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네마 Nema / No.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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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DD

플로메한은 토파이오 에어로크 본부의 지인을 통해 텔레스트가 연행되었다는 사실을 전달받게 된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약 4개월(122일) 전, 로봇 제작 의뢰로 찾아왔던 마키스에게 감마선 폭발 예고를 전달받은 후, 본국인 알도르프로 돌아가 지하 도시 건설 프로젝트를 구상했고, 프로젝트를 실행할 위치로 아헤일라를 선택, 세상의 관심을 끌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 아헤일라의 부지를 구매해 규모를 점점 넓혀갔었다.

그로부터 약 4개월 후인 오늘이 돼서야, 알도르프 정부의 핵심 인물을 비롯한 수뇌부는 피아톤의 2급 비서로 심어놓은 스파이 덕분에 사실을 알게 되었고, 수뇌부 역시 혼란을 초래하지 않기 위해, 이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는 인원을 최소화하여 비밀로 지키고 싶어 했다.

"네마에게 정보가 알려지더라도, 네마의 도움을 받아서 완성도 높은 지하 도시를 건설해야 합니다."

"아니, 한 명이 알게 되면, 그 주변 인물 백 명이 알게 될 테고, 연쇄작용으로 삽시간에 기밀이 더 이상 기밀이 아니게 될 겁니다."

"이 정도 규모의 지하 도시라면, 우리 국력으로 충분히 실현 가능한 계획이니, 기밀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알도르프 수뇌부의 일부는, 자국의 네마에게는 알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정보가 새어 나가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더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자국의 국민은 물론, 네마에게도 알리지 않고 아헤일라에 지하 도시를 건설하려 했다. 그렇게 건설을 시도하려는 중, 비슷한 계획을 선행해, 아헤일라에 거점을 세우고 있는 플로메한의 움직임을 알아채게 되었고, 그들은 그에게 접근했다.

플로메한은 전 세계 네마 중에서도 세 손가락에 꼽히는 최상위 네마였지만, 토파이오 다음으로 강한 최강대국을 혼자서 상대하긴 버거웠다. 알도르프 수뇌부는 더 많은 부지와 인력, 자본을 제공할 테니 감마선 폭발을 대비한 도시를 더 큰 규모로 만들어 줄 것을 반강제적으로 제안했고, 그렇게 플로메한의 프로젝트는 유전 개발 및 시추라는 명목하에, 레이&브레 센터라는 이름으로, 종말을 대비한 대규모 지하 도시 건설로 이어졌다.

'마키스가 여기저기에 말하고 다니지는 않았을 테고, 우리 쪽에서 새어 나간 것도 아닐 텐데... 텔레스트가 토파이오에 연행된 것을 생각하면, 피아톤이 알아낸 것이고, 토파이오에 알도르프의 스파이가 있던 게야.'

플로메한은 알도르프 정부가 토파이오에 심어놓은 스파이를 통해 감마선 폭발을 알아낸 것을 유추해 냈다.

플로메한의 기존 계획은 연구자와 기술자 위주로 생존시키는 것이었지만, 알도르프 정부에서 알게 된 이후로, 그가 만든 입주자 명단은 무용지물이 됐고, 고위층 사람들만을 위한 프로젝트로 변질되었다.

아무리 비밀리에 진행하기 위해서 드러내지 않고 조금씩 건설해 왔다지만, 4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투자했기 때문에 시간이 부족한 현 상황에서 진행해 온 프로젝트를 절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플로메한은 강압적으로 자신의 프로젝트를 어지럽히고 방해한 알도르프 수뇌부에 반감을 품게 되며, 일단은 그들의 제안에 따라 프로젝트를 변경하지만, 언젠가 주도권을 다시 빼앗아 자신의 의도대로 되돌릴 기회를 기다리기로 한다.

그리고 다른 한쪽으로 아헤일라를 벗어난 지역에 다른 지하 도시를 건설할 프로젝트를 새로 계획하게 되었다.

'기어코 연맹장도 알게됐구만... 알게된 이상 힘을 합쳐야 한다. 최대한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도록. 피아톤에게 연락을 해봐야겠구만.'

이번엔 토파이오의 협력을 기대하며.

다시 돌아가, 지금 연구원들이 웅성대고 소란스러운 이곳은 시무스 연구소의 텔레스트가 연행된 자리다.

"레오겔 연구소장님이 제명될 수도 있다고?"

"그럼, 시무스 연구소가 사라지는 거 아니야?"

"다른 연구소를 알아봐야 하나?"

'무슨 일이지?'

입맛은 없었지만, 노타의 조언을 듣고 간신히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세네큘라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간다. 그곳은 텔레스트가 연행됐던 자리였고, 그 옆의 텔레스트 사무실에는 그가 없었다.

'?'

세네큘라는 뭔가 단단히 잘못됐음을 느낀다.

"저... 무슨 일 있었어요?"

세네큘라가 주변 동료 연구원들에게 묻는다.

"아, 알리토브레님, 혹시 못 보셨어요? 어쩐 일로 에니아포님이 직접 오시더니, 레오겔님을 연행해 가셨어요."

'연행?'

세네큘라는 잠시 생각하더니, 망치로 머릴 맞은 것처럼 충격을 받으며 주저앉는다.

"어어, 알리토브레님, 괜찮으세요?"

동료 연구원이 세네큘라의 어깨를 몇 번 흔들자, 그녀는 이내 정신을 다잡고 급히 자리를 뜬다.

"충격 많이 받으셨네..."

"알리토브레님, 레오겔님을 좋아하시잖아. 정작 본인은 모르시는 것 같지만..."

한편, 마키스에게 연락하는 피아톤.

"네, 연맹장님, 마키스입니다."

"마키스, 감마선 폭발에 대해 알고 있었지?"

연기를 시작하는 마키스.

"감마선 폭발,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텔레스트가 알려주지 않았는가?"

마키스가 최연소 네마가 되기 전까지는 텔레스트가 최연소 네마였다.

그 둘의 나이 차이는 꽤 있지만, 이 둘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네마는 고령자여서 형 동생으로 친해지게 됐다.

"네, 따로 전해 들은 것이 없습니다."

피아톤은 마키스가 감마선 폭발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을 자신의 비서들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감마선 폭발에 대한 모든 정보는 텔레스트를 통해 알아냈고, 시간이 촉박한 지금 마키스를 잡아 감금하거나, 네마의 자격을 박탈시키는 등의 협박은 중요하지 않아졌기 때문에 더 이상 추궁하지는 않기로 했다. 지금 그녀는 그저 그의 팀 파렐이 필요할 뿐이었다.

"뭐, 알겠네. 그럼 자네 연구소로 자료와 데이터를 보낼 테니 빠르게 확인하고 사태를 파악하게."

마키스는 받은 데이터를 훑으며 처음 본 것처럼 연기한다.

"이건, 심각하네요... 인류의 위협을 미리 알아내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번 건은 인류 관리의 규격을 벗어난 일이야. 자네의 전문 분야가 아니니 괜찮네. 하지만 위기가 무엇인지 알아낸 이상, 최선책을 계획하는 것은 자네의 전문이 아닌가. 이제... 약 178일 뒤면 종말이 올 걸세."

"빠르게 계획을 마련하여 제출하겠습니다."

"그 부분은 지하 도시를 만드는 것으로 정해졌네. 그러니 자네는 지금 진행 중인 모든 프로젝트는 중단하고, 팀 파렐 전원과 함께 지하 도시 계획에 참여해서 지휘를 맡아줬으면 하네."

마키스가 머뭇거린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현재 팀 파렐은 가동이 어려운 상태입니다, 좀 더 시간이 필요합니다."

"가동이 어렵다고? 현재, 자네 연구소에서 소비되는 전력은 그렇지 않아보이는데."

"... 팀 파렐 이외에도 훌륭한 AI가 많습니다."

"헛소리하지 말게. 자네가 가장 잘 알겠지만, 팀 파렐이 아니면, 다 무슨 소용인가... 자네가 지금까지 토파이오의 풍족한 지원을 받아 왔던 것은 이런 위기일 때, 인류에 헌신하기 위함임을 잊지 말게나. 24시간 내로, 팀 파렐과 함께 지하 도시에 대한 계획안을 제출하게."

"... 알겠습니다."

통화가 끊기자, 듣고 있던 엘고가 마키스에게 물어본다.

"마키스, 우린 데이터형 인류 프로그램 제작 완료까지 약 9일 정도 남았어. 어떻게 할 거야?"

마키스는 외출을 준비하며 겉옷을 입는다.

"어떻게 하긴, 절대로 완성시켜야지."

"24시간 후면 토파이오 연맹군이 들어닥칠텐데, 어디가?"

"식량이랑 물품들 좀 사 오려고. 엘고, 아르티아 연구소 쉘터화 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려?"

"8분, 그거 일회성이라서 쉘터화 한 번 작동시켰다가 해제하면 더 이상 기능을 못 하는 거 알지?"

"알아,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염두는 해 두고 있어. 그리고 텔레스트 형은 지금 토파이오에 감금되어 있는 것 같은데, 연락 가능할까?"

"방법을 찾아볼게."

감금된 5성급 호텔 거실 구석 한쪽에서 경호원의 감시하에 전화기로 가족과 연락하는 텔레스트.

"아이고, 우리 딸, 아빠도 잘 지내지. 아빠는 지금 세계를 위해 아주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있어. 그럼, 아빠는 히어로지. 그래, 아빠도 많이 보고 싶고 사랑해. 아니야, 아빠 안 울어, 아빠가 왜 울어. 항상 엄마 말씀 잘 듣고. 응, 우리 딸도 잘 자."

텔레스트는 세상에서 이 통화를 가장 끊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슬픔이 터질까 봐 서둘러 끊는다.

전화를 끊은 이후에 참았던 슬픔을 터뜨리는 텔레스트와 그의 뒤에서 통화를 듣고 있던 피아톤은 그에게 사과한다.

"미안하네, 정말로 미안하네..."

이어서 그에게 약속한다.

"내, 가장 먼저 완성되는 지하 도시에 자네와 자네 가족을 위한 안전한 자리를 마련할 것을 약속하겠네."

괴로워하는 텔레스트를 보기 미안했는지, 피아톤은 경호원을 데리고 방에서 나가, 자리를 피해준다. 감시카메라를 해킹하여 이 상황을 보고 있었던 엘고가 텔레스트 앞의 전화기에 전화를 건다. 텔레스트는 가족인 줄 알고 울음을 삼키고 웃으며 전화를 받았지만 마키스였다.

"형, 나야, 마키스."

텔레스트는 터져 나오는 답답함, 기대감, 분노, 믿음 등의 여러 감정들을 잘게 잘게 씹어 한가득 뱉어낸다.

"뭐야, 마키스? 야, 너 내가... 아니야, 계획은 있는 거지? 하아... 나는 지금 토파이오에 감금되어 있고, 우리는 지하도시를 설계 중이야. 마키스, 뭔가 있는 거지, 뭔가 해결할 방법을 찾은 거지?"

"형, 잘 들어줘..."

마키스는 텔레스트에게 프로젝트 아이에 대한 모든 계획을 알려주자, 텔레스트는 실성한 듯 한참을 웃다가 정색한다.

"하하하하하하, 야. 그게 무슨... 미친 소리야...! 우리 모두를, 인류 전체를 버리는 게 니 계획인 거야? 그걸 계획이라고 지금 나한테 지껄이는 거야? 내가 이런 미친놈을 희망이라고 믿었다니... 하아, XX"

"형, 형! 잘 생각해줘. 지하 도시 계획은 애초에 무의미한 대비책이고, 지하 도시 건설에 성공하더라도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야. 지금까지 쌓인 모든 문명... 과학... 하다못해, 내가... 형이... 평생 이뤄온 모든 업적들, 모조리 싹 다 사라진다고."

침묵을 유지하는 텔레스트.

"더 무서운 게 뭔 줄 알아? 감마선 폭발 이후, 다신 지금과 같은 수준의 문명에 도달하지 못 할 수도 있다는 거야. 지금 몇만, 몇억을 생존시킬 수 있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야... 다시 한번 생각해 줘."

탈진한 텔레스트는 이미 책상에 엎드렸었고, 마키스의 말을 차분히 듣고, 깊이 생각한다.

그도 지하 도시 계획 역시 인류의 극소수만 살릴 수 있고, 인류를 오랜 기간 생존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프로젝트 아이가 이성적으로 더 좋은 방법임을 인정하고 속으로 감탄한다.

"... 그래서 왜 전화한 건데."

마키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후우, 들어줘서 고마워. 에니아포님이 약 17시간 이후에, 우리 연구실에 연맹군을 보낼 거야."

"왜, 납치해서 감금하려고? 나처럼?"

"아마도?"

"그래서 이미 납치된 내가 뭘 할 수 있는데."

"프로젝트 아이를 성공시키기 위해서 무조건 9일을 버텨야 해. 우리 연구소가 지하 벙커인 만큼 물리적으로 방어할 자신은 있는데, 외부에서 전력 공급을 끊어버리면 곤란하거든."

"너네 SMR 있잖아."

"그걸로는 전력이 부족해."

"허, 또 엄청난 걸 만들고 있구만."

"아무튼, 내가 여기서 농성을 벌이면 에니아포님은 전력 공급, 수도 공급, 네트워크 연결, 위성 연결 등 필수적인 요소들을 차단하는 것을 빌미로 날 협박할 텐데. 그때가 되면, 혹은 그런 상황이 벌어지기 이전에, 9일만 기다려달라고 에니아포님을 설득해 줘."

텔레스트는 체념한 듯, 안도한 듯 말한다.

"... 마키스, 이 미친놈아... 이렇게 된 거 꼭 성공해라."

적어도 지금 그는 불안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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