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네마 Nema / No.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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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DD

"좋아, 엘고, 이제 가볼게."

"짐 빠뜨린 거 없는지 다시 확인해 보고."

마키스는 자율주행 차에 올라 오르피트 에어로크 지점으로 출발한다.

'재작년 겨울이었으니까, 마지막으로 뵌 지 1년 반 정도 지났구나. 선생님께는 숨기는 게 없어야 해. 내가 실수로 놓치고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바로잡아주실 수도 있어.'

마키스는 플로메한에게 감마선 폭발과 프로젝트 아이에 대해 비밀로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사실을 전달하고 그를 설득하여 지원을 받아내는 편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했으며, 본인이 믿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인 플로메한이므로 모든 내용을 사실대로 전달하기로 결정한다.

오르피트 에어로크 지점 정문에 도착한 마키스는 경호원의 안내를 받아 그곳에 준비된 헬리콥터로 갈아탄 뒤, 넓디넓은 오르피트 부지 위로 한참을 날아서 플로메한이 있는 위치로 향한다.

"마키스 아크멕님, 어서 오세요."

헬리콥터가 전투기 개발 공장에 착륙하자, 기다리고 있던 플로메한의 비서가 마키스를 맞이하며 안내한다.

"휴토상 수상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역시 휴토상의 인지도는 높았고 마키스는 미소와 함께 답례 인사를 한다.

"감사합니다."

전기 카트에 탑승한 후, 플로메한이 있는 곳까지 가는 길, 주변을 둘러보는 마키스의 왼쪽으로는 늘어선 ICBM이, 오른쪽으로는 전투기 격납고가 보이는 이 광활한 부지에 압도된다. 연구소 크기만 두고 보면 쿠도이프 연구소보다 에투인 연구소가 더 크다. 하지만 플로메한이 보유한 오르피트 기업까지 포함한다면 부지면적 비교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어느 한 전투기 격납고에 다다를 때쯤 비서가 어디론가 연락을 했고 잠시 후, 검게 변한 흰 정비 장갑과 안전모를 벗으며, 기름때가 얼룩덜룩한 정비복을 입은 플로메한이 마키스를 밝게 맞이하며 걸어온다.

머리카락 숱은 좀 더 줄어들었지만, 윤기가 흐르는 흰 머리카락에 그가 바라보는 밝은 미래가 투영된 듯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푸른 눈. 누구와는 다르게 외모에 연륜이 묻어나면서 건강함과 활력이 넘치는, 멋지게 나이 들어간 제대로 된 노인이다.

"선생님, 오랜만이에요!"

"아아, 마키스, 어서 오게. 시상식장에 직접 가서 축하해주지 못 해 아쉬웠는데, 이렇게 보니 정말 반갑구만. 그때 통화로 말하긴 했지만, 다시 한번 휴토상 수상 축하하네."

"하하, 감사합니다."

플로메한은 반가운 마음을 담아 마키스에게 악수를 건냈고, 신체의 일부를 기계화한 그의 손은 단단하고 차가웠지만, 마음으론 부드럽고 따듯하게 마키스를 맞이했다.

"자네, 6년 전 가을에 기억나는가? 내가 그때 자네보고 언젠가 분명히 휴토상을 받을 거라고 했지."

"그때 해주신 그 말씀이 제게 큰 힘이 됐습니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뭐, 이렇게 빨리 받을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플로메한이 흰 눈썹을 올리며 장난스럽게 이야기한다.

"에이, 선생님, 하하하."

둘은 그간의 안부를 주고받으며, 가장 가까운 휴게실로 향한다. 플로메한의 재력이 드러나지 않은 흰색 테마의 깔끔하고 정돈된 라운지에 도착하니, 그 안에 있던 다른 프르소 직원들이 플로메한에게 존경을 담아 인사했고, 그 후에 마키스를 실제로 본 것에 대해 신기해한다.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어, 저 사람 마키스 아크멕님 아니야? 이번에 휴토상 받은 사람? 실제로 처음 봐.'

프르소 직원들은 라운지에 비치되어 있던 음식과 음료를 먹고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플로메한과 마키스를 위해 주섬주섬 정리하기 시작한다.

"아냐, 편하게들 있어."

"저희들은 마침 쉬는 시간이 끝나가서 나가보려고 했습니다."

플로메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들 라운지 밖으로 나가 둘의 대화를 위한 자리를 만들어 준다.

"괜찮다니까들... 허허, 배려가 고맙긴 하구만."

플로메한은 라운지의 냉장고를 열어 에너지 드링크 2캔을 꺼내 하나를 마키스에게 건넨다.

"그래, 마키스, 그래서 어쩐 일로 먼 길을 찾아온 건가?"

"로봇이 필요합니다."

에너지 드링크를 시원하게 들이키려던 플로메한은 들이마시는 것을 도중에 멈췄다.

"로봇이 필요하다고?

흠... 내가 따로 연락받은 게 없어서 말인데, 에니아포 연맹장에게, 토파이오에 허가를 받았는가?"

"받지 못 했습니다."

"허가가 없다면, 로봇은 고위험군 군사용품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아무리 우리 사이라도, 판매 및 증여가 어려운 것 알고 있지 않는가.

특히 괴물 같은 성능의 AI를 만들어내는 자네라면... 나라도 그건 무섭구만, 허허허."

"그렇죠, 시나코프 선생님, 사실은..."

마키스는 두리번거리며 휴게실 안에 다른 사람이 없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더니, 감마선 폭발과 그로 인해 벌어질 재앙에 대한 모든 내용이 담긴 태블릿을 플로메한에게 전달한다.

새로운 내용을 하나씩 알아갈 때마다 플로메한의 표정은 점점 무거워져갔고 묵묵히 모든 내용을 전달받은 플로메한은 어렵게 말을 꺼낸다.

"그래... 개념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감마선 폭발이 실제로 일어날 거라고... 내 평생 감마선 폭발을 경험하게 될 줄이야."

플로메한은 동요하지 않고 침착하고 겸허하게 상황을 받아들였다.

"자네와 텔레스트가 확인했다면 그건 확실한 사실이겠지."

플로메한은 마키스의 표정과 눈빛을 확인한다.

"보아하니 토파이오에 알리진... 않은 모양이구만."

"네, 아무래도 외부에 유출되는 순간, 정보가 돌게 되면서 전쟁과 같은 또 다른 문제가 발생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플로메한은 에너지 드링크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눈을 감은 채, 잠시 생각을 해본다.

"그래, 토파이오에 알리면 정보력이 강한 여러 국가에서도 머지않아 알게 되어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측에 동의하고, 나를 믿고 이렇게 정보를 제공해 준 점은 고맙네만... 여전히 자네에게 로봇이 필요한 이유는 설명되지 않는 것 같네. 그래서 자네의 생각, 계획이 뭔가?"

"처음에는 지하 도시 계획과 유전자 조작을 통한 진화 등 여러 대비책을 생각해 봤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대비책은 성공하더라도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플로메한은 곧바로 마키스의 생각을 읽어낸다.

"문명을 지키고 싶은 건가?"

마키스는 자신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었다는 생각에 좀 더 힘을 주어 설명한다.

"예, 이 짧은 몇 세대만을 위해서 여태껏 쌓여진 문명, 과학, 예술, 역사 등... 모든 세대의 산물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이어서 마키스는 플로메한에게 건넸던 태블릿 속에 저장해놓은 프로젝트 아이에 대한 모든 내용이 담긴 파일을 터치하고 이를 확인한 플로메한은 적잖이 놀란다.

"잠깐만, 기다려보게. 애초에 위험에 처할 인류를 방치하는 게 전제된 프로젝트란 말이야?"

마키스는 주먹을 쥔 손으로 자신의 무릎을 가볍게 치며 승부수를 던진다.

"새로운 인류를 낳아 문명을 이어 나가는 겁니다."

"현 인류를 완전히 배제한 계획이라니... 잠시만 시간 좀 주게."

플로메한은 팔짱을 낀 채 의자의 등받이를 뒤로 젖혀 누워 생각에 잠겼고, 마키스는 거절당해 도움을 받지 못 할까 봐 걱정하며 이를 숨죽여 지켜본다.

그렇게 침묵에 공기가 완전히 식어갈 때쯤, 생각의 정리를 마친 플로메한이 눈을 뜬다.

"마키스, 역시 자네야. 예전부터 늘 소심한 듯, 파격적이었지. 자네의 계획은 치기어리지만... 압도적이구만..."

플로메한은 보일 듯 말 듯, 기대와 걱정이 섞인 미소를 지었다.

"내가 이해한 내용들을 정리해 보겠네. 자네 연구소라면 감마선 폭발 정도는 버텨낼 수 있을 것이고."

마키스는 기대에 부풀어 정성껏 고개를 끄덕였다.

"본픽시오에게 수정란 캡슐과 잉태기를 주문해 놓았다고..."

"예."

"본픽시오가 만들었다면 수정란 캡슐의 성능은 보장될 테고, 잉태기의 성능은 내가 보장하지. 그리고 데이터형 인류 프로그램... 이라는 것은 확실히 만들어 낼 수 있는 건가?"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자네가 그렇다면 그것도 보장될 테니, 그래서 남은 것이 로봇이라..."

플로메한은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덮더니, 다시 한번 깊은 생각에 잠겼지만, 아까만큼 오래걸리진 않았다.

"아아, 마키스, 계속해서 내 나름대로 더 생각해 보겠지만, 도저히 자네 계획보다 좋은 게 떠오르지 않는구만."

"예..."

마키스는 섣불리 행동하지 않고 차분하게 확답을 기다린다.

충분히 고심한 플로메한은 결국, 마키스의 생각을 수용한 듯 탄성을 내뱉더니 이내 표정이 밝아진다.

"호, 프로젝트 아이, 거참 자네만이 생각해 내고 실행해 낼 수 있는 프로젝트구만."

이후 고개를 살살 저으며, 그 점잖은 플로메한이 감탄과 함께 크게 웃더니, 마키스의 어깨에 오른손을 올린다.

"하하하, 알겠네, 그 미친 프로젝트에 동참하겠네."

순간 마키스는 더할 나위 없이 기뻐하며 두 손으로 어깨 위에 올라온 플로메한의 손을 붙잡고 몇 번이고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그래, 어떤 로봇을 원하나?"

마키스는 미리 구안해 놓았던 필요한 로봇의 구체적인 특징을 전달한다.

"... 그래서 재앙 이후, 전력 공급망 수색 및 확보와 주변 잔해물들로부터 재료를 구해 로봇 공장을 건설해 낼 수 있는 능력의 원격 조작용 로봇 20대가 필요합니다."

"이해했어, 최대한 빨리 제작해 주겠네.

이 정도 견적의 로봇으로 20대면... 3개월하고 보름 내외로 자네 연구실로 보낼 수 있어."

"와아, 하하하, 네!"

마키스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는지 잠시 모든 근심을 내려놓고 활짝 웃는다.

플로메한은 그 웃음을 보더니 괜히 측은해진다.

'마키스, 이 친구, 마음고생 꽤나 했나보구만.'

"아, 그리고 자네에게 보낼 로봇을 모두 제작하고 난 후에도, 로봇 공장을 철거하지 않고 오르피트 기업 부지 내에 그대로 둘 테니, 감마선 폭발 이후에 활용하게나. 자네 계획을 들어보니 이러는 편이 좋겠어."

마키스는 역시 플로메한 선생님이라고 생각하며 거짓말 하나 없이 모든 것을 공유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젝트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시나코프 선생님."

마키스는 플로메한을 꼭 끌어안고, 플로메한은 마키스의 등을 두드려준다.

"마키스, 더 전문적인 내용은 텔레스트에게 직접 물어볼 생각이지만, 그 전에 자네가 정리해서 보여주고 말해준 내용만으로도 어느 정도 짐작이 된다네.

자네가 말한 대로 감마선 폭발 이후, 몇 년이 지나면 현존하는 생물은 더 이상 생존해 내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도, 그래서 프로젝트 아이를 계획했다는 점도,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과는 별개로 동의할 수밖에 없어. 어떠한 대비를 하더라도 많은 생명이 사라지겠지."

플로메한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마키스를 똑바로 바라본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난 지켜야 할 사람이 아주 많아. 지켜내고 싶은 사람이 넘친단 말일세."

마키스는 플로메한의 강경한 눈빛을 통해 그가 지고 있는 책임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상상해 본다.

"노욕일세, 오래된 늙은이의 고집이야...

자네가 말해준 내용을 외부에 공표하지도 않고 유출되지 않게 조심하겠지만, 나는 나대로 최대한 재주를 부려, 재앙에 대비한 지하 도시와 로봇을 제작하여 나름대로 대비를 해볼 생각이라네."

플로메한은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어 무거워진 공기를 풀어내기 위해서 가볍게 웃어 보이며 마키스를 한 번 더 안심시킨다.

"걱정하지 말게, 자네에게 보낼 로봇 제작이 최우선인 것은 변함없으니."

마키스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넌지시 물어본다.

"저, 선생님, 혹시 로봇의 가격은...?"

플로메한이 웃는다.

"이 사람아, 자네가 방금 내게 종말을 말해주지 않았는가. 이제 다 끝나가는 마당에 돈은 무슨 돈이야. 그냥 휴토상 축하 선물이라 생각하고 받아주게."

이후로도 그 둘은 긴 시간 동안 제작할 로봇 디자인의 초안과 작동 방법에 대한 설명을 주고받았다.

본픽시오와 플로메한을 만나 프로젝트 아이의 필수 요소 중 두 가지를 해결한 마키스는 데이터형 인류 프로그램을 팀 파렐에게 전적으로 맡긴 후, 관리자 AI 제작에 몰두하기로 했고, 실제로 그는 4일간 단 한 번도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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