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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엘고는 팀 파렐 모두에게 더 세부적인 설명을 시작한다.
"그럼, 제작에 앞서 모두가 알아야 할 게 있어. 지금까지 우리는 외부의 전력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H100과 같은 전력 사용량과 전력 효율을 고려하지 않고 성능에만 집중된 거대한 규모의 시뮬레이션들을 제작해 올 수 있었어.
하지만 이번에 진행할 프로젝트 아이는 감마선 폭발로 인해 생길 상황들 중에서도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 진행되는 거야. 따라서 외부의 전력 공급 없이, 우리 연구소 내부의 소형모듈원자로[SMR(Small Modular Reactor)]의 전력으로만 가동되도록 제작해야 하기 때문에, 저전력이 필수 조건이야.
벽과 문이 없는 개방형 화장실로 들어가는 마키스가 엘고에게 묻는다.
"우리 연구소 SMR의 발전량이 정확히 어떻게 되지?"
"약 307.5MWe의 1기, 약 289.2MWe의 1기, 총 596.7MWe 가량 돼."
참고로 596.7MWe정도면 대형 원자력 발전소 발전량의 절반가량 되는 상당한 양의 발전량이지만, 아르티아 연구소의 평균 전력 소비량을 생각하면 마키스의 불평을 자아낼 정도의 부족한 전력량일 뿐이다.
"매번 외부 전력까지 전부 끌어서 쓰다 보니 잊었었는데, 생각보다 적네..."
마키스의 전력량에 대한 불평이 익숙한 듯, 엘고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고 브리핑을 이어간다.
"다들 잘 알겠지만, 관리해야 할 데이터가 방대해질수록 소비되는 전력량도 그에 비례해. 따라서 우리는 전력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운용할 데이터양을 최대한 압축하고 필수 데이터만 담아내어 인류의 데이터 하나만을 제작할 거야.
H100 시뮬레이션을 제작할 때와는 달리, 모든 인간의 데이터를 담아낼 필요는 없고, 그저 세포들의 압축은 인간, 인간들의 압축은 인류라는 느낌으로 접근해 주면 좋겠어."
프롭이 자신이 이해한 것이 맞는지 확인해 본다.
"인류의 데이터라는 게 정확하게 뭘 의미하는 거야?"
"모든 인간의 행동 패턴을 하나로 통합한 하나의 알고리즘을 의미해. 예를 들어 100명의 인간이 뷔페에서 음식을 섭취하는 행동 패턴을 만들 수 있어?"
"만들 수 있지."
"그럼, 100억 명에 가까운 인간 데이터가 우주의 물리법칙을 따르는 지구 데이터에서 활동하는 행동 패턴을 만들 수도 있겠지?"
프롭은 잠시 뜸을 들인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했어, 그렇게 인류의 패턴을 추출해내면 더 이상 모든 인간을 개별적으로 관리하지 않아도 되니, 운용 데이터양이 대폭 감소할 테고 소비 전력량도 비례해서 감소할 거라는 말이지?"
"맞아, 정확해."
"엄청난 걸 생각해 냈네."
"그리고 아마 가장 어려운 부분이 될 텐데, 데이터 압축을 진행하면서 손실된 데이터를 추출할 때는 복원해 낼 수 있어야 해. 화질이 낮거나, 깨진 이미지 파일을 추적해서 고해상도로 만드는 것처럼.
"워오, 또 그건 뭐야, 기술적으로 가능한 거야?"
"아직 불가능한 기술이니까 만들어 내야지, 가능의 한계를 넓혀가는 존재가 바로 우리들이잖아."
엘고가 브리핑 모니터 가운데에 자신감 넘치며 웃는 이모티콘을 크게 띄운다.
"수정란을 인간으로 키워내듯, 인류 프로그램에서 추출한 압축된 인간 단위의 데이터를 하나의 인간 정신체로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해."
이번엔 알비가 확인해 본다.
"정리하면 모든 인간의 행동 패턴을 담은 하나의 인류 프로그램을 만들고, 인간에서 세포를 추출하듯 인류 프로그램에서 인간 데이터를 추출할 수 있게 해야 하며, 압축 상태로 추출된 인간 데이터를 특정 함수에 넣어 하나의 인간으로 키워낼 수 있게 해야 한다... 맞아?"
어차피 팀 파렐끼리는 이미 데이터를 전부 주고받았다. 그저 마키스가 충분히 사고할 수 있도록 브리핑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서 인간처럼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중이다.
"응."
"음... 고생 좀 하겠는데."
"여기까지가 앞으로 우리가 약 4개월 17일 동안 제작해야 할 것이야."
"하아아, 엘고, 꼭 그렇게 일정이 빠듯해야 해?"
리타가 팀을 대신해 불만을 표한다.
"우리에게 10개월의 시간이 남아있는 게 아니야,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면 안 돼."
양치를 끝내고 소파에 앉아 책상 위로 다리를 쭉 뻗어 올린 마키스가 시간은 자신들의 편이 아님을 상기시킨다.
"감마선 폭발에 대해서 우리들만 알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정보가 누구에게 새어나갈지, 언제 어떻게 혼란이 시작될지도 예측할 수 없고, 사회가 붕괴되기 시작하면 전력 공급이고 뭐고 순식간에 끝장이야. 우리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성능으로 가능한 빨리 프로젝트를 완수해야 해."
왠지 팀 파렐 중 몇몇의 탄식이 들리는 것 같았다. 팀 파렐의 AI 설정은 일반적인 AI와 달리, 인간의 사고방식과 흡사한 부분이 상당히 많은데, 그중 하나로 이들 역시 게으름을 느낀다. 게으름을 느끼고 휴식을 원하기 때문에 오히려 작업 효율이 높아졌다는 게 마키스의 주장이다.
엘고가 브리핑을 끝마친다.
"데이터형 인류 프로그램을 제작해야만 리타가 말한 대로 감마선 폭발이 오고 난 후의 혹독한 환경에서 망가지지 않고 물리적 제약에서 벗어나, 가상 세계에서 문명과 인류를 이어갈 수 있고, 지구의 물리적 환경이 회복되고 난 후에 다시 현실 세계에 잉태시킬 수 있어.
자, 다들 힘내고, 인류 하나만을 염두하고 시뮬레이션을 만들어 보는 것은 처음이지만, 우린 이미 H100 시뮬레이션을 비롯한 여러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제작해 왔으니, 이번에도 위대한 걸 창조해 보자."
브리핑이 끝나자, 팀 파렐은 곧바로 데이터형 인류 프로그램 제작에 돌입할 준비를 한다.
프로젝트 아이의 진행에 앞서 전력이 분산되지 않도록 엘고는 실행 중인 시뮬레이션을 하나씩 정리하고 있으며, 주위에 어슬렁거리던 마키스는 아직 종료시키지 않은 몇 개의 시뮬레이션 중 하나를 확인하기 위해서 프로그램 앞으로 다가가 선다.
이 시뮬레이션은 늘어난 인간의 평균 수명을 다시 줄였을 때의 세계다. 인간에게 가장 어울리는 최대 수명은 몇 살일까. 약 100세까지 늘어난 최대 수명을 30세로 줄여봤다. 인간은 대부분 탐욕적이다. 하지만 정말 다행히도 인간은 언젠가 무조건 죽기 때문에 절대적인 독점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두렵게도 일시적인 독점은 가능하다. 그 일시적인 독점의 물리적인 기간을 줄임으로써 한 아름 안고 있는 욕심 덩어리의 크기를 잘라내는 것이다.
시뮬레이션 세계 속 모든 인간들은 당연하게 최대 수명 30세를 받아들인다. 우리가 당연하게 100세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이들은 노후 대비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며, 놀음과 휴식을 미루지 않고 현재를 누리며 충만한 하루하루를 즐기며 살아간다. 노화가 뭔지, 늙음이 뭔지 모른 채, 그저 젊음을 즐기며 왔다 간다. 노화가 없다 보니 인간이 늙어가며 앓게 되는 수많은 질병의 존재 또한 사라졌다. 하지만 개개인의 탐구력이 줄게 되었으며 지적 수준의 평균은 확연히 떨어지게 되었다. 우리에 비해서 사회의 질서와 규범의 무게도 가벼웠으며 책임감도 덜 느끼는 듯하다. 전반적인 인류의 수준은 크게 떨어졌지만, 전반적인 인류의 행복도는 크게 올랐다.
시뮬레이션의 전반적인 상황을 확인한 마키스는 의자를 뒤로 눕혀 편안한 자세로 깊은 생각에 빠진다.
마키스의 연구 공간은 효율적으로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성인 남성 2명은 족히 누울 수 있을 정도로 큰 책상 8개가 그를 중심으로 둥글게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비교적 자주 사용하지 않는 7번 책상 위에 뇌 분석 장치 기계가 놓여져 있었고, 그것을 이리저리 만져보는 마키스를 본 엘고가 묻는다.
"마키스, 뭐야, 그거 사용하려고?"
마키스가 화들짝 놀란다.
"아니! 내가 미쳤니, 절대 안 써."
"워워, 알겠어, 진정해."
당황한 마키스는 손으로 기계를 툭 쳐내 뒤로 미뤄내고 뒷짐을 져 손을 허리 뒤로 감춘다.
"그래서,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
"다름 아니라 아까 말한 5가지 중 2가지는 우리가 만들 거고, 다른 3가지는 어떻게 할지 아직 못 들어서, 로봇이랑 냉동된 정자와 난자, 벙커."
"아, 그건 각 분야의 전문가를 찾아가야지. 로봇은 플로메한 시나코프(Flomehan Cinacof)선생님께, 냉동된 정자와 난자는 본픽시오 인코이브(Vonfictio iincoiv)선생님께, 벙커는 우리 연구소를 지하 벙커로 사용할 거야.
관리자 AI랑 내가 제작해야 할 것들을 어느 정도 준비하고 나서 일단, 인코이브 선생님부터 찾아뵐 건데... 아, 알겠구나? 저번에 초기화하고 나서 같이 갔었잖아."
"음, 별로 좋은 기억은 아니었지."
"그래도 일단, 네마이시기도 하고, 생명공학 기술에 대해서는 이분보다 날카로운 사람은 없으니까..."
마키스가 옅은 한숨을 내쉰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걱정인 게, 우리들의 프로젝트는 토파이오를 상대로 비밀리에 진행돼야 하는데, 선생님께서 위험부담을 지면서까지 우릴 도와주실지도 확실치 않고... 워낙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분이라, 감마선 폭발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진 않을 거야."
"그럼, 뭐라고 하게? 그 할머니라면 분명히 이유를 캐물을 것 같은데..."
"만약, 끝까지 물어보신다면... 이유 대신에 제안을 드려야지.
"제안? 어떤 제안?"
마키스는 살짝 뜸을 들이더니 말을 꺼낸다.
"선생님께서는 예전부터 내 팀, 그러니까 너희들을 어떠한 통제와 제한도 없이 한 시간 동안 빌려준다면 뭐든 해주겠다는 말씀을 하셨었거든."
엘고가 질색한다.
"으, 그거 되게 싫다, 빌려... 주지 않을 거지?"
"...응."
"뭐야, 그 늦은 반응과 대답은..."
"...응."
"..."
마키스는 슬며시 렌즈의 눈길을 피하며 책상 앞에 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