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루 Jun 23. 2021

버드나무 여자


보이지 않는 것은 무섭다. 빛 한 줌 없는 어둠이 그렇고, 열 길 물속 같은 사람의 마음이 그렇고, 앞으로 살아 내어야 할 미래도 그렇다.

연두색의 무성한 잎들이 바람에 나팔거린다. 나무 밑에 뒷모습을 보이며 앉아 있는 그녀의 반짝이는 긴 머리카락도 함께 나붓댄다. 아니, 바람에 나부끼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머리카락도 아닌 그녀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오월의 남원 광한루원에는 소풍을 나온 사람들로 붐빈다. 그 왁작대는 가운데 시공을 초월한 듯 앉아 있는 겹처마 팔작지붕의 완월정이 섬인 듯 호수를 두르고 앉아있다. 그 곁에는 꽤나 나이를 잡순 듯한 버드나무가 삼단 같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서있다. 연두색으로 덮인 가지들이 봄바람에 낭창낭창 흔들린다. 언제 어디선가 본 듯한 풍경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부모님과 잠시 떨어져 이모님 댁에서 학교를 다녔다. 아버지께서는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것이 안 됐던지 자주 보러 와서는 학교 근처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사 주기도 하고 학용품이나 준비물 같은 것들도 마련해 주셨다. 자연 시간에 쓸 알코올램프와 시험관, 막자와 막자사발 같은 것들이 그때 사 주신 준비물이었다. 막 3학년에 올랐던 꼬마로선 그 실험 도구들이 꽤 근사해 보였다. 그것들을 멋지게 부려 쓸 자연 시간이 기다려졌다.


그날은 오후반이었다. 이모와 이모부 두 분 다 일을 나가시고 사촌오빠는 아침 일찍 학교에 가고 없었다. 이모가 챙겨 놓은 점심을 혼자 먹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학교 근처까지 와서야 내 실험 도구들이 들어 있는 물체 주머니를 오빠 책상 위에 얌전히 올려놓고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랴부랴 다시 뛰어갔는데 낭패가 생겼다. 이모님 댁의 자물쇠는 잠글 때는 걸쇠에 끼우고 다이얼을 아무렇게나 돌려놓으면 잠기지만 열 때는 금고처럼 오른쪽, 왼쪽으로 돌려가며 번호를 맞추어야 했다. 나는 비밀번호를 알지 못했다. 아무리 다이얼을 요리조리 맞춰 봐도 자물쇠는 열리지 않았다.
눈물을 찔끔거리며 다시 학교로 돌아가려는 내 앞에 그녀의 허리까지 내려오는 길고 까만 생머리가 버드나무 아래서 가지인 양 흔들리고 있었다. 햇빛을 받아 그녀의 머리카락은 유난히 반짝거렸다. 나는 그날 학교에 가지 않았다.

 
지금 네 눈앞에 뭐가 보여? 학교로 가는 큰길이 보이고 나뭇잎들이 바람에 막 흔들리고 있어. 그리고 또? 아! 저기 아모레 아줌마 지나간다. 언니 저 아모레 화장품 아줌마가 내 친구 경아 엄마야. 그런데 언니, 뭐가 보이는지 왜 물어봐? 언니는 안 보이는 거야? 응, 난 눈으로는 안 보여. 그럼 내 얼굴도 못 보겠네? 아니, 보이는 걸. 꼭 눈으로만 볼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녀는 손을 뻗어 내 얼굴을 가만히 쓸었다. 그리고 뛰느라 엉망이 된 내 머리를 다시 묶어 주고,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나는 시인이 된 양 눈앞의 영상을 부지런히 언어로 옮겨 담았다. 텃밭에서 상추며 고추를 따고 쑥을 뜯으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학교에 가야 하는 것도 잊고 오빠 책상 위에 있을 멋진 실험 도구들도 잊었다. 무르익은 어느 봄날 낮곁의 사위는 너무나 조용해서 그녀와 나의 이야기 소리와 웃음소리만 주위에 떠돌았다.


나도 그녀처럼 등을 펴고 앉아 눈을 감았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말캉한 복숭아처럼 단내가 나는 오월의 실바람이 비단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 온몸을 휘감았다. 어렸지만 그때 스치듯 깨달았다. 눈을 감아도 보인다는 것을. 학교 가는 큰길과 골목들, 문방구 앞 빨간 우체통, 하굣길 아이들의 재잘거림까지도 보였다.
그녀는 함께 뜯은 상추며 쑥을 나누더니 내 몫이라고 손에 쥐어 주었다. 나는 그것들을 어찌해야 할 줄 몰라 그냥 언니가 가져가라고 바구니에 도로 넣었다. 그녀는 웃으며 내일 아침에 맛있는 쑥국을 끓여다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검은 고무줄을 꺼내 긴 머리카락을 뒤로 질끈 묶고 자기 집으로 천천히 걸었다. 그녀 걸음걸이는 한 치의 흔들림이 없었고 자로 잰 듯 정확히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날 저녁, 학교에 가지 않은 사실은 사촌오빠의 고자질로 이모가 알게 되었다. 내가 오지 않자 친구가 사촌오빠 교실로 찾아가 본 것이었다. 학교에 가지 않고 그 시간에 무엇을 했느냐는 이모의 추궁에 옆집 언니와 이렇게 저렇게 놀았다고 술술 이야기를 해 버렸다. 이모는 그길로 옆집을 찾아갔다. 이모의 표현을 빌자면 그녀는 그 집의 애물이었다. 어렸을 때 병으로 시력을 잃어 학교에도 다니지 못하고 집에서 식모 노릇을 하고 있는 아이니까 다시는 같이 놀지 말라고 했다. 병이 옮을지도 모른다고 겁까지 놓았다. 아무리 어렸지만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이 옮는 병이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녀의 나이는 열일곱 아니면 그 보다 두어 살 더 많을지도 몰랐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행동이 자연스러웠다. 시각장애인이라는 것이 적어도 그녀 자신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듯했다. 잡풀과 쑥을 척척 골라내었고 도랑에 빠지지 않고 물을 건널 수도 있었다. 누구보다 많은 옛날이야기를 알고 있었고, 눈을 감고도 집을 찾아갈 수 있는 마술사였다.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멋진 검고 빛나는 머리카락을 가졌다.


그날 밤, 옆집에서는 요란한 고함소리와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시집을 보낼 수도 그렇다고 내다 버릴 수도 없는, 천생 어미의 뼈골을 파먹고 살 애물단지라고 그녀의 엄마는 바락바락 악을 썼다. 자주 있는 일인 듯 누구 하나 말리는 사람도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죄인 양, 엄마의 신세타령과 악다구니를 견뎌 냈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혼이 나더라도 이모에게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하는 후회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음날 늦은 아침, 이모가 차려놓고 나간 밥상에는 그녀의 얼굴처럼 말간 쑥국이 올라와 있었다.


푸른 오월, 오래전 그날처럼 등을 펴고 앉아 눈을 감는다. 눈꺼풀이 닫힘과 동시에 세상과 격리되는 협착한 공간에 들어선다. 봉인(封印)된 순정(純正)이 몸을 보채고, 노회(老獪)한 이성(理性)은 눈이 아닌 ‘마음을 떠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소한 것에 목숨 걸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