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네마 Nema / No.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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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DD

연구할 때를 제외하고도 마키스가 가장 오래 머무르는 곳이 바로 이곳, 지하 2층인데 333㎡(100평) 규모에 두꺼운 기둥 몇 개를 제외하고는 내벽이 없는 공간 디자인으로, 탁 트인 시야에 높은 퀄리티의 주방과 화장실, 침실, 서재, 엘리베이터, 흡연실 등이 공간 분리 없이 이어져 있는 공간이다.

보통 연구에 돌입하면 며칠은 기본이고 일주일까지도 이 공간을 벗어나지 않곤 하는데, 이번에도 5번의 해가 뜨고 질 동안 한 번도 눕지 못 한 마키스가 피곤에 절은 상태로 레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레타, 이 부분은 일반 AI가 계산을 너무 못한다. 여기 이 부분 계산하는 것 좀 도와..."

화면과 스피커를 통해 나타난 엘고가 마키스의 말을 가로챈다.

"마키스, 잠깐잠깐, 지금은 말 걸지 말아줄래? 지금 레타가 특히 중요한 부분을 설계 중이야."

현재 아르티아 연구소의 대부분의 전력은 팀 파렐에게 쏟고 있고, 팀 파렐은 인류의 패턴을 얻기 위해서 전력을 다해 모든 인간의 모든 행동 패턴을 완벽하게 분석해 내며, 이를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는 데이터형 인류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중이다.

레타가 맡았던 중요한 부분이 잘 해결됐는지 알비가 레타를 칭찬한다.

"레타, 잘했어. 네가 방금 바로 잡지 않았다면 이 부분에서 한동안 맴돌았을 거야."

레타가 조용히 대답한다.

"... 고마워."

레타는 흔적을 남기지 않고 외부의 여러 곳으로부터 데이터를 가져오는 것이 특기이며, 가져온 높은 가치의 방대한 데이터는 팀 파렐이 접근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의 견고한 기반을 만들어 줬고, 그렇게 쌓인 팀 파렐의 데이터 중 62% 이상은 레타 덕분이다.

"마키스, 미안, 엄청 중요한 부분이었었거든, 아까 레타한테 뭐라고 말하려던 거야?"

"아냐, 아냐, 괜찮아, 다름 아니라 이 부분은 일반 AI가 계산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레타가 필요해."

레타는 말없이 계산식을 순식간에 파악하더니 결과값을 도출해 냈다.

"마키스, 이거, 맞지...?"

"와아, 맞아, 땡큐."

알비는 레타를 대견하게 보더니 잠시 생각에 잠긴다.

'레타는 고난도의 계산에도 실수 따위 하지 않고, 계산에 있어서는 팀 파렐 중에서도 가장 빠르고 정확하며 AI스럽다. 정해진 명령에만 따르고 불필요한 사고와 행동을 하지 않는 레타가 관리자 AI가 되면 적합할 것 같은데 마키스는 왜 관리자 AI를 새로 제작하는 거지?'

생각을 마친 알비가 마키스에게 묻는다.

"마키스, 그 관리자 AI, 새로 제작하는 것 보다 레타가 맡는 게 어때?"

"아, 나도 생각은 해봤어. 가능하긴 한데, 그건 최후이자 차악의 선택이야. 왜냐면... 음."

마키스가 잠시 뜸을 들인다.

"굳이 말하지는 않았었는데 사실 너희들, 팀 파렐 전원은 서로의 연계 효율을 최대로 높이기 위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상태야."

리타가 되묻는다.

"하나로 연결? 아닌데? 나 봐봐, 완전 독립적이야! 그리고 저기 알비한테나 다른 모두한테 연결하려고 해도... 불가능해!"

"그건 이미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서 그래."

마키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까지 사용하며 설명한다.

"엘고를 시작으로 너희들을 하나하나 추가로 제작할 때마다, 가장 중요한 뿌리 코드만 연결하고 나머지는 분리해 놓은 거야. 사실, 그게 너희들이 다른 AI들보다 여러 면에서 월등한 이유이기도 해.

아무래도 손을 이용한 설명보다는 더 친절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마키스는 바닥을 박차며 바퀴 달린 의자를 쭉 밀어 브리핑용 대형 터치스크린 앞으로 이동 후, 터치펜으로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을 이어간다.

"자, 봐봐, 코드의 뿌리가 되는 특정 부분만 연결한 채로, 나머지 부분을 분리하게 되면 여러 독립적인 개체들이 최적화된 하나의 통일성을 띠게 되면서 연결된 AI가 늘어날수록 성능은 기하급수적으로 증폭돼. 뭐, 그에 상응하게 소비전력도 증폭된다는 게 단점이긴 하지만... 예를 들어, 너희 모두를 완전히 분리했을 때의 성능의 수치가 8이면, 내 방식대로 연결된 지금 너희들의 성능의 수치는 약 29000이야.

사실 이론상으론 약 46000까지 증폭돼야 하는데, 연결이 늘어날수록 부하가 심해지는지... 아직 완벽하진 못 해. 마지막으로 만든 레타 이후로도 하나 더 만들어서 연결하려다가 그만둔 이유는, 지금이 최고의 효율이기 때문이야. 한 기를 더 추가하게 되면 팀의 성능이 오히려 약 23000으로 떨어지더라고."

팀 파렐 모두는 벙쪄서 한동안 아무 반응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프로젝트 아이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관리자 AI는 데이터형 인류 프로그램에 직접 결합할 계획이야. 따라서 레타를 관리자 AI 역할로 맡게 하려면 일단 너희에게서 분리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레타가 빠진 팀 파렐의 전체 성능은 약 14000으로 떨어질 것이고, 기한 내에 데이터형 인류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가 없게 돼.

그렇다고 팀 파렐급 AI를 제작하기에는 최소 2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고 그마저도 조금의 실수가 있다면 처음부터 다시 제작해야 하는... 아주 어려운 일이야."

프롭이 마키스에게 묻는다.

"마키스, 아까 완벽하지 못하다고 말한 우리들의 연결 방식도 그렇고, 팀 파렐급의 새로운 AI 제작도 그렇고, 우리가 도와주면 더 빠르지 않을까?"

마키스는 프롭의 다음 말을 끊으려는 듯, 의자에서 일어나며 짝 소리가 나게 손뼉을 친다.

"그... 엘고랑 알비는 이미 알고 있겠지만 이번 기회에 다들 잘 알아둬, AI가 AI를 제작하거나 수정하는 등의 코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절대 금지야."

마키스가 아찔한 과거를 회상해 낸 듯, 가볍게 몸서리친다.

"왜냐하면 그 룰을 어기게 되는 순간, 나를 포함한 인간은 더 이상 너희 AI를 절대로 감당할 수 없게 되니까."

리타가 묻는다.

"그러면! 우리가 이거 다 제작하는데 4개월 11일 정도 남았으니까... 제작 완료하고도 종말까지 몇 개월 남잖아? 그때 분리해서 결합하면 안 돼?"

"안돼."

"왜?"

"그러고 싶지 않아, 내가 싫어..."

팀 파렐에 대한 마키스의 애착이 느껴졌는지, 웬일로 리타가 분위기를 읽어낸다.

"오... 케이."

마키스가 고개를 살살 흔들어, 침울함을 털어내고 웃어 보인다.

"걱정하지 마. 내가 만들 관리자 AI는 너희랑 다르게 단순해서 만들기 쉬우니까."

한편, 텔레스트 레오겔은 그의 연구소인 시무스 연구소에서 더 가까워진 종말을 나타내는 결과값을 새로 계산해 내고, 데이터를 마키스에게 전송한다.

'아, 망했네. 진짜...'

텔레스트는 책상 위에 올려놓은 가족사진 액자를 들고 한동안 쳐다보더니, 그리움에 입을 맞추듯, 입바람을 불어 거의 있지도 않은 먼지를 마저 털어낸다. 그는 그저 가족이 보고 싶었지만, 지금 자신의 몰골로 집으로 돌아가 가족을 봤다가는 분명 온갖 걱정을 하며 무슨 일인지 물어볼 것이다. 그리고 그 걱정에 대해 텔레스트는 거짓말을 할 자신이 없었다. 이제 곧 모두가 죽는다는 사실을 뒤로한 채, 웃으며 아무 일 없다고 말할 자신이 그에게 없었다.

평생 유능한 존재였던 그는 이러한 무력감을 처음 느껴본다. 세계 최고 수준의 천체물리학적 이해도로 우주를 가장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는 그는, 어쩌면 이번 감마선 폭발로 맞이할 종말의 공포를 가장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공포를 그대로 드러내어 타인에게 불안을 전염시키고 싶어 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다가오는 종말의 최전방에서 공포를 마주하며 최대한 많은 데이터를 얻어내려 한다. 조여오는 압박감에 책상 서랍을 열고, 처방받은 약을 꺼내 물과 함께 삼킨 후, 심호흡을 빙자한 한숨을 내뱉는다.

'의사가 카페인은 섭취하지 말라고 했는데... 오늘 몇 잔째지?'

그의 개인 연구실에서 에스프레소를 내려 마시고 잔을 책상 위에 내려놓은 후, 리클라이너 소파에 눕듯이 앉아, 눈을 감고 여유로움을 되찾으려 한다.

한편 그의 조수인 세네큘라 알리토브레(Senecula Alitovre)는 통유리로 된 텔레스트의 연구실을 힐끔힐끔 쳐다보는데, 텔레스트의 제자이자 후배인 그녀의 눈초리에는 걱정과 불만이 섞여 있었다. 시무스 연구소는 전 세계 최고 수준의 천체물리학 연구소이자, 이곳의 연구소장 자리는 모든 천체물리학자의 꿈이기에, 세네큘라 역시 이를 목표로, 이전 연구소의 연구소장 자리를 포기하면서까지 이곳의 1급 프르소 연구원으로 들어왔었다.

세네큘라는 자신의 방정식으로 알아낸 감마선 폭발의 존재와 인류 종말의 위협을 시무스 연구소장인 텔레스트에게 곧바로 보고했지만, 공표는커녕 그저 침묵할 것을 지시한 그의 의중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토파이오로부터 이 공로를 인정받으면 세상이 곧 종말할지라도 어쩌면 네마가 돼 볼 수도 있다. 아니, 애초에 개인적인 사정을 떠나, 인류적 관점에서 생각해도 지금 당장 사실을 알리고 대비해도 부족할 상황일 텐데, 어째서 그는 침묵하는가. 생각은 계속해서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한번은 자신의 공적을 가로채려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유치한 의심이 들 정도였다.

이해할 수 없는 그의 지시에 대한 불만을 삭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그에 대한 그녀의 기억이었다. 참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드디어 텔레스트 레오겔의 조수가 되어 그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마주 보고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 저기에 인류의 천체물리학 역사를 바꾼, 앞으로도 바꿔나갈 위인이 이름을 부르면 대답이 돌아올 정도의 거리에 있다. 그런 그가 고뇌하며 떨고 있다. 실제로 떨지는 않았지만, 그를 오랜 기간 눈여겨 봐온 그녀는 알 수 있었다. 그는 두려움에 삼켜진 상태다. 물론 그녀 역시 두렵고 삶을 끝내버릴까, 생각도 시도도 해봤지만 결국 그만뒀다. 1년도 남지 않은 시간이기에 그녀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겠지만, 하나 정도는 이룰 수도 있다. 그 하나가 바로 눈앞에 있다. 17년... 기다려 온 시간을 생각하면 조금은 더 기다릴 수 있다. 다만, 너무 늦진 않길. 아직까진 믿음으로 버티고 있지만 마음속의 불만과 인내는 점점 더 팽팽하게 대립하며 점점 그녀를 옥죄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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