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데모 / 정보라
"삶이 고통의 바다라서 그렇다. 내가 전공한 러시아 혁명기 유토피아 소설은 대부분 고통에서 시작한다. 세상이 이렇게 고통스러우니 혁명을 통해 유토피아를 만들자는 이야기다. 그게 와닿았다. 고통은 남이 대신 겪어줄 수도 없고,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언어도 없으니 남한테 전달할 수 없다. '고통은 쾌락의 반대말인가. 그러면 고통이 없는 상태가 쾌락인가. 고통도 쾌락도 없는 상태는 무엇이냐' 등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정보라 작가
정보라 작가는 왜 '고통'이란 주제에 관심을 보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아무튼> 시리즈는 개인적이지만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은 주제, 취미, 취향을 다룬 에세이로, 책 사이즈도 작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아무튼, 데모>는 63번째 <아무튼> 시리즈다. 정보라 작가의 취미는? 맞다. 데모다. 정보라 작가가 직접 투쟁한 집회와 시위의 현장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했다. 다른 <아무튼> 시리즈보다 매우 묵직한 주제를 닮고 있다.
취미가 데모(집회)라니. 데모란 (물론 시끄럽고 성가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약자의 곁에서 그들의 소리를 함께 전달하며 그 곁에 머무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시위를 비롯해 이태원 참사, 광화문, 전장연 이동권 시위, 오체투지, 고공농성 등 듣기만 했거나 남의 일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는 현장에서 체험하면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정보라 작가는 데모 현장에 있을 때 작품 구상이 잘 된다고 한다. 그의 장르문학은 행동하고 경험하는 것이 작가의 작품세계를 더 깊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난 3월 마지막 주 토요일 서울에서 시상식이 있었다. 내가 쓴 수필이 '올해의 작품상'을 받았기에, 올라가서 상장과 상패를 받았다. 지루한 시상식을 끝내고 만찬에도 불참하고, 날듯이 호텔로 뛰어가서 전투복(추리닝)을 갈아입고 안국역 집회현장으로 갔다.
"나는 데모하러 나가서 동지들을 실제로 보면서 실제로 땅을 딛고 같이 행진하는 것을 좋아한다. 글자 그대로 걸을 때마다 조금 더 좋은 세상에 가까이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된다. 지치고 힘들어도, 우리는 더 좋은 세상을 위해 함께 나아갈 것이다. 투쟁." - <아무튼, 데모> P.176
시상식보다는 훨씬 생기 있었고, 그곳에서 보고 들은 것이 내 서재에 앉아 에세이를 끄적거리는 것보다, 살아있다고 느꼈다. 항상 혼자 생각하고, 묻고, 답했던 내가 끈끈하게 연대로 묶여 함께 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을 체험한 것이다. 집회 말미에 정태춘 님의 등장에는 서러움이 명치끝에 걸리기도 했다.
(전략)
비가 개이면
서쪽 하늘부터 구름이 벗어지고
파란 하늘이 열리면
저 남산 타워쯤에선 뭐든 다 보일 게야
저 구로 공단과 봉천동 북편 산동네 길도
아니 삼각산과 그 아래 또 세종로 길도
다시는
다시는 시청 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자
절망으로 무너진 가슴들 이제 다시 일어서고 있구나
보라 저 비둘기들 문득 큰 박수 소리로
후여 깃을 치며 다시 날아오른다 하늘 높이
훠이 훠이 훨 훠이 훠이 훨
빨간 신호등에 멈춰 섰는 사람들 이마위로
무심한 눈빛 활짝 열리는 여기 서울 하늘 위로
한 무리 비둘기들 문득 큰 박수 소리로
후여 깃을 치며 다시 날아오른다 하늘 높이
훠이 훠이 훨 훠이 훠이 훨
훠이 훠이 훨 훠이 훠이 훨
훨훨
-정태춘 노래 <92년 장마, 종로에서>
다시 이 노래를 들으며 눈물 찍을 줄은 몰랐다. 아마도 이 나이에 다시 여기에 나와 있을 줄 내가 몰랐던 것처럼, 정태춘님도 다시 시위 현장에서 노래할 줄을 몰랐을 테다. 추운 날씨도 아랑곳없이 맨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우리 스스로에게 연민이 피어오르다가도, 일상을 앗아간 누군가에겐 분노를 내지르는 마치 다중인격자처럼 내 안의 여러 모습이 천방지축 날뛰었던 몇 달이었다. 독서도 제대로 하기 힘들었고, 에세이를 쓰는 것은 더더욱 힘들었다. 안연하게 인생을 흐르고 싶었는데, 불의를 보면 꾹 참으려고 했는데, 내 안에 있던 '투쟁'이란 낯선 단어가 다시 튀어 올랐다.
지난 금요일, 참으로 다행스러운 소식을 듣고도 고통스러웠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기에, 고통이야 온 인류의 관심사라고 다독여도 아직은 여진이 남아있다. 역설적이지만 살아있기에 고통을 겪는 것이다. 그렇다면 죽음과 삶을 명확하게 구별하는 한 가지가 어쩌면 '고통'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런 고통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어, 서로 의지하고 연대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유토피아가 나의 사후에 온다고 해도, 지구라는 희망 없는 행성에서 그나마 작은 불빛 하나 되고 싶다.
자유주의적-인본주의적 유토피아’를 믿는 사람은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 유토피아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지는 않지만 꼭 내 눈앞에서 이상향을 보는 순간이 오지 않더라도 어쨌든 더 좋은 앞날을 위해서 계속 노력한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철폐, 성평등, 여성해방, 장애해방, 노동해방, 인권존중, 세계평화를 외치는 많은 동지들이 그런 완벽한 세상이 당장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가 소리치고 행진하고 파업하고 농성하고 투쟁한다. (중략) 나는 전반적으로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데모해도 크게 불이익이 없는 삶을 살고 있으니 (퇴직했으므로 이제 더 잘릴 직장도 없다) 조금이라도 유리한 입장에 있는 내가 행진이라도 한 번 더 하고 구호라도 한 번 더 외치고 집회를 할 때 머릿수라도 하나 더 채우면 나와 동지들이 원하는 세상이 그나마 아주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질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 『아무튼, 데모』 P.168~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