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by 마루

지난 일요일 평산책방 마당에서 정태춘의 북콘서트가 있어 다녀왔다. 급하지 않은 책들은 리스트업 했다가 평산책방 가서 사 오곤 한다. 이 시골책방에 가면 마음이 한없이 느긋해지는데, 나의 오랜 꿈이 책방이어서 더욱 그런 듯하다. 가서 차 한잔하고 책 고르고 읽다가 책방지기님 만나고 돌아온다. 자주는 못 가지만 두어 달에 한 번은 가려고 한다.


지난 3월 안국역 집회 현장에서 정태춘의 노래를 들었다. '아, 대한민국' 앨범을 불법복제 테이프를(금지 음반이었다) 열심히 들었던 옛날이 떠 올라 울컥했고, 추운 날 길바닥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이 생기기도 했다. 또다시 이전의 그 무도한 사회로 돌아갈까 걱정하는 그들 사이에 끼어, 나도 옛날처럼 노래를 듣고 따라 불렀었다.


이번 북콘서트에서는 오랜만에 나온 음반의 신곡과, 동명의 노래 시집도 발표해서 사인회도 겸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 '북한강에서'와 '92년 장마, 종로에서'도 들을 수 있었는데, 감회에 젖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었을 게다. 정태춘도 이런 작은 시골마을 백 명 남짓한 관객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사인회를 열어 본 기억이 있었을까 싶다.


나이를 먹으면 목소리도 늙기 마련이다. 그런데 정태춘은 여전히 청년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비단 발성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 토크에서도 여전히 바른 목소리를 낸다. 일흔이 넘으면 현실에 타협할 만도 한데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며, 여전한 모습에 감동받았고 그의 노래도 여전히 짱짱한 청년의 목소리였기에 살짝 눈물을 찍었다.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던 것이 다행이다 여겨졌다.



책방 근처에 통도사도 있어서 하루 온종일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거닐 곳도 많고, 책도 실컷 읽고 사고, 맛있는 커피 한 잔 하면 하루가 간다. 집으로 돌아오면 하루를 잘 끝냈다는 안도와. 또 좋아하는 분을 뵙고 몇 마디 토닥임을 받으면 돌아오는 길, 살아가는 길 힘이 생긴다.


지금보다 어렸을 때는 목소리를 내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다. 그것이 바른 소리라 믿고, 치기 어린 자존심을 걸기도 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가면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의미 없다는 생각과, 안온한 삶을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 커졌었다. 다시 그 지점에서 나이를 더 먹으니, 오히려 젊은 내가 대견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보다 어린 사람들의 목소리에 꼰대가 되지 말자 생각한다.


머리로 생각한 바른 소리가 아니라 가슴을 통과한 바른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한 세상이다.


이제 여름산책이라 불러야 하나. 어제오늘은 꽤 더운 바람이 여기까지 실려온다. 하나의 계절이 가면, 또 다른 계절이 찾아오는 계절의 순환을 보면서, 내 있을 자리와 내어 줄 자리를 가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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