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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북세이 23화

책이 나왔고, 나는 외(外)다

2025년 대표에세이 / 김종완, 엄기백 외

by 마루


수필(隨筆)을 영어로는 미셀러니(miscellany)와 에세이(essay)라고 한다. 엄밀히 따지지 않으면 수필의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우리 수필에도 경수필과 중수필이 있듯이 미셀러니는 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을 가볍게 쓴 글인 반면, 우리가 흔히 수필에 대응하는 영어 명칭으로 알고 있는 에세이(essay)는 좀 더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글로써 소논문이나 중수필을 말한다. 어쨌거나 수필이든 미셀러니든 에세이든 독자와 맞선 보듯이 일대일로 만나는, 어디까지 진실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는 자기 고백적인 글이다.


책이 나왔다. 한 수필전문 문예지에서 한 해 동안 발표된 400여 편의 작품 중에서 50여 편에 뽑혔고,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또 400여 편의 작품 중에 단 열 작품에 주는 '올해의 작품상'을 나도 수상하게 되어 시상식에도 다녀왔다. <에세이스트> 3월호에 수상소감이 실려있기에, 소감을 길게 말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멋진 수상소감은 내년에 다시 이 자리에 와서 말씀드리겠다'라고 말하고 마이크를 놓았다. 좌중에서 호탕하게 웃어주셨다. 그 말은 진심이 이었다. 내년에도 그 자리에 선다면, 그래도 내 글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심사위원 중 한 분은 내 글이 현대인들의 고독을 다룬 한 편의 드라마라고 했다 한다. 그분이 아마도 전직 드라마 PD였기에 그렇게 보신 듯하다고, 잡지 편집장이 수상작 발표도 되기 전에 내게 전화를 주셨더랬다. 부끄럽지만 감사하다.


어쨌거나 이번 책도, 공저다. 누구누구 외 몇 명중 1명이다. 아마도 이런 책만 서너 권 낸 것 같다. 매년 동인지가 나오고 문예지 몇 개에 두세 번 실리고, 글이 좋았다면 이렇게 단행본에 실리기도 한다. 조금 있으면 <현대수필> 여름호에 내 수필 한 편이 실려 나온다. 내년에도 별 다르지 않을 터이나, 내 이름으로 된 단행본을 내기 위해 열심히 쓰고 있다. 하지만 언제 나올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나는 수필의 개념처럼 그저 붓 가는 대로 쓴 글, 아니 손가락 닿는 대로 두드린 글 수필, 조금 고상해 보이게 에세이를 쓴다. 피천득 선생은 "20대에 시를 쓰고 30대에 소설을 쓰고 40대에 수필을 쓴다"라고 했다, 혹자는 수필을 쓰려면 '수필적인 삶을 살아야 된다'라고까지 말한다. 그만큼 수필은 쉽게, 열정만으로는 쓸 수 없는 글이다. 아는 만큼, 보는 만큼만 쓸 수 있는 것이 수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천득 선생은 연륜과 세상을 보는 눈이 뜨이는 40대 정도가 되면 좋은 수필을 쓸 수 있는 조건이 된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 싶다.


현재 나는 무릎을 칠만한 좋은 수필을 쓸 수 있는 나이가 넘어섰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문학의 변두리에서 배회하고 있다. 중국의 문장가 구양수가 한 말을 떠 올린다. 좋은 글을 쓰려면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 보라."


어떤 수필가는 모두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글을 딱 열 편만 쓴다면 펜을 놓아도 좋다고 했지만, 나는 정말 좋은 글 딱 한 편만 남기고 절필해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평소에는 눈에 잘 띄지 않던 나무도 1년에 한 번 꽃을 자랑한다. 1년에 한 번 힘을 다해 꽃을 피우는 나무들처럼, 언젠가 피울 꽃 한 송이를 위해서 나는 오늘도 읽고 읽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쓰고 또 쓴다.


공저가 아니라 누구누구 外 한 명이 아니라, 내 이름이 오롯이 새겨진 책을 한 권은 내야 할 게다. 아마도 내년 즈음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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