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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을 준비하는 마키스가 자신의 옷장을 열었는데, 그 안에는 그의 취향이 드러나는 기능성 테크웨어로 가득 차 있다. 옷을 갈아입으며 외출 준비 중인 마키스를 본 엘고가 묻는다.
"마키스, 어디에 가려고?"
"응, 에투인(Atuain) 생명공학기술 연구소."
"아, 할머니 연구소 가는구나."
"관리자 AI 제작도 어느 정도 진행했고, 이제 슬슬 본픽시오 선생님을 만나 뵈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에투인이면 이번에도 따로 연락 안 보내도 되는 거지?"
"절대 하지 마."
마키스 아크멕과 본픽시오 인코이브는 좋은 관계의 비지니스 파트너지만, 마키스는 그녀에 대해서 속을 알 수 없는 위험한 인물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녀를 찾아갈 때 대부분은 미리 연락하지 않고 기습적으로 방문한다.
"예전부터 궁금했던 게, 너도 할머니 싫어하잖아? 아니지, 혐오하잖아?"
"응."
본픽시오를 알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은 그녀를 혐오하며 두려워한다.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도 많고."
"넘치지."
"그런데 왜 그 할머니한테 경어를 쓰는 거야?"
마키스 역시 그렇지만, 대부분 사람과의 차이점이라면, 마키스는 그녀를 혐오하고 두려워하는 동시에 존중하며 존경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야 존경할 만한 이유도 넘치니까."
과연 본픽시오를 진심으로 존중, 존경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본픽시오는 마키스가 자신을 혐오하며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지만, 자신의 내면에 들어있는 진심까지 알아봐 주기 때문에, 그녀는 그런 그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너도 참 신기한 사람이야."
마키스가 외출용 신발로 갈아신으며 미소로 대답한다.
"그건 그렇고, 진짜로 나 없이 가도 되겠어?"
"응, 지금 우리는 시간과 싸우는 중이니까 괜히 나 때문에 전력이 분산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일단 통신 연결은 해 놓을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꼭 연락하고."
"그래, 오늘 안에 돌아오겠지만..."
마키스는 좋지 않은 과거를 회상했는지 왼쪽 눈을 찡그리며 말을 조금 바꾼다.
"아마도 오늘 안에 돌아오겠지만, 나 없는 동안 프로젝트 잘 부탁한다."
"오케이."
본픽시오 인코이브, 그녀는 생물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간에 환장하는 변태이며 범죄자이자 살인자로, 네마인 그녀 역시 토파이오와 연계되어 있는데, 그 관계가 다른 네마 일원들 중 가장 어둡다. 과거에 그녀가 토파이오로부터 지원받는 품목 중에는 인간과 시체가 있었고, 그마저도 양이 부족하자 결국 인간 농장을 만들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생산 시스템이 점점 발전되어, 지금은 그 규모가 상당하다.
인간으로서 인간을 실험 대상으로 삼기에는 실험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부족했는지, 자신이 직접 유전자를 조작하여 만든 실험용 인간을 창조해 냈고, 본픽시오가 개발한 실험용 인간은 생명주기와 생체주기가 일반적인 인간에 비해 훨씬 빠르고 번식력도 높다. 이들은 대략 26개월 정도의 시간이면 노인이 되고 노화로 죽는다. 매번 실험용 쥐로만 연구하는 정상적인 과학자가 어떻게 그녀를 뛰어넘을 수 있겠는가, 실험용 인간 덕분에 본픽시오의 연구 성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에어로크에 오신 지 얼마나 되셨다고 이렇게 큰 규모를... 잘도 만드셨네.'
에투인 연구소 부지의 입구를 막 통과하는 마키스는 이전에 왔을 때보다도 더 크게 증축된 연구소의 규모에 쉴 새 없이 눈과 고개를 돌린다.
이 넓고 높으며 거대한 빌딩이 인간 농장이라 불리는 곳이고, 이 안에는 외부의 일반적인 인간과는 차단된 실험용 인간만의 사회가 존재한다. 그들은 그 안에서 그 안의 것들만을 인지하며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고, 본픽시오가 만든 그들의 종교에 따라 명예로운 죽음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행복하게 결말을 맞이한다.
마키스는 겉으로 보기에 일반적인 빌딩처럼 보이는 이 거대한 인간 농장 빌딩 옆을 지나갈 때면 항상 소름이 돋는다. 에투인 연구소는 마키스에게 너무 자극적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어쩌면 이들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토파이오 연맹장의 임기가 5년이기 때문에 5년을 한 세대로 셈한다. 따라서 마키스는 6세대 네마이며, 본픽시오는 1세대 네마다. 왜곡된 가치관을 갖고 있는 그녀는 인류를 너무나 사랑하여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듯한데, 그 모습은 마치, 일반적인 사람이 인간을 사랑하고 세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과 비슷해 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1세대 중 한 명으로써, 지금까지 오랜 기간 동안 자신의 생명공학 연구에 매진해 왔고, 그만큼 셀 수 없이 많은 인간이 실험으로 죽어갔지만, 그녀의 인체 실험으로 죽어 나간 인간의 수에 비해, 그 실험들로 인해 발전된 생명공학 기술은 비교도 안 될 만큼의 많은 인간을 살려내고 진화시켰다. 그녀는 인류의 수호자 중 하나이자 인간의 살인마 중 하나다.
익숙해지지 않는 거북한 소름을 뒤로하고, 자율주행 자동차 안에서 본픽시오를 만나서 대화할 내용과 제안을 정리해본다.
'감마선 폭발 이야기는 금지, 본론을 바로 드러내면 약점으로 작용, 그렇다면...'
본픽시오의 모든 건물의 모든 층의 엘리베이터 앞에는 경호원이 배치되어 있고, 이는 여전히 마키스는 겁먹게 했지만, 사실 그는 본픽시오와 친분이 있기 때문에 에투인 연구소에서 높은 수준의 대우를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겁을 먹는 마키스였다.
마키스는 본픽시오가 평소에 있을 법한, 가장 오랜 시간 동안 머무는 제1호 연구소에서 내렸고, 그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자동문이 열리고 로비가 보인다. 왼쪽에는 작은 정원이 꾸며져 있었고 오른쪽에는 라운지로 이어지는 입구가 있었다. 전체적으로 흰색 계열의 모던하고 심플한 디자인으로 인테리어가 되어 있었다. 바닥의 대리석 타일을 밟으며 앞으로 다가가 데스크에서 본픽시오의 위치를 물어보기로 한다.
참고로 마키스는 6개 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다.
"저... 안녕하세요."
단발머리 데스크 직원은 긴가민가하며 마키스를 위아래로 훑는다.
"본픽시오 인코이브 선생님을 뵈러 온 마키스 아크멕입니다. 혹시, 선생님께서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녀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마키스를 알아보고는 직접 본 것에 신기해한다.
"아! 마키스 아크멕님, 오, 이번에 휴토상 받으신 분!"
마키스는 쑥스러웠지만, 기분은 좋았다.
"하하, 네, 맞습니다."
"소장님을 뵈러 오셨다고요. 여기에 계시긴 한데, 어느 연구실에 계시는지 알아봐 드릴게요. 잠시만요."
데스크 직원은 데스크탑으로 뭔가를 인증하며 복잡한 시스템을 다루더니 위치를 알려준다.
"인코이브 소장님께서는 5층 8번 연구실에 계십니다."
"5층 8번 연구실, 알겠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크멕님, 잠시만요."
데스크 직원은 기념으로 마키스와 같이 사진을 찍기 위해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핸드백을 뒤적거리며 스마트폰을 찾았지만, 출근 전에 제출했던 스마트폰은 다른 곳에 있었다.
"앗, 아닙니다."
멋쩍어하는 직원을 뒤로하고 엘리베이터에 오른 마키스는 5층에 도착했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바로 앞에 경호원이 서 있었다.
"저... 안녕하세요."
"마키스 아크멕님이시군요, 데스크에서 연락받았습니다."
"5층 8번 연구실에 계신다고 해서 왔습니다. 인코이브 선생님께서 연구실에 들어가신 지 얼마나 지났나요?"
경호원이 자신의 손목시계를 보며 대답한다.
"인코이브 소장님께서는 연구실에 들어가신 지... 7시간 38분 경과 됐습니다."
"여전히 체력이 좋으시... 아니, 더 좋아지신 것 같은데요. 일단, 여기 앉아서 기다리겠습니다."
데스크에서 본픽시오에게도 연락했었던 건지, 마키스가 의자에 앉으려 하자, 본픽시오가 때맞춰 수술실에서 나온다.
"어느 겁도 없는 녀석이 실험 중인 나를 방해하나 했더니... 마키스, 자네가 왔다는 연락이라 기쁜 마음으로 넘어갔어. 미리 연락을 줬더라면 뭐라도 준비했을 텐데, 이번에도 연락 없이 왔네, 무슨 일이야?"
그녀는 한쪽 귀에 걸려있는 피가 잔뜩 튀긴 마스크와 피로 범벅된 장갑과 수술복을 벗어, 굳은 피로 가득한 폐기함에 넣으며, 피에 물든 장화에 묻은 피로 피 발자국을 남기며 실험실에서 걸어 나온다.
"으, 선생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읍..."
본픽시오는 시간이 지날수록 신체가 점점 더 젊어지는 것 같았다. 아니, 확실히 젊어졌다. 예전에는 그저 뛰어난 동안인 줄 알았는데, 시간을 멈춘 것을 넘어 말 그대로 시간을 되돌리고 있다. 그녀의 나이는 분명히 80대 후반일 텐데, 마키스 눈앞에는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사람이 서 있다.
'젠장, 말도 안 돼.'
마키스는 그녀에게서 성적인 매력을 느낀 자신에게 진심으로 놀랐다. 그녀의 눈을 피하며 고개를 떨어뜨리려 했지만, 눈알은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며 순식간에 그녀를 훑었다.
'나, 미... 쳤구나.'
장화를 벗고 슬리퍼로 갈아신는 본픽시오 주변으로부터 사방에 퍼져있는 피와 진동하는 피비린내가 뒤늦게나마 마키스를 정신 차리게 해줬다. 마키스는 다시 올라오는 구역질을 참으며 말한다.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내 연구소에 한두 번 온 것도 아니고, 이젠 익숙해질 때도 되지 않았어?"
'이전에는 이런 말투 아니었잖아, 왜 말투도 젊어진 건데? 목소리도...'
"이렇게 직접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하는 것은 오랜만이지."
본픽시오가 마키스에게 얼굴을 가까이 붙인다.
'하, 하하, 하.'
뭘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가까이서 본 본픽시오는 정말 아름다웠다.
"17층 라운지에 먼저 가서 편히 쉬며 기다려, 난 피를 좀 닦아내고 바로 갈 테니까."
17층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면서 다시금 정신을 차린 마키스.
"아닙니다, 선생님, 그냥 선생님 사무실 앞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제가 거기 싫어하는 것 아시잖습니까."
본픽시오는 묶었던 긴 머리를 풀어 헤치며 약 올리듯 가벼운 미소를 짓는다.
"자네가 싫어하는 것은 알지만, 내가 좋아하는 걸 어쩌겠어."
이어서 엘리베이터 경호원에게 말한다.
"17층으로 안내해."
"아, 정말, 선..."
본픽시오는 자기 말을 마친 뒤, 바로 수술실에서 자리를 떠버렸고 그녀가 나간 후, 자동문이 닫히며 마키스의 말을 잘라버렸다. 마키스는 엘리베이터 경호원의 눈초리를 애써 무시하며 5층에서 기다렸고, 17층에는 최대한 늦게 들어가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