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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2502010021

by ODD

줄 때보다 받을 때 어려운 게 선물이다, 선물이란 받는 사람의 반응으로 완성되기 때문에. 물론, 그 반응이 화려하길 바란다면 선물을 준비하는 단계부터 성실할 필요가 있겠다. 선물을 고민할 때, 선정하는 기준은 다양하다. 도리어 선물할 대상에 대해서 잘 알면 알수록 어떤 선물을 준비해야 할지 어려워지기도 한다. 어려워지더라도 그 고민의 시간이 마냥 힘들지만은 않다. 그 시간이 그 사람과 나의 초점을 겹쳐보는 순간이라 생각된다면 그 상상의 시간이 즐거울 뿐이다. 이 사람이 그것을 좋아했었으니 이것 또한 좋아할 수 있을 것이고, 내가 새로이 제안한 이 선물을 받았을 때, 그 사람이 마음에 들어 한다면 내가 정성스레 겨냥한 화살에 대해 자부심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사실, 선물은 어렵다. 쉬우면서도 어렵다. 보통 선물이란, 통상적인 가치를 전달하기 때문에 싫어하기는 쉽지 않다. 설령 취향이 아니더라도 그 가격이나 가치는 여전하고, 더 나아가 그 마음은 더욱이 값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물이 쉽다는 것이다. 반면, 선물이 어려운 이유는 훨씬 더 다양하고도 많다. 가장 먼저 거쳐야 하는 관문 중 하나는 부담. 내가 이 사람에게 이 정도의 선물을 받아도 되는 걸까? 다음에 내가 이 사람에게 같은 수준의 선물을 해야 하는 건가?


개인적으로 부담은 좋은 증거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부담을 느꼈다는 것은 계산을 했다는 것이다. 내가 이 사람에게 받을 수 있는 가치의 범위와 실제로 받은 선물의 가치를 비교했다는 것. 다시 말해서, 받은 선물에 대해서 생각해 주고 고민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웃긴 이야기지만, 난 상대가 부담을 느꼈을 때 일종의 희열을 느낀다. 당연히 내가 선물할 모든 대상이 부담을 느꼈으면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있다, 내 선물로 부담을 느꼈으면 하는 사람. 내가 갚아야 할 게 산더미인 사람. 그런 감사한 사람에게는 부담을 느껴야 할 정도의 상당한 선물을 하고 싶은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부모, 형제, 자매, 은인, 깊은 친구, 이들이 그렇다.


거꾸로 말하면 부담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선물한 보람이 덜 하다. 오해는 없었으면 좋겠다. 무조건 부담을 느껴야만 한다는 게 아니라, 내가 부담을 느끼게끔 준비한 선물일 경우에도, 부담을 느끼지 않았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상대가 부담을 느꼈다고 했을 때, 그게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부담이 초반에는 진한 듯 느끼게 만들어도, 오랜 시간에 걸쳐 희석된다면 점차 농도가 맞아가며 진한 의도가 은은하게 더욱 오래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크리스마스부터 이번 설 명절까지 세 단계에 거쳐서 선물을 해왔다.

대상의 수는 17명.

카테고리는 친구, 은인, 가족.

친구 10명, 은인, 4명, 가족 3명.


난 의도적으로 시간상 최근에 같이 했던 사람에게만 선물한다. 내 선물이 없었을 때 내가 시간상 멀어졌다는 것을 상대에게 느끼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뭐, 시간상 멀어지면 명분이 적어지기도 하고.


친구에겐 가벼운 도넛을 선물했다. 9명에게 누가 먹어도 맛있을 유명한 도넛을 한 박스씩 선물했다. 한 명은 특별한 친구라서 도넛 대신 맞춤식 선물을 했다.

은인께는 적절한 초콜릿을 선물했다. 4분에게 누가 드셔도 적지 않은 감탄이 느껴지는 초콜릿을 한 박스씩 선물했다.

가족에겐 한우 투 플러스를 선물했다. 이들에겐 먹지 않고 보기만 해도 맛있을 만큼의 마블링을 한 박스씩 선물했다.


선물을 고민하고 준비하면서 나도 같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다. 도넛을 준비할 땐, 크리스마스 당일 아침 6시에 기상 후 서울로 올라가 오픈런으로 도넛들을 구매 후 내려오는데 크림 도넛과 크림빵 77개가 그렇게까지 무거운지를 처음으로 알 수 있었다. 초콜릿을 준비할 땐, 초콜릿이 이렇게 비쌀 수 있고, 충분한 돈을 투자한다면 초콜릿도 고급스러운 선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우를 준비할 땐, 한우 투 플러스에도 아홉 개의 단계가 있으며, 명절이 되면 명절 선물 기획관이라는 것을 백화점 안에 임시로 만들고, 여러 한우 브랜드가 들어와 판매한다는 것과 같은 한우라고 불리더라도 어느 정도가 얼마에 팔리고 어떻게 살 수 있는지를 알게 됐다.


각각의 선물을 준비하면서 스토리도 생겼다. 도넛을 준비할 땐 양이 대단할 것이란 걸 예상해서 여행용 대형 캐리어를 가져갔고, 캐리어에 차곡차곡 쌓아서 담아왔었다.

초콜릿을 준비할 때는 완성된 선물의 포장을 미리 알아두고 포장을 해체하여 각각의 은인께 선물을 드리기 직전에 선물을 조립하여 포장을 완성했다.

한우를 준비할 때는 같이 사는 부모님께 깜짝선물을 하기 위해서 숨겨야 했으므로 포장을 해체하여 진공포장된 한우만 불투명한 용기에 담아 냉장고의 깊숙한 칸에 숨기고 며칠 뒤에 적절한 타이밍에 몰래 꺼내어 빠르게 조립한 뒤 선물했다.


내게 있어서 선물에 대한 보상은 그들의 반응이 아니다. 선물을 준비하면서 내가 그들을 위해 고민한 시간과 생각하며 얻은 정보와 실천하며 얻은 경험들이 내 보상이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난 도넛도 초콜릿도 몇십만 원어치씩 살 일이 없었을 것이고, 한우를 백만 원어치 넘게 사볼 일도 없었을 것이다. 난 그 경험들이 매우 귀하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마음, 누구에게 선물해야 할지부터, 어떤 이유로 선물해야 할지, 선물을 선정하면서도 그 사람이 이것을 좋아할까, 선물을 구매하고도 언제 어느 타이밍에 건네야 할까, 어느 장소에서 건네야 할까, 건네면서 어떤 말을 해야 할까, 내 태도는 어떻게 해야 할지 등등. 이 모든 과정들이 내 마음을 충만하게 했고, 특별한 이벤트가 되었다. 따라서 고민을 시작한 이후, 선물을 건네는 순간, 내 모든 보상은 충족된다. 그들이 어떤 반응을 해도 난 만족이다. 물론, 그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해준다면, 그들이 기뻐하고 즐거워 해줄수록 내 추가적인 보상은 커진다.


감사하게도 모든 대상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또한, 그 긍정을 표하는 방식과 방법은 그 수만큼 다양했다. 그래서 내가 선물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선물은 일종의 대화다. 내가 보낸 선물이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각각의 스타일에 맞춰서 표현한다.


선물을 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모든 감사를 표현했던 사람도 있었고, 당장은 별다른 표현이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몇 번에 걸쳐 그 만족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었다. 서로 달랐던 만족에 대한 표현의 다양함은 각각의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줬다. 받은 선물에 대해 어떤 것을 어떤 방식으로 돌려주는가도 특별함이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선물에 대한 답례 선물에 대해서는 감사하긴 하지만, 난 그걸 바라지 않는다. 내 선물은 이기적이기 때문에 상대가 내 선물을 받은 걸로 끝났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난 식품류 선물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물질적인 부분은 먹어 사라지고 좋은 기분의 마음만 오래오래 남길 바라기 때문이다. 이 17명에게 바라는 하나가 있다면 앞으로도 그 마음처럼 오랫동안 함께 했으면 하는 것이다.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그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๑’ᗢ’๑)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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