이 중요한 만큼 때로는 망각도 필요한 것이 세상사다. 진공청소기가 먼지를 빨아들이듯 치매라는 것이 모든 기억을 앗아갔다 하더라도, 가장 행복했던 기억의 한 순간에 할머니가 머물고 계셨으면 하고 소망했다.


'나는 언제 가장 행복했을까?' 차창밖으로 흐르는 무연한 풍경에 마음을 빼앗길 때나,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머루처럼 까만 눈동자를 볼 때, 공을 던지면 신나게 물고 오는 우리 집 강아지를 볼 때, 뜨듯한 바닥에 배 깔고 책 읽을 때 등 일상이 주는 작은 행복들도 참 많다. 그런데 문제는 ‘가장’이라는 수식어다. 가장, 제일 좋았을 때…….


가끔 가난한 나라 국민이 더 행복하다는 기사들을 본다. 행복지수와 관련된 이야기인데 상위를 차지하는 나라들 대부분은 우리가 생각하는 선진국들이 아니고 그중 우리나라는 아시아에서도 거의 꼴찌를 차지한다. 이 행복지수는 행복이 물질적 풍요와는 무관하다는 제법 의미 있는 결론을 도출한다. 가난한 나라일수록 자신의 종교에 의지하면서 적은 것에 만족하고 조그만 것에 행복을 느끼는 것일 게다.


자신을 불행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도 더 불행해질 여지가 남아있는 사람이고, 아주 작은 일에도 기쁨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불행도 위력을 상실한다고 믿는다. 불행이란 알고 보면 행복이란 이름의 나무 밑에 드리워진 그늘 같은 것이니까. 그래서 달라이 라마도 '삶의 목표는 행복에 있지만, 그 행복은 각자의 마음 안에 있다'라고 했을 것이다.


서재 책상 위 사진 한 장을 본다. 아마도 식물원이었을 게다. 진홍색 버버리 코트를 입은 엄마와 회색 체크 콤비를 입은 아버지가 팔짱을 끼고 행복하게 웃고 있다. 그런 포즈를 주문하고 그들을 뷰파인더로 보고 있는 사람은 딸이다. 그 딸도 행복해 보인다.


지금 사진은 빛이 바래고 있고, 딸은 사진 속 그들이 매우 그립다.



#원더풀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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