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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Apr 22. 2022

내비게이터

生에 초보가 타고 있어요.

                                                                                                                      

계절이 계절인 만큼 볕이 살차다. 순한 초록으로 덮여 다른 색이 끼어들 틈이 없는 뒷산은 빛으로 내린 무연의 자비로 가득하다. 방금 걷은 빨래에 남아있는 햇살 아래에서 피어난 바람이 내게도 전해온다. 한 없이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일요일 오후는 벌써 여름으로 들어와 꽤 더운 기운을 실어낸다. 성질 급한 뻐꾸기 한 마리가 뒷산에서 어느새 울기 시작한다. 계절의 속도보다 마음이 앞서 가는 것은 나만이 아닌가 보다.


어린 시절에는 여름 오후가 길어 낮잠을 즐겨 잤다. 꿈결에 엄마의 도마질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고 구수하고 맛있는 냄새가 코끝에 스며들 때면 저녁 반찬을 미리 짐작해 보곤 했다. 그리고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제법 어른스러운 생각도 가졌던 것 같다. 저녁을 준비하는 어머니의 부산한 모습과 집으로 걸음을 재촉하여 돌아오시던 아버지의 모습은 이제 기억으로 걸려있고, 세월은 올곧게 흘러 어린 시절의 나는 어느새 저 멀리 비켜나 있다. 좀 더 함께 살아도 아쉬우련만 홀로 설 수 있는 시간도 넉넉히 주지 않은 채 두 분은 서둘러 떠나셨고, 나는 그들을 떠나보냈었다.


시간은 한번 가면 ‘또다시’라는 기회를 주지 않는다. 살아가면서 맞닥뜨려야 하는 선택의 모퉁이에 설 때마다 두 분이 계시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도 불안이 거먹 구름처럼 몰려오곤 한다. 자꾸만 숲을 맴돌고 있는 건 아닌지, 가야 할 방향과 반대로 달리고 있지나 않는가 하는 두려움에 빠질 때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확인받고 싶어 졌다.


차를 타고 내비게이터의 안내를 받을 때마다 인생에도 저런 장치가 있다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목적지를 입력하면 길을 찾아주는 장치가 요즘 같은 세상에 뭐 대수로우랴 싶을지 몰라도 때마다 내겐 경이로운 장치다. 가야 하는 도로의 번호를 친절하게 알려주다 못해 시간과 날씨마저 챙겨주고, 과속방지턱과 급커브 구간까지도 빠지지 않고 일러준다. 낯선 길이 낯익은 길보다 더 편안하게 느껴질 정도다. 누구에게나 삶은 초행이지만 내비게이터 같은 누군가가 내 길을 찾아주면 얼마나 편리할까. 어디서 좌회전을 할 것인지, 장애물은 어디에 놓여 있는지, 목적지까지 얼마쯤 남았는지 미리 알려주면 창밖으로 흐르는 풍경을 바라보는 여유도 가질 수 있을 텐데. 
문득 저만치 치워두었던 기억 한 조각이 떠오른다.


“어디까지 왔니?”

“빵집까지 왔다.”

“어디까지 왔니?”

“꽃집까지 왔다.”


삼촌댁에 들렀다가 기분 좋으실 만큼 술을 드신 아버지의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여기쯤이면 고소한 냄새를 풍기던 빵집을 지났을 테고, 유치원 짝꿍인 훈이네 집의 파란 대문을 지나 엄마의 단골 미장원을 지날 무렵일 게다. 이제 곧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에 들어설 것 같아 “아빠, 아직 멀었어?”라고 물어도 아버지의 대답은 “그래, 감감 멀었다”이었다. 그럴 때면 행여 술기운에 골목을 잘못 들어선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들기도 했다. 살며시 눈을 떠 봐도 주변이 캄캄하여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나는 조그만 손으로 아버지의 옷자락만 더욱 세게 말아 쥐었다.


그 무렵 나는 여섯 살이었다. 아버지의 등은 아랫목 담요 속에 묻어둔 주발처럼 따듯했고 설핏 잠이 들었다 깨어보면 내 몸은 방안에 누워 있곤 했다. 부모님이 주고받는 이야기가 귓가에 두런두런 들려오는 안도감에 잠 속으로 다시 빠져들면 어디선가 개짖는 소리도 덩달아 가물가물 해졌다. 그렇게 아버지는 내 갈 길을 일러주는 든든한 내비게이터였다. 내비게이터는 고사하고 나침반이나 이정표가 없이 길을 가야 하는 불안이 고개를 내밀 때면 업혀있던 아버지의 따뜻한 등이 더욱 그리워진다. 


살면서 맞닥 뜨리는 힘든 길을 헤매지 않고 무임승차처럼 편히 갈 수는 없는 것 인가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들 때마다 지금의 위치를 다시 한번 묻고 싶어 진다.

“어디만큼 왔니?” 

"......" 

대답을 해줄 나의 내비게이터는 어디에 있는가.


스스로 생을 운전하던 그날부터 사각지대를 더욱 의식하게 되었다. 안개가 낀 낭떠러지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또한 떨쳐 버릴 수 없다. 그러나 대낮에도 스러지지 않는 낮달 같은 내성(內省)의 내비게이터를 켠다. 오늘도 창에 크게 써 붙이고 조심스레 액셀레이터를 밟는다. 


"生에 초보가 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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