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네마 Nema / No.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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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DD

"엘고, 최종 승인을 허가할게. 아르티아 연구소의 쉘터 시스템을 즉시 활성화해."

한편, 프로젝트 아이의 모든 준비를 마친 것을 몇 차례 검토한 마키스는 아르티아 연구소의 쉘터화를 작동시켰고 엘고가 걱정 섞인 말을 건넨다.

"결국, 이 안에서 죽기로 했구나..."

마키스는 프로젝트 아이를 완수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며칠간의 긴 고민 끝에 자신의 정신을 데이터 형태로 업로드 하기로 결정했다. 예전에 플로메한과 본픽시오에게 여러 조언을 받아 제작한 뇌 분석 장치기가 있었는데, 괜찮은 확률로 정신을 데이터 형태로 만들 수는 있지만, 사용자는 무조건 죽기 때문에 사용할 엄두는 못 냈었다.

엘고가 걱정되는 듯 마키스에게 재확인한다.

"뭐, 죽음을 각오했으니 쉘터화를 활성화 시킨 걸 테고, 정신의 데이터화를 안 해도 종말 때문에 죽겠지만, 이걸 하다가 더 빨리 죽을 수도 있어... 진짜 할 거야?"

"그럼, 해야지. 별달리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머리카락을 다 깎아서 대머리가 된 마키스는 뇌 분석 장치기를 사용하기 위해 자신의 머리에 전도 젤을 무심하게 펴 발랐고, 절반쯤 바르다가 갑자기 손을 멈춘다.

"내가 죽게 되면, 너희들도..."

자동 파기 프로그램, 마키스는 마지막으로 만들어 놓은 데이터형 인류 프로그램의 관리자 AI를 제외하고는, 팀 파렐을 포함한 모든 그의 AI에 24시간마다 한 번씩 자신이 암기하고 있는 긴 코드와 복잡한 알고리즘을 통해 생성한 수십 가지의 암호를 입력하는데, 입력되지 않은 채 25시간이 넘어가게 된 AI는 스스로 파기 하게 된다.

마키스는 고민한다.

당연히 본인이 죽는다고 다른 모두를 따라 죽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지만, 한편으론 본인 없이는 살려두기에 너무 위험한 존재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엘고, 어떻게 생각해? AI에 걸어둔 파기 명령에 대해서...?"

"뭐... 네가 결정해야 하는 문제지."

엘고가 웃는 이모티콘을 화면에 띄운다.

"그래... 그럼, 그냥 그대로 진행할게. 데이터 업로드에 성공하면 되는 거니까."

마키스도 살짝 웃어 보인다.

마키스가 자신의 대머리에 전도 젤을 골고루 적절히 펴 바른 후, 4단계 구조의 뇌 분석 장치기 차례로 장착한다.

마키스는 무거운 쇠고리가 달린 단단한 벨트를 허리에 착용하고 준비된 수술용 침대에 올라가, 두꺼운 결박 끈으로 자신의 두 발을 침대에 고정시킨다. 무거워진 머리를 천천히 뒤로 눕혀 안정적인 자세를 잡더니, 머리에 장착된 뇌 분석 장치기를 침대 머리 홈에 걸쳐 넣는다. 이후, 자신의 목 또한 두꺼운 결박 끈으로 고정시키고, 자신의 양 손에 수갑 한 쪽씩 착용한 후, 양쪽 수갑의 다른 한쪽을 허리 벨트의 쇠고리에 걸어, 온몸을 속박시켰다.

마키스의 준비가 완료되자 엘고가 말한다.

"마키스, 최종 실행 전 마지막 설명이야. 수술이 진행되는 순간, 장착된 뇌 분석 장치기 통해서, 우리 모두가 전력으로 네 정신의 모든 것을 읽어내고 기록할 거야. 정신을 읽어내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많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수술 진행 중에는 네가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을 느끼게 될 거야. 그 고통의 수준은 지금 너가 상상도 못하는 수준이겠지. 수술은 약 5시간 40분 동안 진행될 예정이고, 너의 정신 데이터 구조 및 양에 따라서 더 늘어날 수도 있어. 도중에 멈추게 되면 그대로 죽어버려서, 수술이 끝날 때까지 절대 멈추지 않을 거야. 물론, 수술 중에 쇼크사로 죽을 수도 있어. 다만, 단순히 기절하는 거라면 괜찮아, 어차피 고통으로 곧 깨어나게 될 테니까... 수술을 끝까지 마치게 되면 데이터 업로드에 성공해도, 실패해도, 너의 뇌는 다 타버릴 것이기 때문에 현실 세계의 목숨이 끝나는 것은 확정이야. 진행하겠어?"

"현실의 내가 죽는 것은 확정이고... 내 정신이 데이터화된 후, 너희들의 코드와 암호를 입력해 주면 되는 거지?"

"우린... 그렇지."

마키스가 깊은 심호흡을 한다.

"후우우우, XX, 응, 진행할게."

"알겠어, 정신력이야, 마키스, 이겨내, 카운트 다운. 10... 9... 8..."

수술이 진행됨과 동시에 시작한 마키스의 비명은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크고 잔인했다.

토파이오는 날노르그에, 알도르프는 아헤일라에 지하 도시를 착공한 지 약 한 달이 지나가는 지금, 한 남자가 소파에 퍼질러 누워있다. 수브이의 신입사원이었던 이 남자는 퇴사한 지 오래다.

인쇄된 종이를 모두 읽은 후, 삶의 모든 의미를 잃게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누굴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만들어냈다기에는 너무 정성스러웠다.

종이에 쓰여있는 대부분의 내용은 숫자와 수식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이해 할 수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곧 인류가 멸망한다는 부분만큼은 분명히 이해했기 때문에, 상관없었다.

이 내용들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싹 다 올려버릴까 생각도 했었지만, 안 그래도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괜히 살기 더 힘든 세상에서 보내게 될 것 같아서 그만뒀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줄 알았는데, 몇 주가 지났다.

시간이 너무 빠르다.

남은 돈을 남은 일수로 나눠보니, 편의점에서 싸게 산 술로 매일매일 취하는 것이 가장 그럴듯한 행복의 선택지였다.

아직 사용해 본 적은 없지만, 어렵게 마약과 총도 구해 놓았다. 어차피 더 살아봤자 할 것도 없고, 뭔가를 할 의욕도 의지도 없었던 이 남자는 적어도 끝만큼은 자신이 선택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떠나기 전에 이 엿 같은 세상에 선물 하나 주기로 마음을 먹는다. 준비한 선물에 대한 반응을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담뱃재로 가득 찬 술병으로 가득한 책상 앞에 앉아본다.

TV는 계속 켜놨지만, 컴퓨터와 인터넷은 오랜만이다. 지난 뉴스를 확인해 보는데, 매일 확인할 때는 놓치는 정보가 많았던 것 같은데, 오히려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딱히 변한 게 없어 보인다.

커뮤니티 사이트라고 불리는 곳들을 모두 찾아가 하나씩 하나씩 회원가입을 한다. 수브이에서 기사 작성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대학생 시절 때의 경험을 되살려본다.

길게 써 줄 의리는 없다. 간략하게 정리된 기사 같은 것 한 장과 카메라로 찍어 놓은 인쇄된 종이들의 파일.

'내일 올릴까? 하루 정도는 더 취하고 갈까? 그럼, 내일 남은 돈 다 쓰고 마약하고 총, 오케이.'

먹어야 할 맛있는 것들이 너무 많은데, 배가 너무 부르다. 하루에 3끼나 먹어야 하는 게 귀찮고 돈이 아깝다고 생각해왔는데, 3끼밖에 못 먹어서 아쉽게 된 것이 우스워, 오랜만에, 어쩌면 억지로, 한껏 웃어본다.

실컷 웃고 나니 목이 마르다. 아니면,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 걸 수도 있고, 시원한 맥주를 마시기도 바쁘기 때문에, 식은 맥주 따위는 마시지 않는다.

냉장고 문을 열고 사과맛 맥주를 꺼내 벌컥벌컥 마시니, 갓 딴 사과처럼 싱싱하다.

이미 뭔가로 꽉 차버린 식탁에 억지로 자리를 만들어 맥주를 내려놓으니, 식탁 모서리에 위태롭게 서 있는, 몇 겹의 입 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잔이 보여, 가까이 끌어와서 이름 모를 위스키로 반을 채워 마신다.

잔을 내려놓고 앞을 보니 그의 앞에 있는 것은 거울이다. 그러니까 '저 앞에 보이는 폐인이... 나구나. 억지로 관리할 때는 봐줄 만 했던 것 같았는데, 놔버리니까 금세 못나지는구나.'

총에 총알을 넣고 장전시킨다. 14회분의 마약을 한 곳에 모아둔다. 사이트에 접속해 로그인한다. 모든 자료를 올린다.

로그아웃한다.

이 순간,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종말이라는 진실을 마주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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