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네마 Nema / No.18

18

by ODD

전쟁의 유일한 보상은 평화다.

"진정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직접 질서를 만들고 관리해야 하네."

본래 토파이오가 창립되게 된 경위는 올리더스 크니콜로 인해 사테파르가 혼란을 겪고, 힘을 잃게 되면서 알도르프가 압도적인 최강대국이 되자, 알도르프의 리더인 드벨 에타르보아가 패권국의 위치를 더욱 견고히 유지하기 위해서 세계 평화를 빌미로, 알도르프의 내부자를 뿌리 깊게 심어 놓은 채로, 국제 연맹 토파이오를 창립하려 한 것이다.

'어째서 이들은 권력을 내려놓지 않으면 비참한 결과뿐이라는 사실을 매번 망각하는 것인가.'

하지만 알도르프가 심어 놓을 내부자들의 중심축이었던 레케인 에니아포는 자국임에도 불구하고 알도르프 중심의 힘의 불균형에 반대하며, 드벨의 계획 속에 또 다른 계획을 생각하게 됐다.

'진정한 평화와 평등은 강자라는 존재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레케인은 제1대 토파이오 국제 연맹장으로 임명된 후에 자신의 계획대로 드벨을 배신했고, 알도르프가 설계해 놓은 강대국에 유리했던 기존 시스템을 그대로 적용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네마와 프르소 시스템을 포함한 자신의 새로운 개혁안을 적용시켰으며, 진정한 세계 평화를 일구고 평등한 세계를 만들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력했다.

'누구나 강자가 될 수 있도록, 강자의 자리가 불변하지 않도록.'

그 이후로 약 30년간 드벨의 세력과 레케인의 세력간의 보이지 않는 힘 싸움이 있었지만, 레케인의 딸, 피아톤 에니아포가 레케인의 의지를 이어받아 제7대 토파이오 국제 연맹장으로 임명되면서, 그녀가 긴 시간 동안 이어진 경직을 풀어냈다.

오늘도 휴식을 취하기 위해 1층의 카페에 가려던 중, 마키스에게 온 연락이 그의 발걸음을 멈춰 세운다. 토파이오의 제7대 국제 연맹장 피아톤 에니아포의 연락이다.'

"네, 연맹장님, 마키스입니다."

"그래, 마키스, 피아톤이네. 다름 아니라 차월의 아르티아 연구소의 전력 사용량이 객월에 비해 상당히 높다는 보고를 받았어. 내가 따로 보고 받은 프로젝트는 없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 정도의 전력을 사용할 만큼의 뭔가가 진행 중이었던가?"

마키스는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하며 준비해 뒀던 거짓말을 시작한다.

"아 연맹장님, 현재 별다른 프로젝트는 없습니다만, 팀 파렐의 더 높은 정확도와 빠른 계산속도를 위해 특수 AI를 하나 더 개발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 팀 파렐은 이미 충분히 대단하지 않은가. 신과 같은 능력에 지금도 겁날 정도인데, 방대한 자원을 소모해 가면서 더 개발할 필요성이 있는지 의문이네만."

"지금껏 팀 파렐은 인간의 예측 범위 밖의 여러 문제들을 사전에 발견하여, 효율적이며 안정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왔습니다. 지금보다 더 빠르고 정확한 예측은 이러한 효율성을 더욱더 끌어올려, 결과적으로 더 많은 자원을 아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자네는 참 신기해. 휴토상을 수상받은 최상위 네마임에도, 대부분의 네마와 다르게 큰 연구소를 원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명예, 권력, 사치를 원하는 것도 아니야... 무엇보다도 작은 연구소에 어울리지 않는 큰 전력 사용량은 늘 이질적이란 말이지. 뭐, 그럴만한 성과와 가치를 내고 있으니 문제는 없네만."

스피커 너머로 피아톤의 옅은 한숨과 가애하는 웃음이 섞인 짧은 침묵이 넘어온다.

"알겠네, 진행 과정을 지속적으로 보고하고, 앞으로도 지원에 걸맞은 성과를 보여주게."

"네, 알겠습니다."

연락을 마친 마키스는 눈을 질끈 감았다 뜨고는, 카페에 가려던 발걸음을 돌려 냉장고 앞으로 가, 캔 커피를 꺼낸다.

그로부터 몇 주 뒤, 감마선 폭발로 인한 종말이 도래하기까지 196일가량 남은 어느 화창한 날, 마키스는 1층 카페에서 자바칩 프라푸치노를 마시며, 플로메한의 로봇이 운송되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예정된 시간이 되자, 아르티아 연구소의 도로 건너편에 대형 화물 트럭 6대와 지게차가 실려있는 대형 트럭 한 대가 도착했고, 길게 늘어서 주차를 시작하는데, 트럭이 워낙 크고 길다 보니 4번 트럭부터는 주차할 자리가 없어서 다른 블록에 주차했다.

가장 앞에 주차된 대형 화물 트럭에서 두 사람이 나오자, 마키스는 그들에게 다가간다.

"오, 안녕하세요. 시나코프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로봇인가요?"

"안녕하세요. 마키스님이시죠, 네, 맞습니다."

운송인은 태블릿을 확인하며 말한다.

"로봇 20기와 로봇 거치대 20대, 프로그래밍 컨트롤러 1대와 설치에 필요한 전선 및 부속품들이 들어있습니다. 물품의 상태와 수량을 확인해 주시고, 설치하고 싶으신 위치를 말씀해 주세요."

이전에 플로메한과 만났을 때, 어느 정도의 초안은 같이 제작했지만, 마무리는 플로메한과 그의 전문가들이 완성시켰기 때문에, 최종 형태를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마키스는 미리 안내받은 제품의 크기에 맞춰서 지하 1층과 3층에 설치할 생각으로 이미 자리를 비워뒀지만, 모든 대형 화물 트럭을 돌며 로봇과 설치해야 할 기계들의 크기를 다시 한번 꼼꼼하게 측정했고 설치할 위치를 최종적으로 생각해 본다. 접혀 있는 부분이 있어서 확실치는 않았지만, 펼쳐진 로봇 한 기의 크기는 대략 2m 정도 될 것 같았으며, 호리호리한 체형에 꼬리가 달려 있어서 플로메한에게 말했던 요청 사항대로 아주 날렵할 것 같았다.

"로봇과 로봇 거치대는 지하 1층에, 프로그래밍 컨트롤러는 지하 3층에 설치하겠습니다."

이 로봇들은 재앙 이후, 선발대 로봇으로 사용할 목적이기에, 마키스는 계획대로 지상과 가장 가까운 지하 1층에 옮기기로 결정한다. 이번에도 지게차와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운송 받은 모든 물품을 옮겼다. 설치 장소를 확인하고 견적을 낸 운송인 중 한 명이 책자와 데이터 파일이 담긴 USB를 건넨다.

"설치에 소요될 시간은 11시간 20분가량의 긴 시간으로 예측됩니다. 로봇과 프로그래밍 컨트롤러에 대한 주의 사항과 사용 방법을 먼저 숙지하시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장장 반나절이 지났을까.

아침부터 설치를 시작한 이들은 마키스가 식사를 권해도 괜찮다고 사양하며 설치에만 집중했고, 온통 땀투성이가 된 채, 저녁이 돼서야 모든 설치를 완료했다.

"모든 기기의 설치를 완료했습니다. 테스트로 가동해 보시겠습니까?"

전등 빛이 반사되어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로봇들이 아름답게 진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광경을 본 마키스는 크리스마스에 장난감 로봇 세트를 받은 아이처럼 크게 기뻐했다.

"네!"

마키스는 엘고에게 일반 AI 중 하나를 프로그래밍 컨트롤러에 연결시킬 것을 명령했다.

"엘고, 1번 로봇에 연결한 거지?"

"응, 맨 앞에 있는 1번"

마키스는 1번 로봇 앞으로 가서 말한다.

"같이 나가자, 날 따라와."

마키스의 명령에 따라, 1번 로봇은 거치대에서 분리됐고 그와 동시에 접혀있던 부분이 완전히 전개됐다. 2M가 넘는 큰 키의 로봇은 꼬리로 중심을 정확하게 잡아가며 섬세한 행동들을 보여줬는데, 그 움직임은 아마도 현인류의 기계 공학 분야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이었다.

"엘고, 이 주변 CCTV로 도로에 차량 없는 거 확인한 거지?"

"응."

마키스는 1번 로봇과 함께 지상으로 나온 후, 도로에 차가 없는 것을 확인한 뒤, 명령한다.

"이 도로를 타고 100m 왕복, 최고 속력으로 달려봐."

그러자 이족보행 하던 1번 로봇은 자세를 사족보행으로 바꾸며, 마치 치타처럼 달리기 시작한다. 100m 지점에 다다르자, 순식간에 방향을 바꾸고 꼬리를 이용해 무게중심을 잡아내어 빠르고 안정적으로 왕복을 완료했다.

'우와아아아!'

신이 난 마키스. 한편, 자세히 보니 1번 로봇이 급격하게 방향을 바꾼 자리에 로봇의 발자국으로 아스팔트가 파여져 있었다. 마키스는 다른 것들을 더 망가뜨리기 전에, 명령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한다.

"완벽하네요, 모든 운송품의 확인이 끝났습니다, 감사합니다."

운송인들은 마키스에게 받은 프라푸치노를 마시며 땀을 훔친다.

"네, 감사합니다,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7대의 트럭이 떠나고 마키스는 1번 로봇을 데리고 연구소로 돌아간다. 마키스가 연구실로 돌아오자마자, 로봇에 큰 관심을 보였던 리타가 다시 조른다.

"마키스, 마키스! 나도 이거 타보면 안 돼?!"

하지만 마키스는 단칼에 거절한다.

"안돼, 신체가 생기면 사고가 둔해져."

"마키스... 흑흑"

리타는 화면에 우는 이모티콘을 띄우며, 우는 소리를 낸다.

알비가 리타를 부른다.

"쓰읍,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맡은 거 끝까지 집중해야지."

"알겠어..."

마키스는 연구실의 SMR, 지하 4층의 수정란 캡슐과 잉태기, 지하 1층의 로봇들과 지하 3층의 프로그래밍 컨트롤러를 한 번 더 확인한다.

'미래 인류의 뿌리가 될 냉동 정자와 난자도, 우리의 문명을 이어받아 미래 인류를 지원할 로봇도 준비가 끝났다. 우리의 문명을 온전히 담아낼, 데이터형 인류 프로그램만 완성되면... 제작 완료까지 약 27일 남았다. 드디어, 이제 곧 완성된다, 프로젝트 아이.'

확인을 마친 후, 지하 2층 연구실 의자에 털썩 앉는다. 그리고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본픽시오의 데이터를 생물의 정신으로 삽입하는 것에 대한 경과 보고서를 다시 읽어본다.

"엘고, 너도 본픽시오 선생님이 보내주신 프로젝트 경과 보고서 확인했지?"

"응."

"하아, 진짜 모르겠어. 인간이 해낼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으면서도, 선생님이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단 말이야. 너는 어떻게 생각해?"

"우리들 계산으로는 여전히 불가능하다가 결론이야."

"그래... 그래도 다행이야. 불가능하더라도, 수정란 캡슐이랑 잉태기가 있어서 플랜 B는 진행할 수 있어."

엘고는 모니터에 고개를 끄덕거리는 머리를 띄운다.

"아참, 그 괴짜 할머니한테 어떻게 협력을 구했어?"

마키스는 눈을 살짝 돌리더니.

"아, 뭐... 예전에 나한테 빛... 진 게 있으셔서... 응, 그랬어."

마키스는 문제없다는 듯 미소를 짓는다.

"아, 너 결국 우리를 걸었구나."

"..."

엘고는 장난으로 빈정댄다.

"우리가 뭐 어쩌겠어~ 잘했어."

엘고는 영혼 없이 웃는 이모티콘을 화면에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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