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인지

2411071911

by ODD

다음은 내가 시간을 다루는 방법 중 하나다.

물론, 인간이 시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전무하다.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가능하다.

시간이라는 존재 자체는 내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접근할 수 없겠지만, 어차피 인간인 내가 느끼는 시간이란 감각의 일부, 상대적인 인지일 뿐이다.

난 정육 된 시간을 구워 먹을 뿐, 다른 차원인 시간의 도축은 넘어가자는 이야기다.


시간을 말하기 전에 감각과 인지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이론상 우리가 느끼는 모든 인지가 이루어지는 곳은 외부가 아니라 본인의 뇌다.

저기 저 나무가 보인다면 나무가 중요했던 게 아니라, 나무를 봤다고 믿는 내 시각이, 그 나무 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느껴졌다면 바람이 중요했던 게 아니라, 바람이 불었다고 믿는 내 촉각이, 그 바람에서 향기를 맡게 된다면 역시 향기 자체보단 그 향을 믿은 내 후각이 중요했던 것이다. 미각이야 말할 것도 없고.


물론, 이런 자극들을 올바르게 받아들이는 것이 같은 현실 세계를 공유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수단임에는 동의하지만, 지금은 그 중요함에 집중하고 싶지 않다.


외부의 자극을 차단하고 자신의 뇌에 직접 영향을 끼쳐 원하는 자극을 생성하여 느끼는 것은 어렵다.

매우 어렵다.

하지만 현실 세계를 지배하는 것보다는 합리적일 것이다.

산을 오른쪽으로 옮기는 것보다 본인의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는 게 합리적이듯.

뭐, 고개를 돌려 산이 이동한 것처럼 보여도 산은 여전히 그 자리에 가만히 있겠지만, 지금은 그런 사소함에 집중하고 싶지 않다.


본 내용으로 돌아가자면, 나는 위 내용을 심화하여 대인할 때도 적용한다.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을 시간순으로 나열한다.

난 그 사람의 과거도 미래도 본 적이 없다.

그나마 보고 있는 현재에 대해서도 보여지는 상대의 모습과 그 모습을 보는 내 눈을 온전히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내가 보유한 모든 관찰력과 상상력과 판단력으로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상상하여 각각의 위치에 투박한 프로토타입을 여럿 만든다.

그리고 그 사람과 교류가 있을 때마다 그 프로토타입들에 정보를 추가하며 그 투박함을 보다 정교하게 깎을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에서 깎이는 것은 상대의 프로토타입뿐만은 아니다.

만일, 내가 설계한 프로토타입이 틀렸다면, 내 깎는 방식이 틀렸다면 내 판단력을 수정한다.

여기서 내가 가장 경계하는 점은 이 방식으로는 절대 그 사람 본연의 정답인 100%에 접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다.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정답을 놓치지 않으며 그 발자국을 추격한다.

소리 없이 조용하게.


그렇게 그 사람의 복제품은 내 세계에 추가되고, 이렇게 추가된 그 복제품은 내 세계의 일부로써 내 상상의 규모를 더 크게 키워주는 뼈대의 역할을 해준다.

사실, 실제로 만난 사람이 아니어도 가능하고, 심지어 사람이 아니어도 가능하다.

상상력의 비율을 높이면 프로토타입의 생성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내 세계에 있는 존재들의 비율을 따져보면 그런 존재들이 대부분이다.

내게 영감을 준 개념들과 아이디어들 그리고 예술가들과 캐릭터들.

글 한 구절, 음악 한 곡의 하이라이트로도 난 새로운 만남을 경험한다.

(이렇게 쓰고 나니까 시간과는 별 관계 없는 이야기였네, 그보다는 감각과 인지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게 바로 내가 감각과 인지를 통해서 세상과 인간과 개념과 존재 그리고 당신을 마주하는 태도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취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