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가게, 오늘도 문 열었습니다 / 이미경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 구판장을 아시나요? 그 옛날, 지나가는 사람들의 쉼터, 동민들의 사랑방, 밤새 동네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들이 모여들던 곳. 아낙들의 수다로 한숨과 웃음꽃이 교차하던 곳. 형형색색의 과자 봉지가 아이들을 유혹하던 곳. 누렇게 빛바랜 외상장부가 홀로 지키던 그곳, 장부가 늘어나도 독촉이 없던 그곳. 그곳이 문득 그리워질 때가 있다. 세월이 흐른 탓이 아니라 사람 냄새가 그리운 때문이리라. 해가 저물고 동네가 어두워져도 가게 앞은 전봇대 가로등 불빛으로 환하게 밝아 저녁 먹고 나온 아이들이 하나둘 모여 한바탕 놀아대는 신나는 놀이터가 됐다. 다방구,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신발 감추기 등을 하며 맘껏 뛰어놀고 머리 맞대고 달고나 해 먹던 최고의 놀이공간이었다. 유년 시절 가장 즐거운 기억이 구멍가게에 숨어 있다.”
나처럼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사람은 모두 구멍가게의 추억이 있다. 뽑기를 해 먹다가 스웨터에 설탕을 잔뜩 묻혀서 엄마에게 등짝을 맞거나, 하교 때 집보다는 구멍가게를 먼저 들렸던 기억들.. 아련하다.
'어쩌다 사장'이란 TV 예능 프로그램이 있었다. 유명 배우들이 시골의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구멍가게는 일반적으로 아주 작은 소매점이다. 특히 시골의 구멍가게는 약국과 철물점 분식점 주점 등 다양한 기능을 한다. 수요에 의해서 모든 것을 잡다하게 갖추어 놓는 곳이다. 마을의 사랑방도 되었다가, 여론의 장도 되었다가 여러 가지 기능으로 트랜스포머처럼 변신한다. 그에 따라 주인장은 상담사도 되었다가, 약사도. 농부도, 주방장도 된다.
섬세한 그림으로 독자를 사로잡는 이미경 작가의〈구멍가게, 오늘도 문 열었습니다> 전편 격인 <동전 하나로도 행복해던 구멍가게의 날들> 두 책은 심심할 때마다 꺼내본다. 글도 읽지만 주로 그림을 보며 힐링하거나 추억에 젖는다. 누군가에겐 옛 추억을, 요즘 세대들에겐 이색적인 복고체험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이 옛 기억을 떠올리는 '어제'의 이야기라면 <구멍가게, 오늘도 문 열었습니다>는 AI가 춤추는 세상에서도 자기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오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구멍가게 주인 어르신들의 이야기와 작가의 이야기를 다정한 그림과 함께 보다 보면, 그곳에 내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 미소가 절로 피어오른다. 여행길에 찾아 나서고픈 충동을 억제하기 힘들게도 한다.
작가는 아이를 낳고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경기도 광주 퇴촌에 살고 있었는데 벚꽃이 흩날리던 어느 날 보랏빛 슬레이트 지붕의 구멍가게를 만났다. 그 구멍가게가 갑자기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가슴이 뛰고 즐겁고 행복했다. 그렇게 구멍가게와 나의 인연은 시작됐다.”
이 책에 실려있는 모든 구멍가게를 찾아볼 수는 없지만, 가까운 곳에 있는 몇 곳을 들려볼 예정이다. 각박하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그 터를 오래 지키고 있는 '구멍가게'를 찾아 과거의 따뜻한 감성을 다시금 살려보고 싶다. 그림 속의 멈춰있는 시간 속으로 들어가, 그네들의 이야기와 내 기억 속의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면 다시 살아갈 힘을 얻지 않을까. 무조건적인 과거로의 회귀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 우리 사회는 너무 나가는 것 같아 슬프다. 각자 자기의 언어로만 이야기하며, 상대의 말엔 귀 기울이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가게는 항상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묵묵히 세상을 응시하면서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구멍가게, 그리고 나무, 사람을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