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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Aug 26. 2022

엘리베이터 안에서 섬을 보다

누가 나의 등대가 되어 줄 텐가.

엘리베이터라는 공간은 참 어색하다. 타인들과 좁은 공간에서 공기를 나누다 보면 숨소리도 작아지기 마련인데, 자칫 큰소리로 묵계를 깨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다. 거기엔 우리의 은밀한 욕망과 경건한 이성이 보초병처럼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문이 닫힘과 동시에 세상과 격리되는 한 평 남짓한 공간, 봉인된 욕망이 몸을 뒤채고 노회 한 이성이 서둘러 결계를 치는 곳, 그 혼돈의 장으로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 유일한 소통 공간이지만 서로에게 시선을 거두고 손바닥 위의 세상과, 오르고 내리리는 숫자에만 몰두한다.


앙리 프레데릭 블랑의 소설 <저물녘 맹수들의 싸움>을 보면 엘리베이터라는 협소한 공간이 인간을 어떻게 미치게 만드는 가에 대한 좋은 예를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의 마음을 읽고 능숙한 소통을 자신하던 남자. 그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통로인 엘리베이터에 갇혀 있는 순간에도 진심으로 사람들을 대하지 않고 빠져나갈 궁리만 한다. 이 남자가 3주 동안 엘리베이터 안에 갇혀 있는 스토리 속으로 몰입될 무렵, 그의 엘리베이터에서의 생활이 우리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눈치채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현대인의 소통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지, 한 남자의 불행을 보면서 인간 고립에 대한 성찰로 나아간다.


동네에 스타벅스가 생겼다, 드디어 우리 동네가 스벅권이 된 기념으로 디카페인 아메리카노 한 잔을 들고 창가에 앉았다. 이상한 광경이다. 모두들 앞에 앉아 있는 상대에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손에 든 스마트 폰에 집중하고 있다. 간혹 대화를 해도 손바닥에서 고개를 들지 않고 이야기한다. 둘러보니 유독 그 테이블만 그런 것은 아니다. 차라리 혼자 간 내가 덜 외롭겠다 싶었다.


이수동 作


나도 손바닥 위 세상을 켜고 소통할 대상을 물색해 보다가 이내 그만둔다. 지금 고독하지만 자유롭고, 심심하지만 편안하다. 창밖을 내려다본다. 섬들이 지나간다.


인간은 섬이다. SNS와 OTT 플랫폼, 커피머신이 있어 굳이 만나서 영화를 보거나 커피를 마시기 위해 군중 속을 헤매지 않아도 되는 요즘은 더더군다나 섬이 부유하는 시대다. 그 섬에서 우리는 관계와 고독을 맞바꾼다. 관계보다 자유를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섬이란 더할 나위 없이 안전한 장소일 것이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진심이란 기반 위에 이해라는 주춧돌이 더해져야 한다. 허나 '진심'은 상대방에게 가 닿지 못할 때도 있고, 어이없게 배반당할 때도 있다. 완벽한 '이해'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을뿐더러, 가식적이고 꾸며 낸 이해는 결국 벽에 부딪히고 다.


섬들은 자신의 고독을 이겨내기 위해 저마다 지혜를 짜내 작은 다리로 섬들을 연결해 두기도 한다. 가상의 공간에 자신의 하루를 낱낱이 고해바치고, 다른 섬들의 하루에 엄지를 세워들며 이것이 소통이라 말한다. 그 연결을 끊어버리는 날 오히려 고독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지만 섬들은 그것이 두렵다. 적당히 거리를 둔 관계들 속에서 적당히 받아들이고, 적당히 부유하고, 적당히 거부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과 진심을 나누지 않는다.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는 순간 나에게 책임이 주어지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그 어떤 진리보다 귀하게 여긴다. 다들 고독하지만 그럭저럭 살아간다.


태초에 인간은 다른 사람과 함께 할 때 행복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의 세상은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도록 진화되었지만, 우리의 본능은 아직 설계될 때의 원형 그대로다. 망망대해에 떠있는 불안함과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는 것은 지도가 되어 줄 다른 섬들 뿐이다. 고독을 견디는 힘으로 다른 섬의 등대가 되어 준다면 누군가가 드나들 테고,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다면 누군가와 함께해도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누구나 섬에 가고 싶어 한다. 그러나 오래 머물려고는 하지 않는다. 아무리 지척에 있다 해도 맞닿을 수 없는 운명을 지닌 외로운 땅덩어리. 인간은 걸어 다니는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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