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행/김승옥
갑자기 무진기행을 읽고 싶었다. 그것은 안개 같은 내 허무의 기원을 더듬고 싶었기 때문일까. 서재의 책장을 뒤집었는데도, 그해 읽었던 그 책을 찾을 수 없었다. 몇 달 전 책장을 정리하며 솎아낸 책들 중에 끼어 들어간 모양이다. 좋아하는 책이 없어지면 약간의 분리불안이 있어 다시 책을 구입했다. 서른을 목전에 두고 읽었던 그 판본은 당연히 절판되고 없다.
안개는 반투명의 모호함을 속성으로 한다. 삶에 짙은 안개가 끼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두려움이 몰려온다. 안개가 끼면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안개는 현실과 꿈, 삶과 죽음, 진실과 거짓 등이 뒤섞여 있는 혼돈이다. 그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찾아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도망칠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
<무진기행>의 '나'는 안개가 특산물인 무진으로 간다. 차창으로 불어 들어오는 6월의 바람이 나를 반수면상태로 이끈다. 무진의 바람으로 수면제를 만든다면 이 지상에 가장 강력한 수면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곧 처가에서 운영하는 제약회사의 전무가 될 것이다. 주인공은 무진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상을 잇는다.
서울의 어느 거리에서고, 나의 청각이 문득 외부로 향하면 무자비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소음에 비틀거릴 때거나, 밤늦게 신당동 집 앞의 포장된 골목을 자동차로 올라갈 때, 나는 물이 가득한 강물이 흐르고 잔디로 덮인 방죽이 시오리 밖의 바닷가까지 뻗어 나가 있고 작은 숲이 있고 다리가 많고 골목이 많고 흙담이 많고 높은 포플러가 에워싼 운동장을 가진 학교들이 있고 바닷가에서 주워 온 까만 자갈이 깔린 뜰을 가진 사무소들이 있고 대로 만든 와상이 밤거리에 나앉아 있는 시골을 생각했고 그것은 무진이었다. 문득 한적이 그리울 때도 나는 무진을 생각했었다. <무진기행> P.13 (민음사)
주인공은 장인이 경영하는 제약 회사의 전무 자리에 오르게 되었으나, 달갑지 않다. 그런 것을 알고 있는 아내는 '나'의 고향 무진에 며칠 다녀오라고 한다. 무진에서 주인공은 젊었던 시절의 고뇌와 자신의 과거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하인숙이라는 여자를 만나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그녀는 과거 무진을 떠나고 싶어 했던 자신과 닮아 있다. 그러나 그의 의식 끝에는 가정과 사회에 대한 책임이라는 현실이 놓여 있다.
아내의 전보를 받고 '나'는 안개처럼 축축이 배어드는 감상에서 벗어나 현실과 타협한다. 만나기로 한 하인숙에게 편지를 쓴다. 이 편지는 자신의 내면을 그대로 진술한 정감의 표현이다. 그러나 전보는 어떤가. 실용성이 강조되는 수단이다. 그는 하인숙에게 남길 편지를 찢어버리고는 무진을 떠난다. 현실을 따른 것이다. 그는 현실을 택한 자신의 행동에 심한 부끄러움을 느끼지만 무책임을 긍정하기로 한다.
덜컹거리며 달리는 버스 속에 앉아 나는, 어디쯤에선가, 길가에 세워진 하얀 팻말을 보았다. 거기에는 선명한 검은 글씨로 '당신은 무진읍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씌어 있었다.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p.43
<무진기행>의 주인공은 모호한 안갯속에서 벗어나 밝음을 지향하며 진정한 자아를 찾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아내의 전보 한 통으로 현실로 복귀한다. 무진이라는 공간에서 되찾으려 했던 순수함을 획득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속물이 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시대 그의 선택은 옳은 선택이었다.
<무진기행>을 읽으면 늘 내 이야기로 돌아 온다. 학교를 졸업 후에 공무원이 되어 서울로 올라갔다. 남들이 모두 부러워할 만한 곳의 폼나는 공무원이 된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모두의 부러움을 뒤로하고 부산 본가를 떠날 때부터 돌아오고 싶었다.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서 서울로 올라갔다. 영원인 것 같았던 5년 후 6월 어느 날, 사표를 내고 부산으로 내려오는 기차를 탔다. 전날 무진기행을 또 읽었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글을 쓰려고 했을 게다. 무진의 안개처럼 불투명한 미래를 택한 것을 자조하면서 글을 쓰고 싶었을 게다. 그러나 쓰면 쓸수록 안갯속에서 허우적거렸다. 나는 <무진기행>의 윤희중처럼 고향의 안갯속을, 바다 안개가 밀려오는 방죽 위를 헤매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와 달리 나는 돌아갈 곳이 없었고, 내가 발 딛고 있는 이곳이 현실이었다. 이곳 고향에서 견뎌야 했고 내 안의 순수를 되돌릴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순수를 찢어버릴 만큼 나도 충분히 속물스러웠다.
최고가 될 수 없다. 이 년 동안 갇혀있었던 고향의 안개를 스스로 걷어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가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계속 쓰라는 인정을 받고 난 후, 나는 현실로 돌아온다. 전공 덕분에 아이들을 가르치며 삶에 기름이 돌았고, 변방에서 계속 내 이야기를 쓰고 있다. 나는 <무진기행>의 주인공보다 더 현실적인 이쪽과, 저쪽을 오간다.
무진의 안개처럼 출구가 막힌 듯 답답함과 함께 내 존재 의식이 희미해져 갈 때 오히려 나는 <무진기행>을 꺼내 읽는다. 속물화되기 이전의 나를 떠올리는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일상의 공간과 탈일상의 공간이 함께 존재하는, 나는 내 안의 무진 속에서 살아간다. 여기는 내 꿈도 있고, 현실도 함께 존재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