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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Apr 12. 2022

잠적

새장 속에 갇혀있는 듯싶다고, 고속도로를 달려 기다리는 이 없는 그러나 그리운 무엇이 있는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다고, 반복되는 단조로운 일상이 지겹다고 느끼는 사람이 비단 나뿐일까. 우리가 일탈을 꿈꾸는 건 무료한 삶을 벗어나고픈 소망의 피드백이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일탈행위는 웬만한 자포자기 상황이나 완벽한 대처방안 없이는 쉽게 저질러지지 않는다.


바다가 보고 싶다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이번엔 계획하지도 않고 훌쩍 거제로 갔다. 거제는 자주 가 본 곳이라 관광지 여행은 접어두고 거제도와 작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부속섬 칠천도로 향했다. 그곳 숙소에서 하루 종일 바다만 눈이 시리도록 바라보았다.


사람들을 바다로 불러들이는 건 왜일까? 파도는 노래를 불러주지도 않고, 시름을 덜어주지도 않는데 그들이 악착같이 바다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다엔 무엇인가가 있을 테지 싶었다. 그런데 바다가 놀라운 것은 거기에 놀라운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었다. 바다엔 오로지 '나'만이 존재했다.


칠천도의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했다


바람이 불어 쌀쌀했지만 뜨거운 차 한잔과 좋아하는 책 한 권, 오로지 물소리와 새소리만 들리는 곳에서의 온전한 잠적이었다. 그동안 달고 살았던 이명이 갑자기 뚝 끊겼다. 자연의 소리  인공의 소리라고는 단 하나도 허용하지 않았던 공간에서 드디어 내 귀는 진정한 해방을 맛본 것이다. 그러나 잠시 후 동물원 울타리에 익숙한 코끼리처럼 이 해방이 실감 나지 않는다. 귀에 설은 고요함이 당혹스러워 곧 멜로망스의 '선물'을 BGM으로 불러들인다.



얼마 전, 술자리에서 어떤 녀석이 이런다.

"늘 똑같은 삶에 진절머리가 난다고. 미래가 없는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

'그럼 미래를 알고 살아가는 이는 누군데? 점쟁이도 자기 미래는 모른다잖아.'

반박이라도 조목조목 해 오면 마땅히 받아칠 말이 없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또 '삶은 겁날 것 없었던 호기를 꺾었고, 부질없는 걱정만 키웠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개를 끄덕여 주고 말았다.


나는 언제나 일탈이라는 이름으로 잠적을 감행하는 그런 삶을 바라지만, 다시 돌아올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붙인다. 그러니 내가 받아들일 정도만 나를 이끌고, 내가 허용하는 범위로만 나를 탈선시킨다. 분명 진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트루먼 쇼'처럼 통제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배우들이 남의 인생을 연기하듯이 나 역시 대본에 쓰인 삶을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사는 것은 어차피 상투다. 지리멸렬한 사건들의 나열이 뿐이다. 유례없는 팬데믹 쇼크가 이어지고, 어딘가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BTS가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간다고 해도 정작 나 자신의 인생은 달라지는 게 없다. 늘 그대로다. 상투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자! 설령 삶이 상투적이고 뻔한 결과를 유도한다 치더라도 적은 무찌르고 나는 행복해지는 결말을 맞고 싶으니 누군가에게 악역을 맡기자. 싸워야 할, 무찔러야 할 적이 있으면 그 맛에 또 살고 싶을지도 모르잖는가. 그나저나 지리멸렬할 것을 알면서도 울고 웃으며 에게 속아주는 재미도 여간한 게 아니라고 그 녀석에게 말해주었어야 했는데.


문 밖이 인공음으로 소란스러운걸 보니 나는 돌아왔다 상투 속으로. 또다시 잠적을 꿈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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