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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Nov 19. 2021

운칠기삼(運七技三)

드라이클리닝 냄새나 덜 마른 신문 잉크 냄새를 좋아한다. 주위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고 약물에 중독될 가능성이 많다고 퉁을 준다. 그리고 또 하나 있다. 옛날 옷장 속 구석에 하얀빛을 내며 매달려 있는 나프탈렌 냄새가 그것이다. 요즘은 나프탈렌을 쓰진 않지만 대신에 편백 큐브 칩을 옷장 속어 넣어 놓았다. 아침 옷장 속에 박혀 있던  면바지를 꺼내 입는 그 순간 코끝의 감촉을 느꼈다. 아! 그래, 옷장 속 이 냄새…….  


나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냄새를 생각하며 주머니에 손을 넣는 순간 이 기분 좋은 감촉은 또 뭔가? 꺼내보니 꼬깃꼬깃 접힌 만 원짜리 한 장이었다. 세탁기에서 목욕을 한 탓인지 접힌 부분은 헤 지고 야들야들했지만 밝은 옥색이 날 정도로 깨끗했다. 어느 때는 이런 기분을 느껴보고자 지폐 한 장을 포켓이나 가방에 넣어둔 적도 있었다. 출근길 생각지도 않았던 횡재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져 콧노래가 나온다. 그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한 장으로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막대사탕 하나씩을 돌리며 보너스가 생겼다고 너스레를 떤다. 남들은 겨우 만 원짜리 한 장이 무슨 횡재수냐고  비웃을지 몰라도 가끔씩 겪는 이런 소소한 즐거움은 고달픈 삶에 활력을 주는 마법의 물약과도 같다.


얼마 전까지 만나는 사람마다 로또 얘기였다. 친구들도 만나기만 하면, ‘만약 내가 한방 터트린다면 말이지…’로 시작한다. 행여, 혹시, 그래도, 설마…. 실낱같은 희망과 운을 품은 단어들이 점점 늘어간다. 낙관적이고 희망적인 자세, 과연 이게 바람직한 현상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이렇게 인생역전의 로또 대박은 꿈꾸지 못하더라도 즉석복권을 긁었을 때, 널리고 널린 브랜드 퀴즈에 응모했을 때, 아니 꼭 그렇게 대가를 바라는 게 아닐지라도 가끔 스스로를 참 운이 없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학창 시절 '저 애만 안 걸렸으면'하는 애가 꼭 짝이 되었고, 내가 지각할 때면 선생님께서는 일찍 오시고, 다른 친구가 지각을 하는 날이면 약속이나 한 듯 늦게 오셨다. 그뿐이랴 지나간 버스는 텅 비었는데 다음에 오는 버스는 만원이라든지, 평소엔 잘하던 일도 하필 중요한 일을 앞두고 실수를 해버린다. 머피의 법칙에 충실히 따라, 몇 날 며칠 혹여나 비 올까 들고 다니던 우산을 마침 놓고 오던 날 비가 주룩주룩 쏟아지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하는 것마다 일이 잘 안 풀릴 때 우리는 번번이 '운'탓을 하게 된다. 난 어째서 이리도 운이 없을까 하고 말이다.


요즘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인생사는 무상하여 일이 성사되었든 실패하였든 간에 노력이 차지하는 비율은 3이요 나머지 7은 운수가 차지한다는 것이다. 이 유래는 청나라 포송령(蒲松齡)의 작품집인 요재지이(僥齋志異)에 실려 있다.  
한 선비가 흰 수염이 나도록 번번이 과거에 낙방하여 가산이 기울고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가출해 버렸다. 죽을 작정을 하고 대들보에 줄을 매어놓고 생각하니 자기보다 못한 자들이 번번이 급제한 것이 억울하여 죽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옥황상제에게 가서 따져보기로 했다. 옥황상제는 정의의 신과 운명의 신을 불러 술 시합을 시켜놓고 선비에게 말했다.
 "정의의 신이 더 많이 마시면 네가 분개한 것이 옳고 운명의 신이 더 많이 마시면 네가 체념하는 것이 옳다."결국 이 술 시합에서 운명의 신은 일곱 잔을 마시고 정의의 신은 석 잔 밖에 마시지 못했다.
"세상은 정의대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불합리한 운명의 장난이라는 것이 꼭 따르는 법이다. 세상이 7푼의 불합리가 지배하고 있긴 하나 3푼의 이치가 행해지고 있음도 명심해야 한다."라고 옥황상제는 선비를 꾸짖었다.


유명한 경영 컨설턴트는 사업에서조차 운이 아주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는 인간의 힘을 초월하는 것일 이'운'도 사람의 힘으로 조절할 수 있다고 말한다. 때문에 운을 불러올 수 있는 교육을 어렸을 때부터 시켜야 한다는데 그 핵심은 이렇다. 사물을 부정하거나 악담, 비판을 하지 말고, 항상 감사하고 반성하며 기쁜 마음으로 봉사하며,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사물의 현상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며 넓게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사물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고, 세상이 유지하고 있는 질서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천재는 1프로의 영감과 99프로의 땀'이라는 말이 있듯이, '운'역시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는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행운인 것이다.


사행심이나 요행과는 거리가 멀다. 만 원짜리 한 장에 행복해한다. 노력하면 찾아온다는 운을 위해 앞만 보고 걷는다. 하지만 왠지 억울한 생각은 든다. 운은 별책부록처럼 노력하지 않아도 그냥 따라와 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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