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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를 인간의 정신에 주입하는 것, 어차피 지금 내가 진행 중인 프로젝트랑 겹치는 부분도 있으니 협력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 성공하게 된다면 결과를 자네와 공유할 수도 있어. 그런데 자네는 내게 무엇을 줄 수 있지?"
잠시 망설이던 마키스는 시간차를 둔 후에 말을 뱉는다.
"예전에 토파이오 회담에서 만나 뵀을 때, 팀 파렐을 한 시간 동안 빌려드린다면 뭐든 해주시겠다는 말씀을 기억하시나요?"
본픽시오의 큰 관심을 보이며 눈이 커진다.
"호오, 기억하지. 단순히 사용하는 게 아닌, 어떠한 통제와 제한도 없이, 한 시간 동안 완전히 내 소유가 되는 것이라면... 여전히 유효해."
"만약, 9개월 내로 현실 세계의 인간의 정신과 가상 세계의 데이터화된 정신의 자유로운 이동에 성공하시고 그 기술을 공유해 주신다면... 말씀하신 조건에 맞게 팀 파렐을 빌려드리겠습니다."
"9개월이라, 하하하하, 좋네, 그렇게 하지."
본픽시오는 보기 기분 나쁠 정도로 기분 좋게 활짝 웃는다. 마키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물어본다.
"아, 그리고... 인간을 좀 살 수 있을까요?"
본픽시오는 화색이 돌며 대답한다.
"자네, 드디어 이 세계를 이해하는 건가? 일반 인간? 실험용 인간? 식용 인ㄱ..."
마키스가 자리에 다시 앉으며, 말을 끊는다.
"일반 인간이요."
"일반 인간이라, 얼마나 필요한가?"
"... 100명이 필요합니다."
본픽시오가 익숙한 듯 메이드에게 손짓하자, 메이드는 디지털 메뉴판과 종이 주문서, 펜을 꺼내서 마키스 앞의 책상 위에 올려둔다.
"그 정도라면, 여기 메뉴판에 다양하게 나와 있으니, 입맛대로 골라서 가는 길에 받아 가."
"아, 제가 원하는 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좀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대략 15년 정도 뒤에 태어날 인간이 필요합니다."
"그럼... 15년 뒤에 구입하면 되잖아?"
"..."
본픽시오는 큰 눈을 얇게 뜨며, 마키스의 속내를 꿰뚫어 냈다는 듯 여유로운 미소를 짓는다.
"뭐, 비밀이 많은 자네만의 사정이 있겠지, 근데 이렇게 되면 말이 달라져. 자네가 원하는 대로 하려면, 정자와 난자를 냉동시킨 후, 수정란 직전의 상태로 가공한 수정란 캡슐과 수정란 캡슐을 인간으로 키워낼 잉태기가 필요하지."
"잉태기요?"
"잉태기도 없이, 그냥 정자랑 난자를 섞으면 '짠'하고 인간이 될 줄 알았어?
아무튼, 둘 다 내 전문 분야 중 하나고, 내 방식으로 처리하면 정자와 난자의 냉동 보관은 40년도 넘게 보관할 수 있어. 그리고 이번에 플로메한과 같이 만든 잉태기는 태아기부터 노년기까지 원하는 정도로 빠르게 키워낼 수 있지... 만."
본픽시오가 웃으며, 마키스를 음흉하게 쳐다본다.
"그런데 이런 거는 그냥 줄 수 없지."
"제가 값을 모르는데, 얼마 정도 드리면 됩니까?"
"내가 부르는 게 값이긴 한데... 이 정도로는 팀 파렐을 빌려주진 않겠지...?"
마키스가 말없이 본픽시오의 눈을 피하자, 그녀는 그를 떠보기 시작한다."
"그럼, 미래 예측 서비스 24개월 연장?"
미래 예측 서비스는 팀 파렐의 여러 시뮬레이션을 통해, 사용자의 거의 모든 위험을 미리 감지하여 알려주는 리스크 관리 시스템이다. 종말을 준비하는 마키스에게는 뭐든 상관없었지만, 일단은 본픽시오의 장단에 맞춰준다.
"12개월로 하시죠."
"20개월."
"... 알겠습니다."
마키스의 대답을 들은 본픽시오가 혼잣말 아닌 혼잣말을 한다.
"그런데 잉태기 1대로 괜찮을까? 암수 한 쌍을 같은 속도로 키워내려면 2대는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순간이었지만 마키스는 본픽시오를 살살 째려봤다.
"그럼, 1대 더 추가..."
"10개월 추가."
"... 그럼, 총 30개월 연장으로 알겠습니다.
"하하하, 좋아, 자기, 오늘... 뭔가 쉬운데?"
본픽시오는 만족스러운 듯, 발끝으로 반원을 그리며 다리를 꼬았는데, 아슬아슬했다.
"뭐, 그럼, 수정란 캡슐 100개와... 참, 어떤 종류의 인간을 키우고 싶나?"
마키스는 자신이 이런 말을 하게 될 줄 상상도 못 했었다.
"남녀 쌍만 맞춰서, 최대한 다양한 유전자가 섞일 수 있게, 종류별로 골고루 주세요."
"하하, 그런 주문은 오랜만이야. 그래, 뭘 골라야 할지 모를 때는 차근차근 하나씩 맛을 보는 게 좋지. 내가 엄선해서 종류별로 다양하게 담아줄게."
'미친...'
"기분이다. 극초저온 냉동고와 전용 양수 10톤은 서비스로 줄게."
"뭐랑 뭐라고요?"
"수정란 캡슐을 보관할 극초저온 냉동고랑 잉태기에 사용되는 전용 양수, 양수 10톤이면 100인분 전부 노년기까지 키워낼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한 양이야. 이것들도 따로 사려면 엄청 비싼 것들인데, 오늘은 우리 마키스가 귀여워서 주는 거야."
마키스는 미소로 대답하려 했지만, 억지로 웃느라 입꼬리가 떨린다.
"아, 그리고 자기 연구소에 비하면 크기가 꽤나 크니까, 설치할 자리 좀 미리미리 비워둬. 크기에 대한 정보는 따로 보내놓을게."
마키스는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네..."
"그럼, 전부 다 해서 수정란 캡슐 100개와 잉태기 2대, 극초저온 냉동고, 양수 10톤을 사용 설명서와 함께 2... 3개월 내로 자기 연구소로 보낼게. 운송 전날에 다시 한번 연락을 해줄 거고, 더 자세한 것들은 당일 운송인이 친절하게 알려줄 거야."
"네,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마키스가 일어나려는 타이밍에 맞춰, 메이드가 낯설지만 엄청나게 맛있는 향기를 풍기는 스테이크와 코스 요리가 담긴 서빙 카트를 끌고 온다. 본픽시오가 가운을 벗으며 물어본다.
"자기,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즐기고 가지 않을래?"
마키스는 순간 많은 고민을 했지만, 저 고기가 무슨 고기인 알 것 같기 때문에 대답도 하지 않고 일어나 엘리베이터로 향한다. 자리를 뜨는 마키스 뒤로 본픽시오의 혼잣말이 남는다.
"다들 이 라운지에 환장하는데, 이상한 놈이야."
본픽시오를 상대하느라 진이 빠진 마키스는 연구소에 돌아오자마자 드러누워 그대로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