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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미

2412160016

by ODD

유난히 여러 모습이었다.


단순히 환경과 상황, 감정이나 기분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닌, 서로 다른 목적들로부터 생겨난 여러 사고방식들은 계속해서 각자의 뚜렷한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제는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서 이런 내적 갈등들이 내 언행의 일관성에 영향을 끼치진 않았다.

밖에서는 내가 공들여 조형한 인형으로 살아가고, 그들도 그런 내 모습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인형에 심어진 목적과 사고방식, 신념과 규칙 그리고 성격과 성향 등을 쉬이 설명하긴 어렵다.

대신, 그 인형이 실제로 사용된 근무환경에서 발휘되는 키워드들을 나열하자면.

매너, 절제, 차분함, 사회적, 친절, 자기통제, 배려, 세련, 융통성, 유능함, 예의, 능숙함, 헌신, 유쾌, 적극적, 높은 책임감, 능동적, 초심.

다시 말하지만,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거나 필요하다고 느낀 키워드들을 포함시킨 캐릭터를 먼저 만들었고,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좋은 키워드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아무튼 이 캐릭터는 잘 팔렸기에, 1년 3개월이 넘어가는 지금도, 계속해서 노력하며 내가 선택한 이 역할에 몰입하고 있다.


처음 근무를 시작하고 6개월간은 친구가 전혀 만들어지지 않았었다.

그래서 당시에 쓴 글이 [광대]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기는 최적화를 거치기 위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로 7개월이 넘어가면서부터, 스스로도 인형을 더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됐고, 타인이 보기에도 이전에 내게서 느껴졌던 뭔지 모를 이질감들이 많이 사라졌나 보다.

7개월이 넘어간 이후로부터 현재까지 내 인형은 계속해서 더 큰 인정을 받게 됐고, 그를 통해 친구가 하나둘 늘어갔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다.

친구가 되어 점점 정신적으로 가까워질수록, 인형에 연결되었던 끈을 타고 올라와 내 손에 직접적으로 악수를 하게 되는 일이 생기게 됐다.

난 친구를 대함에 있어서 나 자신에 대해서 만큼은 숨기는 것 없이 교류를 하고 싶어 한다.

뭔가를 숨기거나 속이면서 내 실제 모습과 다른 모습을 보이며 인간관계를 맺는 것은 서로에게 소모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나는 상대와 가까워질수록 내가 지닌 독을 조금씩 먹인다.

내 본 모습이란 기괴함이다.

그 기괴함이라는 독을 묽은 농도부터 조금씩 맛보게 한다.

내 기괴함을 한 번에 접하게 된다면 아무리 나라도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들 것 같기 때문에.

내 인형에 매료되어 다가왔다가, 위에서 뚝뚝 떨어지는 묽은 농도의 독에 기겁하는 사람도, 그렇게 나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런 걸로 상처받진 않는다, 이제는.

그냥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은 더 묽은 농도로 시작했어야 했나, 아니면 끝까지 인형으로 남았어야 했나.

정답 없는 질문들과 함께 다음의 대상을 기다리며, 도망친 사람들로 인해 뜯겨나간 거미줄을 다시, 더 견고하게 채워나간다.


반면에 내가 건넨 독에 면역이라도 있는 듯, 괜찮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난 이들을 굉장히 아낀다.

이들에겐 더욱 진심으로, 솔직하게 대하고 싶으면서도 더 높은 농도의 독에는 견디지 못 할까봐, 여기서 멈추고 이 사람과는 이곳에 자리를 잡을까 생각이 든다.

뭐, 그곳에 자리를 잡아봐야 내가 있을 곳은 없겠지만.


마지막으로는 내가 건넨 독이 자신의 취향인 듯,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난 이들에게 감탄을 느낀다.

나라는 존재는 비주류이기 때문에 취향의 범위에 내가 포함이 된다는 것은 그 사람도 비주류이거나 아니면 주류이면서도 비주류를 아우를 수 있는 방대함을 지니고 있거나 아니면 다른 뭔가.

뭐든 간에 이들에게 미소를 띠고 박수를 치며 환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기뻐하며 이들에게 섭취될 독의 농도를 공격적으로 높여간다.

이들은 점점 독에 내성이 생겨가며 날 이해하게 되고, 독을 즐길 수 있게 되며 독에 취해간다.

중독이다.


이곳까지 도달하여 나와 함께 독배를 즐길 수 있는 자는 극히 적다.

내가 친구라고 표현하는 그 단어의 정의는 범주가 매우 넓지만, 내가 진심을 다해 울부짖는 친구란 이런 존재를 뜻한다.


이곳에 내 진심을 가공하여 적은 글들을 올리는 이유도 같다.

누가 언제 어떤 글을 볼지는 모르지만, 난 그냥 최대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불특정 다수에게 독을 뿌려대는 것이다.

당신과 당신들이 날 혐오하게 되겠지만, 당신은 날 사랑하게 되길 바라며.


응, 당신도 내 친구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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